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탑

[신의 탑 - 밤 x 쿤] 첫키스

신의 탑/단편














분명 요리나 간식 준비에 관한 일로 누군가에게 타박을 들은 일은 없는데, 밤은 긴장한 눈빛을 옆으로 흘렸다. 오늘의 손님은 특별했다. 시험공부를 같이 하자는 말로 초대한 쿤은 밤이 안내한 거실의 티 테이블 앞에 앉아 실내의 곳곳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처음 본 공간에 대한 호기심 밖에 담겨있지 않은 시선이 고양이 같았다.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는 잠깐 기색을 살피려는 것 뿐이던 밤의 눈을 잡아두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밤은 망설임을 마치고, 간식이 든 트레이를 들고 돌아섰다.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쿤씨. 점심은 이따 시간 봐서 시켜먹으면 되겠죠?"

"아아..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집이라서 놀랐어. 인테리어도 취미인 거야?"

"아니요. 어머니 취향이에요."

친구사이에 '씨'라는 호칭은 매우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밤이 그를 처음 만난 건 상류층 자제들 간의 사교모임에서였다. 그 때의 호칭이 지금에까지 굳어져 버린 것이다. 형제들의 손에 끌려 억지로 오기라도 한 건지 당시의 쿤은 모임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름을 알려주는 일도 없이 슬그머니 테라스 중의 하나로 숨어 버린 것이다. 밤이 그에게 첫 눈에 반해 그 움직임만 쫓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가 왔었다는 걸 기억할 수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 퇴장이었다. 이름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패밀리 네임으로 말을 붙였던 것이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통성명 같은 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 찾았잖아, A.A.

그의 형제가 이만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그를 찾아올 때까지도 말이다. 예의 '쿤씨'를 찾으러 왔던 하츨링에게 캐물어 그가 밤이 재학 중인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는 걸 알게된 이후로 끈질기게 따라붙은 덕에 밤은 그와 교제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풀 네임을 들은 것은 그 이후에나 가능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처음 본 날부터 밤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그 때까지도 대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탓이다. 뿐만 아니라 쿤은 상류층 사회의 까다로운 예절이나 첨예한 화술에 대해서도 막히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단지 그런 자리에 끼어 있기를 싫어할뿐. 정리에도 소질이 없는 밤은 초대를 해 놓고 나서야 왜 자기 집으로 쿤을 초대했는지 후회했다. 급하게 정리도 하고 청소도 했지만 평소에도 완벽하던 그를 생각하면 그의 눈에 못 미치지 싶었던 것이었다. 매사에 정돈되어 있는 모습만 보이는 그의 눈에 밤의 노력이 어떻게 비칠까? 하지만 후회해 봤자 이미 벌어진 일.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긴 했어도 진짜 허락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당장은 그 기쁨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어쩐지. 너랑 분위기가 좀 다르다 했어."

"제 분위기는 어떤데요?"

"그냥 이것 보다 좀 어두운 톤이 취향이 아닐까 했었거든."

"그렇죠. 전 밝은 색이 도통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그럼 나랑은 왜 사귀자고 한 거야?"

"그, 그, 파란색은 예외거든요?"

"아. 맞아. 그렇네."

연애하는 재주만은 물려받지 못한 것 같아 보이던 그가 밤과 교제를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밤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연일 화제였지만, 그래서인지 '진도'를 나갈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가 않았다.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도 당사자인 밤이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쿤은 항상 다 아는 듯 웃고 있어도 가끔 밤과의 연애에 자신이 없어보였다. 밤은 분명 쿤이 알고 있는 정보의 반만큼도 모르겠지만 천하의 쿤에게도 분명 약점은 있었다. 터무니 없게도 그는 스스로를 너무 몰랐다.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연애에 있어서는 수동적인 것이다. 밤은 두 사람이 연예를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합리적 의심이 확신으로 변할 때 쯤, 그래서 밤은 무엇이 되든 행동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신이 먼저 한 발 내딛어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밤이라고 연애 경험이 풍부하다거나 스킨쉽의 대가 같은 건 아니었으나 그와 하고 싶은 일이 잔뜩 밀려있는 쪽이 밤이었으니까.

'분명 연인...이니까 그렇게 나쁜 마음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결심을 하고 나서도 망설이는 건 그만큼 쿤이 소중해서다.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무조건 밀어붙이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 설상가상으로 밤의 재치있는 대답에 말갛게 웃는 그가 너무 예뻐서 더더욱.

"잘 어울려서 다행이야."

분명 밤은 쿤이 모르게 그의 등 뒤로 점점 뻗어가던 손을 거두었었는데 들릴 듯 말듯한 그의 목소리가 밤을 확 끌어당겼다. 스스로도 잘 모르는 그 감정이 여하튼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그랬나보다. 청량한 색채의 모발에서 어째 달콤한 향이 났다. 이번에도 그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 이끌려 눈을 감았다. 그간의 무던한 시도와 포기가 무색할만큼 순식간에 촉. 입술이 닿았다. 그를 상징하는 색채와는 완전히 다른, 온기의 촉감에 놀라 순식간보다 더 빨리 멀어지고 말았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하자 마자 머리 속에서 터져버린 열기에 당황해 쿤을 밀어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뜻밖의 봉변이었기에 마찬가지로 사고회로가 정지당했는지 쿤은 아무런 말 없이 아랫 입술에 손끝을 얹은 상태로 어디를 향하는 지 알 수 없는 눈을 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밤이 자신이 보았던 풍경을 슬로우 모션으로 전부 복기할 때까지도 말이다. 꽤 오랜 시간의 침묵 후에 사건의 끝에 닿은 밤이 넋이 나간 듯한 쿤을 발견하고도 말의 시작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무렵. 숨이 터지듯 가볍게 쿤이 웃었다.

"저... 쿤씨?"

"이런 속셈이 있었는 줄 몰랐네."

"아니,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안 돼지. 우리 사귀는 사이잖아."

"어, 네... 괜찮으셨어요?"

"괜찮은 건 아닌데...."

첫 키스가 거의 도둑키스였는데 괜찮을 리가..라고 곱씹고 잇는 밤의 마음이 보인다는 듯, 쿤은 눈빛을 누그러뜨려 밤을 위로했다. 쿤은 분명 밤보다 연하지만 말투 때문인지 아니면 아는 것이 많아서인지 오히려 연상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 꼭 지금 같은 때.

"나도 처음이었는데 뭐."

아니 방금 한 말 완전 취소. 홍조가 도는 듯한 얼굴이 보인 풋풋한 웃음에 밤의 내면에는 다시 한 번 폭풍이 몰아쳤다.





















이상 그림존잘 MA님의 리퀘였습니다.
분명 리퀘를 받을 때는 상큼달달이 땡겼는데,
쓰는 도중에 상큼달달이 다 죽어버렸고
연애세포는 태상부터 없다보니 ㅠㅠㅠㅠ
퇴고도 미루고 이꼴인 저를 용서해 주십쇼 ㅠㅠ
솔찍히 마님께서 그림그리시면 이거보다 명작이 나왔을 거에요 ㅠㅠ
허엉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