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탑 - 하진성 x 쿤] 일탈
신의 탑/단편
요 근방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걸 진성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만한 인물이기에 집값이 가장 저렴한 곳으로 주거지를 결정한 것일뿐. 사는 곳은 밤문화의 메카나 다름없는 유흥가지만 왠만한 소음에는 내성이 있는 진성이기에 이 동네는 그에게 있어 나쁘지 않은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진성 본인 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라고는 생각치 않았던 이 곳에서 익히 아는 얼굴을 발견한 진성은 바로 이마를 짚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도제교육을 맡게 된 제자의 친구였다. 제자인 밤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더 엄격한 환경에서 자란 집안 좋은 도련님이 어쩌다 이런 뒷골목으로 흘러들게 되었을까? 여하튼 진성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기에 그는 머지않아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슬럼가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한 쿤 가문의 외모가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다 아는 척 하고 보는 저 건방진 도련님이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도 분명했고.
"어이, 꼬맹이."
아마도 처음보는 것들 밖에 없었을 거리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 소년의 얼굴 빛이 바뀌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분명 싫어하는 별명을 불렀다며 토라졌겠지만 당장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리라. 진성의 앞까지 제 스스로 다가오는 초유의 서비스까지 시전한 꼬맹이, 그러니까 쿤 아게로 아그니스는 보석같은 눈동자를 굴려 진성을 올려다 봤다. 고등학생이면 한참 클 나이라지만 진성에 비해서는 아직이었으니까.
"이 동네에는 어쩐 일이야?"
"내가 할 말이다 꼬맹아. 넌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아는 거냐? 네 운전기사라면 내려 달라고 해도 안 내려줬을 곳인데."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안 돌아 갈 건데."
"안 돌아간다고? 왜?"
싸웠으니까. 주어가 없는 말이었지만 아들내미랑 싸워서 유치하게 이런 신경전을 벌이게 만든 사람이라면 잴 것 없이 그의 아버지인 에드안일 터였다.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풍경에 진성은 다시 한 번 이마를 감싸쥐었다. 그 불 같은 성미를 못 이기고 에드안이 당장 나가라 비슷한 소리를 한 것 같은데, 귀하게 자란 덕에 생활력도 없는 주제에 맹랑하기만한 도련님이 진짜로 뛰쳐 나왔으니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해야 하려나. 안면이 없는 사이 같았으면 모른 척 했을 일인데 이미 그럴 수는 없었던 지라 하릴없이 진성은 손끝을 까딱여 아게로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주었다.
"아버지랑은 또 왜 싸운 거냐. 네가 진짜 안 돌아가면 그 놈 성격에 이 일대가 전부 난리일 텐데."
"몰라 그런 거. 나가래서 나왔으니 된 거잖아."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쿤 가문은."
잘못을 인정하라는 닥달을 곧이 곧대로 듣고 교복 차림으로 집을 나오다니. 또 나왔으면 친하게 지내는 친구 집이라도 찾아갈 것이지 왜 이 위험한 밤 거리를 헤매고 있냔 말이다. 만에 하나라도 아게로가 정말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에드안의 손에 이 거리가 통째로 불도저로 밀리고도 남을 일이건만.
"하루 재워 줄 테니까 이 이상은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당장 돌아가라. 꼰대들이 이 동네에서 설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
"굳이 따지자면 아저씨도 꼰대에 가까운 쪽 아냐?"
"잘 데가 따로 있나보지?"
"하긴 아저씨가 좀 젊게 살지."
".....밤한테 가 보는 게 나았을 텐데."
"싫어. 안 가."
"설마 밤이랑도 싸운 거냐?"
"그런 건 아니지만.. 거기 있으면 아버지가 너무 금방 눈치채니까."
말하자면 상대가 아버지라고 해도 기싸움에서 쉽게 밀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익히 아는 대로 맹랑한 도련님이라지만 그런 아게로가 얌전히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게 또 재미있어서 막 빼어 문 담배연기를 뱉는 진성의 입술이 부드럽게 휘었다.
"욕실은 저 쪽이다. 그런데 너, 갈아 입을 옷은 있는 거냐? 학교는?"
"없어. 학교도 안 갈거야."
"뭐?"
빈털터리라는 말은 뭐 그렇게 당당하게 하나 싶은 사이에 파란 머리통이 진성의 코 밑을 지나쳐서 욕실로 들어갔다. 같은 남자건만 짤 없이 문이 잠기는 소리가 울리는 걸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진성은 확 미간을 좁히며 이제는 필터만 남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욱여넣었다. 일단 데려온 건 자신이니 내키진 않아도 책임을 져야 했기에 잠옷으로 쓸 만한 옷가지가 있는 지부터 살폈다. 혼자 산 지 30년도 더 되었고, 그간 옷차림에는 신경을 끄고 살았으니 일관되게 고집해왔던 셔츠밖에는 마땅한 게 없었지만 말이다. 최대한 닿는 감촉이 좋은 녀석으로 골라 욕실 앞에 던져둔 진성은 잠자리에 이어 냉장고까지 살폈다. 정말 맨 몸으로 집을 나왔다면 저녁을 먹었는지도 미심쩍기 때문이었다. 한참만에야 귀신같이 진성의 셔츠를 입고 나온 아게로는 10시가 넘으면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말로 호의를 거절하긴 했지만.
"내일 아침으로 줘."
"내가 네 식모냐. 아무튼 건방진 꼬맹이 넌 일단 여기서 자라. 네 침대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우리집에 제대로 된 침대는 그거 하나니까."
"아저씨는?"
"난 소파에서 잘 거다. 어차피 늘 그랬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진성의 셔츠가 아게로에게는 큰 사이즈긴 해서 미니드레스처럼 가릴 곳을 가리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진성의 속옷마저 빌려주는 건 내키지 않아서 그대로 두었던 게 걸려서, 묘하게 남사스럽고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무는게 버거웠다. 집 주인이 쫓겨난 모양새로 침대까지 양보한 건 그래서였다. 소악마 같던 평소의 모습은 어디 버린 건지 더러움이라고는 모르는 듯한 얼굴과 표정으로 진성의 뒤를 따르는 소년이 그는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중성적인 외모에 물기까지 어려 더욱이 청초한 미모가 부담 만큼의 죄책감을 안겨줬다고 해야할까? 비누향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다고 해야할까. 잘 자라는 말로 억지로 떼어내진 아게로는 머리 속을 정리하기 위해 몇번 눈만 깜박이다 이내 진성의 침대에 몸을 뉘였다. 고민해야할 일이 산더미였지만 당장은 너무 피곤했다. 별세계 같았던 이 동네 밤 거리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해서 낯선 잠자리 같은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뜻밖의 배려에 마음까지 녹아버려서 더 아늑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곳이 진짜 집이라면 더 없이 좋을텐데. 내일부터는 이 집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모략을 펼쳐 봐야겠다. 에드안과의 기싸움보다는 그 편이 훨씬 가치있을 것이다. 아마도.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트친이신 사이하이님의 리퀘입니다..
올리기만 하고 손보질 않아서 밀린게 많은데 오늘도 시간이 별로 없네요 ㅠㅠ
짧고 부족한 글이라 말씀해 주신 내용의 반도 못 담은 것 같습니다만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사이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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