버드키스(버키) 2020. 8. 13. 23:52










"그냥 내가 소파에서 잘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쿤 씨. 저랑 같이 자기로 약속하셨잖아요?"


집을 따로 구해서 나가고 싶다는 아들에게 에드안이 내 건 조건은 하나. 룸메이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드안만이 아니라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쿤의 지병에 대해서 알게된 지금,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을뿐인 쿤의 소망을 알아줄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다. 에드안과의 대결에서 진 기분인 것도 짜증나는 노릇인데 독립은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다. 사실 룸메이트라는 건 쿤의 한정된 인맥을 생각하면 거의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한국에서 쿤의 지인이라고 하면 소속사 인맥과 왕난이 전부인데,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왕난에게 룸메이트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라크나 하츠와는 쿤의 성격이 잘 맞지 않아서, 서로 요구사항을 어느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라우뢰나 이수에게 이야기해 볼 생각이었는데 난데없이 밤이라니. 더해서 밤에게 휘둘려 밤의 본가 근처에 집을 구하고 보니 에드안과 그리 멀어지지도 못했고.


"아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저희 벤에서도 계속 같이 잤는걸요. 익숙해지면 괜찮으실 거에요. 아니면 쿤 씨가 잠드실 때까지 제가 기다릴까요?"

"그건 더 신경쓰이는데.."

"밖에서 기다리면 되죠. 어서 주무세요. 내일은 짐도 챙겨야하고 할 일이 많잖아요."


밤은 대외적으로 친절하고 순한 이미지지만 알고보면 상당한 고집쟁이라서 쿤은 자신이 져 주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밤의 말처럼 내일부터는 다시 스케쥴에 돌입할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끄는 건 양쪽 모두의 손해. 하릴없이 쿤은 밤이 먼저 자리잡고 있는 더블 사이즈의 침대 한켠에 몸을 눕혔다. 에드안과 같이 있을 때는 약과 열에 시달리느라 거의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나마 나았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다른 사람과 같은 침대를 쓰려니 어색함의 끝을 달렸다. 시트도 제대로 덮지 않고 밤의 반대쪽 끝에 간신히 걸쳐있는 수준인 쿤을 끌어다 제자리에 둔 밤은 놀란 기색이 가득한 파란 눈을 향해 싱긋 웃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불 꺼 드릴게요. 전 밖에 있을 테니까 마음 편히 주무세요."


모두가 걱정하는 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밤의 생각대로 되어야겠지만 오늘부터 그랬다간 하루종일 이삿짐을 정리한 고단한 몸으로 쿤이 밤을 새울 것처럼 보여서 밤이 약간의 배려심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밤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예민한데다 환자이기까지한 쿤에 비한다면야. 쿤과 함께 배달된 가구들을 하나하나 포장을 뜯고 배치하는 것도 즐거웠고, 파자마 차림의 쿤이 첫날밤을 치루는 새신부마냥 긴장하는 것도 귀여웠으니까 정신적으로는 풍족한 상태였다는 게 한 몫 했다.


'첫날밤이라니.'


그 순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모든 것이 밤의 음심을 제대로 건드리는 바람에 졸지에 밤은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어둠 속에서 홀로 분투해야 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자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밤이 자리를 피해주자 피곤했던게 분명한 쿤은 밤이 슬며시 침실을 다시 살피러 왔을 때엔 고른 숨소리로 이미 잠들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시트에 푹 파묻혀야 편히 잘수 있는 성격상 따로 가져온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잠든걸 보니 밤의 음험한 생각들을 쿤이 눈치챘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마치 신과 같다는 평까지 듣는 에드안의 핏줄인 만큼 천사라는 묘사가 아깝지 않은 모습이지만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하는 경우의 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쿤과 같은 병을 가진 이가 더 있는지, 이와 같은 경우에 쓸 수 있는 약이나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 에드안이 알아보는 중이라고 하니 밤도 거기에 희망을 걸어봐야 할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쿤이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자리에 누운 밤은 모든 아쉬움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품에 안고 싶지만 얕은 잠을 깨울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곱씹으면서.




*




겨울의 추위는 이제 한 풀 꺾였다고들 하지만 여름은 아직이니, 익셉셔널은 광고 촬영을 위해 휴양지로 유명한 태평양의 한 섬을 찾았다. 이번 광고는 대기업의 여름 빙과류 및 음료 광고로 익셉셔널의 멤버들이 휴양지에서 휴양지에 걸맞는 복장으로 작은 카페를 운영한다는 컨셉이다. 각자 빙과류 하나와 음료 하나를 맡아 이를 조합한 아이디어 음료를 서빙하는 컨셉인데, 이 빙과류가 토핑 기능한 얼음 형태로 나온 것이 특징이라던가 뭐라던가. 여러가지 조합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일단 추천 조합을 익셉셔널이 우선 선보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멤버들 개인으로 한 편, 단체로 한 편, 총 여섯 편의 광고 영상을 만들기로 계약이 되어 있는데 익셉셔널의 몸값을 생각하면 과연 대기업이라는 말이 나올법한 스케일이다.


"이수도 몸이 좋네! 이상한 옷만 입고 다녀서 몰랐는데."

"이상한 옷이라니요!"

"말 나와서 그런데 너 머리도 좀 길러보면 안 되냐? 그럼 따로 포인트 콘셉트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날로 먹지 마세요.."

"이수랑 올레 먼저 가자. 제품은 저 쪽 아이스 박스에서 꺼내면 되고... 콘티 확인 다 했지?"

"저 아직 못 들었어요."

"그럼 다른 애부터 해야겠네.."


오랜만에 데뷔 때처럼 허리를 넘는 장발로 돌아온 리더, 비올레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 덕에 광고에서도 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게 된 비올레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 배나 되는 헤어 세팅 시간을 갖게 되었다. 뒤늦게 콘티 확인을 위해 담당 스테프를 찾아가고 있노라니 이제 막 촬영용의 래시가드로 갈아입은 쿤이 보였다.


"여, 쿤! 오늘은 컨디션 괜찮아?"

"아아. 다 나은지가 언젠데 이제 그만 좀 물어봐."


팬들이 이번 광고 촬영을 기대하는 이유는 비올레의 장발 말고도 또 하나가 있었으니 건강 문제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쿤의 스케쥴 복귀가 그것이었다. 회복했으니 활동을 시작한 거겠지만, 퇴원을 했다 뿐이지 발작이 언제든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주변 사람들은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당장 익셉셔널의 멤버들 부터가 볼 때마다 안부를 물으니.


"헤어랑 메이크업 체크 받고 저 쪽에서 쉬고 있어. 메이킹 비하인드도 찍어야 하니까."

"혹시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잘 못 먹긴 하는데 먹고 죽는다는 얘긴 아니야."

"쿤 씨 아이스크림 싫어하세요?"

"너무 달아서."


대채로 한 가지 맛이 너무 강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그는 디저트도 많이 즐기진 않는 모양이다. 직접 괜찮다고 말했어도 스테프를 따라 촬영장 한 켠에 세워진 천막에 얌전히 따라 들어간는 쿤이 기운 없어 보인다거나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뒤를 이었다. 당사자에게는 들리지 않을 이야기였고 스테프들도 걱정을 담아 하는 말이었지만 그들과 같은 마음인 밤도 걸음이 무거워 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쿤 씨, 컨셉 설명 들으셨어요? 괜찮으시면 먼저 브리핑 해 드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번 광고는 TOG제과의 가향 탄산수 라인과 빙과류 라인의 조합을 익셉셔널 멤버 분들의 칵테일 셰이킹으로 어필하는 내용인데요, '파스텔 아이시클'의 코팅 컬러가 탄산수에 들어가면 색이 바뀌는 효과를 일으키면서 무알콜 칵테일처럼 즐길 수 있게 나온 제품이거든요? 익셉셔널 분들이 평소에 사용하고 계시는 퍼스널 컬러에 맞춰서 광고는 진행되구요, 쿤 씨는 파란색, 파스텔 아이시클 블루 제품과 스파클 레몬 제품 제품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쿤이 광고할 제품을 내보이며 먼저 한번 해 보겠냐고 스텝이 눈으로 묻자 망설이듯 하다가도 하얀 손끝이 아이스크림 쪽을 향했다. 투명한 색에 가까웠던 탄산수에 얼음을 넣자 포말이 한꺼번에 일었다가, 거품 터지는 소리가 잦아들 때 쯤부터는 하늘빛으로 개이기 시작했다.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일련의 과정이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워서 지켜보는 새파란 눈동자가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작은 반응이었음에도 만족스러웠는지 이어 촬영 콘티에 대해서도 설명을 마친 스테프 또한 흡족한 얼굴로 다음 타자인 라우뢰를 찾았고 말이다. 자신의 차례라고 얘기해야 했지만 쿤보다 더 따뜻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했다. 쉽게 보여주지 않는 표정인 만큼 밤은 쿤이 웃을 때가 좋았다.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한 웃음일 때가 그 중에서도 최고였다. 재미있는지 간격을 두고 얼음 조각 하나씩을 추가하는 쿤을 비하인드 카메라가 열심히 촬영 중이었다. 물론 밤이 꾸물댄다며 스태프에게 잔소리를 듣는 통에 쿤의 장난도 오래지 않았지만.


"흐아암.."

"세팅 끝났어?"

"그러니까 잘거야."

"헤어.."


이미 정돈이 끝난 스타일링을 망칠까봐 주의를 주려는 쿤이 무색하게도 라우뢰는 늘 가지고 다니는 베개를 쿤의 어깨에 올리고 몸을 기댔다. 베개의 습격으로 말을 끝까지 마치지도 못한 쿤이었이만 앉아서 자면 괜찮다고 웅얼대는 라우뢰가 반박을 들어줄 리도 만무했다.


"환자한테 무슨 짓이냐."

"나 이제 환자 아니라니까."

"넌 운동이나 해라. 또 쓰러지지 말고."

"그게 운동이랑 무슨 상관이야?"

"자자, 얘들아. 촬영 전에 기운빼지 말자. 그리고 올레 본 사람?"

"아까 설명 들으러 갔는데?"

"그럼 라우뢰부터 가자. 빨리 찍고 쉬는 게 좋지. 올레는 시간 좀 걸릴 모양이네."

"머리 보면 딱 견적 나오지. 어떻게 올레 먼저 찍겠냐."


어차피 다 같이 촬영하는 부분도 있겠다, 해외 로케이션에서 빠른 퇴근이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개인 촬영분을 먼저 찍으면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지는 건 사실이니까 잠이 고픈 라우뢰도 요청을 받아들였다. 헤어 디자이너의 잔소리도 촬영을 한차례 마치면 피해갈 수 있을테고. 라우뢰와 이수의 촬영으로 쿤과 둘만 남게되자 하츠는 뚱한 표정으로 맞은 편에 앉은 쿤을 살폈다.


"너는 설명 들었어?"

"당연하지. 날 저 잠탱이 녀석이랑 똑같이 보지 마라."

"라우뢰도 콘티 들었으니까 촬영 들어간 거 아냐?"

".....그랬나?"


하지만 언제? 하츠의 얼굴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읽은 쿤도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젓긴 했지만 누군가가 후다닥 붙어서 다이제스트 강의를 시작할 터다. 자느라 망가진 헤어와 메이크업을 또 잘생긴 본판으로 커버해서 팬들로 하여금 원래 컨셉이 그랬던건지 라우뢰가 자다 일어난건지를 알아맞히게 하는 것보다야 나은 결과 아닐까. 연기라고 하긴 부족하지만 천연덕스럽게 촬영에 임하는 이수와 이럴 때만 재능충임을 증명하는 라우뢰의 흠잡을 데 없는 촬영을 눈으로도 보고 모니터로도 보다보면 의외로 시간은 참 빠르게 흘러간다.


"이봐, 귀치장."

"응?"

"너는...... 무슨 운동을 할 거냐?"

"뭐?"

"신체 건강을 위한 투자를 해야할 것 아니냐."


그러니까 운동한다고 낫는 게 아니라니까? 비하인드 촬영을 위한 카메라만 아니면 멱살부터 잡고 보는 건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아니 쓰러진 것도 격한 운동인 춤을 추는 중이었건만 왜 자꾸 운동에 집착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몸을 움직여서 다 건강해질 것 같으면 쿤만 해도 이미 장수 예정일텐데. 하츠는 아예 불사신일 테고 말이다.


"흐아암. 운동이 아니라 잠이 문제지. 그러니까 난 이제 자야겠어."

"넌 좀 그만 자. 그런데 쿤. 일종의 저혈압 발작이면 오히려 격한 운동 같은 걸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기립성 저혈압 같은 병도 있잖아."

"그렇게 신경쓸 일은 아니야. 발작이 없으면 일반인인걸. 벌써 첫 신 끝났어?"

"나 말고 라우뢰만.. 난 메이크업 수정."

"제가 평소에도 쿤 씨를 잘 챙길 거니까 다른 분들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러고보니 이제 둘이 같이 산다고 했지. 집은 어때? 좋아? 집들이 같은 건 안 해?"

"집들이?"


일하는 시간만큼 공백도 많은 종일 촬영인지라 이야기를 오래 끌고갈 수 있는 화재는 당연히 이럴 때 대환영이다. 다만 익숙치 않은 단어에 궁금증을 표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겐 먼저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겠지.


"이사하면 주변 지인들을 초대해서 음식도 대접하고 대신 선물도 받고 그러는 자리야."

"아.. 그 생각은 못했네요. 어때요, 쿤 씨? 이번 촬영 끝나고 쉴 때에 간단하게라도 할까요?"

"어떤 선물을 주는데?"

"그거야 초대 받은 사람 마음이지. 가전제품 같은 거 중에 마련 못한 거 있으면 내가 고려는 해볼게."


티를 낼 일도 많이 없거니와 은근히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쿤이지만 친구들과 놀기 좋아할 나이 아니던가. 새로 알게된 문화에 대한 호기심에, 반응이 크진 않아도 끌리고 있다는 게 형님들의 눈에는 보이는 지라 이수가 밑밥까지 깔자 쿤은 거의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어떻게 하는 거야?"

"뭘 어떻게 해. 맛있는 거 잔뜩 주문해 놓고 집들이니까 놀러오라고 하면 되는거지."

"선물은 항상 가전제품인가?"

"성의의 표현이지. 그게 선물 받는 재미 아니겠냐."


외국인 멤버둘이자 막내라인이 관심을 표하는 게 메이킹 필름에 담기면 조만간 회사 콘텐츠 팀이 카메라를 들고 집들이를 촬영하자고 할 것 같다. 해를 넘겨 4년차 짬밥이 된 이수의 예감을 뒤로하고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




"저기, 쿤. 누가 널 찾아왔다는데?"

"나?"


햇살이 찬란한 낮에만 촬영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하루는 리조트에서 묵게 되었는데 휴가같은 휴양지의 밤을 즐기는 멤버들의 비하인드 컷 촬영을 앞두고 이수가 쿤을 불렀다. 곧 화려한 저녁 만찬과 프라이빗 풀이라 기대감에 차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잠시 그 쪽으로 쏠렸다.


"음... 네 형제 같더라고?"

"누구?"

"많이 본 사람이긴 했는데 말이지... 네 형제가 좀 많냐?"


이수의 변명아닌 변명에도 쿤 반응 없이 쿤은 곧장 로비로 형했다. 남은 다른 멤버들만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이수를 재촉했다. 따라오라고 한 건 아니지만 에드안의 영향인지 그의 가족끼리 만날 때 뒤를 밟는 건 껄끄러웠으니.


"아, 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사람인데.."

"배우? 어느 작품?"

"그 왜 쿤 가문 중에 액션 영화 자주 찍는 잘생긴 형님 있잖아."

"어, 저도 알 것 같긴 한데..."

"이름이....."

"쿤 마르코 아센시오."

"아!!"

"라우뢰 씨도 영화 자주 보시나봐요?"

"모르는 게 바보 아닌가? 여라튼 쿤이 올 때까지 촬영 시작 안 하는 거지? 깨우지 마. 좀 자야겠어."


오래간만에 연예인 다운 모습을 좀 보여주나 싶었던 라우뢰가 당연하다는 듯이 애착이불을 몸에 감자 남은 멤버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라우뢰에게 달려들어 이불 쟁탈전에 나섰다. 이름만 알려주면 다인가? 그에 대해서 더 아는 만큼은 알려줘야지!




*




"아센시오!"

"여, A.A. 잘 지냈.."

"여긴 왜 왔어."

"하여간. 아버지의 명령 아니고, 통보할 거리도 없어. 화보 촬영 차 왔는데 케이팝 아이돌이 왔다잖아? 혹시나 싶어서 와 봤지. 아버지랑은 잘 해결됬잖아? 내가 나설 거리가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표정 풀어."

"무슨 화보?"

"돌체앤가바나."

"......"


익셉셔널의 인기가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연말 앙케이트에서 월드 베스트 핫 가이로 꼽힌 아센시오는 탄탄한 몸으로 소화하는 수준높은 액션 연기와 매혹적인 페이스로 전 세계 여성 팬들을 사로잡은 인기 배우였다. 쿤 가문이 배출한 많은 연예인들 중에서도 마스체니와 더불어 포스트 에드안이라 불릴법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귀여운 동생 운운하며 아게로를 찾아온 덕에 한국의 스텝들이 어부지리 눈호강을 제대로 하게 생겼다. 위험한 아우라가 풍기는 쿤 가문이라 차마 대 놓고 보진 못하지만 여유있는 표정으로 까다로운 성격의 동생을 잘만 상대하는 걸 보면 쿤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동생의 건강이 걱정되어 찾아온건지도 모르지.


"여기선 그런 거 없어? 우리 스텝들은 너 데려오라고 난리던데 서비스 컷 넣어 주겠다고."

"내가 왜.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달라면 줄걸? 리틀 에드안이 보고 싶... 컥!"

"가서 성질 머리도 똑같다고 전해."

"아야야.. 오랜만에 보는 형님한테 너무하네. 너 때문에 한국말도 배웠는데."

"아버지가 시킨 거잖아."

"그게 다가 아니다 이거지. 게다가 진심으로 널 걱정하는 녀석도 꽤 있다고? 란이라던가 하츨링처럼."


방심했을 땐 명치를 얻어맞았지만 최고의 액션배우 답게 이어지는 주먹질은 손쉽게 잡아내며 아센시오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동생을 안심시켰다. 집안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는 이유라면야 모르지 않지만 아센시오가 아게로에게 사운할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왜 취급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에드안의 심부름을 몇 번 해 준 탓인가? 여하튼 체격 차도 있고 힘싸움으로는 애초에 될 일이 아니라 한번 붙잡히자 그 이상의 저항은 없었다.


"의심할만도 하잖아. 지금 타이밍이면."

"너만 그렇게 생각하거든? 애초에 그 일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아. 누님이 귀뜸해줘서 그렇구나 했을 뿐이지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당장 없어."

"......."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야?"

"모레. 너는 촬영 어딘데?"

"아야나 리조트. 내일 올래?"

"....갈게. 오늘은 촬영 있어."

"그래. 무리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훈훈함을 과시하는 스윗한 큰형님의 센스와 의외로 고분고분한 아게로의 신선한 모습 덕에 이 날의 짐귀한 쿤 가문 회동은 촬영에 참여한 스테프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고 전해진다.
















익셉셔널의 비하인드 컷까지 쓸까 했지만 내일은 다섯시 무렵에 깨야해서 이만 줄입니다.

오탈자랑 포스타입 업글도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