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탑

[신의 탑 - 밤 X 쿤] Correction 下

신의 탑/단편

 

 

 

 

 

 

 

 

 “ 일이군. 네가 감상적이  때도 있고 말이야.”

 

 “감상 같은  아니다, 빨간 거북이.”

 

 거대한 파충류는 앉아있는 뒷모습만 해도 족히 인간의  배는 되어 보이는  키만큼이나 한참 아래의 무엇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굳이 고개를 숙이진 않았지만 붉은 눈이  밑을 향하고 있다는  분명했다. 그의 바로 앞으로 펼쳐진 거대한 수조,   가운데에는 청아한 물빛과 일체가 되어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누군가가 잠들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주변을 둘러 감은,   없는 문자가 빛나는  때문에 그가 잠든 건지 아닌지는 명료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머물러 있었으니까.

 

 “거의  ‘완성  같네?”

 

 “. 뚫린 입이라고 말은  하는군. 대체 검은 거북이에게 무슨 말을  거냐.”

 

 “아무 말도. 그래서 화가  거겠지. 예상하고 있겠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최악의 경우, 너희가 그렇게 되찾고 싶어하는 쿤은 모든 차원에서 사라질 ?”

 

 “.......”

 

 “도움이 필요해. ‘지금의밤을 말릴  있는 사람은  밖에 없어.”

 

 라크는  시간동안 침묵을 지켰다. 아래를 향한 눈이 가늘어졌다. 탑에서 자하드의 존재를 지우고 새로운 질서이자 왕으로 군림한 비선별인원, 스물다섯번째 밤은 탑의 새로운 지배자에게 주어진 권능으로 그가 잃은 것들을 다시 채워 나갔다. 탑의 신수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바꿀  있는 권리를 얻은 그에게  이상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탑을 오르며 잃었던 동료들, 혹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심지어는 지워져버린, 숨겨진 층의 데이터 세계와 시험의 층에서 밤에 대한 질투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호마저도 그는 원래로 되돌릴  있었다. 문제는 정작 가장 되찾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하드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는 결국 아를렌의 예언대로 그녀의 아들에게 목숨을  주었다. 자하드의 주술로 묶여버린 왕난을 구하기 위해 밤은 자하드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길을 택했다. 헌데 그게 쿤을 되살릴 길을 함께 지워버렸다. 라크와 함께 밤의 가장 소중한 동료였던 쿤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그가 쿤을 되살리기 위해 자하드가 반쯤 찢어발긴 쿤의 사체를 거의  복원했을 무렵이었다.

 

 “말릴 방법은 있는 거냐?”

 

 “있어. 기회는  한번이지만.”

 

 “....어쩔  없군.”

 

 밤과 라크는 자하드가 뽑아버린 쿤의 눈을 끝끝내 찾지 못했다.  가문의 신수가 응축되어 있는,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말이다. 하필 그게 쿤을 되살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지라  사람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하드가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예상하고 밤을 골탕먹이기 위해 그걸 삼켰다는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있었다. 밤이 그를 지워버리는 바람에 자하드와 하나가 되었던 쿤의 눈도 함께  세계에서 지워져 버린 것이다.  것이 밤의 힘이기 때문에 밤이  것을 되찾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밤이 그랬듯이 그를 꺾고 새로운 질서가  인물이라면 모를까. 밤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진실을 알게 되었을 , 라크도 느낄  있는 최대한의 절망을 맛보았다. 다만 라크와 밤의 행보에 차이가 있다면 절망으로 인해 사리분별이 되지 않을 정도까지 이성이 마비되지는 않았다는  하나로부터 비롯된 것일 터다.

 

 “안내해라. 빨간 거북이.”

 

 거대한 몸을 일으켜  거대해진 라크는 쿤이 남긴 푸른 창을 들었다. 밤이 포기하지 않았듯이 그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밤에게 제정신을 찾아 주는  우선이다. 이후에 다시,  언젠가,  수면 밑바닥에 잠든 마지막 소망을 건져 올리리라.  없이 눈으로만 인사를 건네고 라크는 붉은 머리의 마녀를 향해 뒤를 돌았다.

 

 

 

 

 

 

-

 

 

 

 

 

 

 “!”

 

 역흐름제어란 일단 신수의 흐름을 통제하는 기술이니 ‘흐름자체를 방해한다면 어떨까? 주변의 신수를 얼려 흐를  있는 신수의 양의 절대치를 순간적으로 줄인다는 쿤의 생각은 예상대로 작동했지만 아뜩한 역량의 차이는 순간의 기지만으로도 극복할  없는 것이었다. 조금 틈을 벌리나 싶더니만 아예 밤의 품으로 끌려 들어간 쿤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바닥에 내리꽂혔다. 10가문의 육체로도 한순간  앞이 아뜩해질 정도의 충격에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의 손목을 움켜쥔 밤의 악력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마치 조금의 방심도 없다고 경고하는 듯한...

 

 “미래에서 왔다고 알려 드리지 않았던가요?”

 

 “그래서? 어차피  이기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당연히 그게  괴롭지 않겠어요?”

 

 “내가 ? 아무튼  밤이잖아.”

 

 “.......”

 

 자신만만한 쿤의 미소에 밤은  말을 잃은  시선만을 내려보냈다.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기억 속의 쿤이 밤이  품에 가둔 소년과 똑같이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수라장 같은 집안에서 자란 쿤은 솔직한 성격의 밤이나 라크와는 달라서,  웃음이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나름의 무장이라는  밤은 그를 잃은 다음에야 알아차렸다. 왕난과 탕수육 팀의 위기라는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동요하던 밤을 쿤은 똑같이 웃는 얼굴로 배웅했었다.  쪽의 동료들은 그와 엔도르시가 어떻게든  볼테니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녀 오라고 했다. 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려고 했던 엔도르시가 부상을 입은 동료들과 함께 남겠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건데, 순진했던 과거의 자신은 동료를 구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밤이 자하드의 군단과 다시 맞딱뜨린다는 소식에 라크마저 밤을 지원하러 목적지를 바꿨고, 이후 밤과 라크는  날의 결정을 후회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자하드 공주라는  결국 자하드의 장기말이   밖에 없다는    때는 깨닫지 못했던 걸까? 자하드를 없앨 때까지 그녀들은 완벽하게 해방   없는  당연했는데, 자하드의 수하들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동료를 그녀들과 함께 두다니. 엔도르시의 자책이 아니더라도 혼자 남은 쿤이 얼마나 불리한 상황에 빠졌을지는 충분히 그려볼  있었다. 결국 자하드의 손에 떨어진 그가 얼마나 끔찍한 죽음을 맞았을지도.

 

 “맞아요. 제가 쿤씨를 괴롭힐 수는 없겠네요. 하지만 이대로 보낼 수도 없는걸요.”

 

  그대로였다. 시간을 넘기에 앞서 밤은 분명 무수한 경고를 들었다. 최악의 경우 과거의 밤이 자신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고, 이어 바뀐 흐름에 의해 밤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알면서도 감행한 거다. 모두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아집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영영 잃게 했다는  인정해야했다. 원하던 대로 신이 되었음에도 되돌릴  없는  쿤이라면 자신은 잘못된 길을 걸었음에 틀림 없었다. 그러니 되돌려야했다. 대신 자신이 지워진다 하더라도. 굳이 손대지 않아도  탑에서 밤이 다루지 못할 신수는 없다지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담아서 밤은 쿤에게 입을 맞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일에 당황했을 그의 입술을 열고 들어가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안에서부터 신수를 휘저어두는 것이다.  짧은 만남이 아쉽지만 쿤이 곁에 있으면 밤은 흔들리고 말테니 어쩔  없었다. 내부에서부터 엉킨 신수의 흐름은 쿤의 의식을 잠시 빼앗을 터다.  동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한다. ‘ 여는 열쇠를 찾아서 미래로 그를 온전히 데려갈 것이다.   단단해진 팔로 밤은 쿤을 안아 올렸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나 그보다  하얀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 자요, 쿤씨.”

 

 물론 밤이 원하는  최대한의 최선이니 가급적이면  자신의 죽음도 피해갈 생각이긴 했다. 자신이 사라지고 자하드가 계속 탑을 지배하는 미래도 밤이 바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가 밤의 친구들을 모두 살려둘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숨겨진 층의 데이터 세계에서 마주쳤을 때도 그는 밤의 친구들까지 모조리 죽여주겠다고 장담했었고, 당장 밤의 본래 시간축에서 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만 봐도 결과는 자명했다. 자하드에게 끌려가면서 까지도 부상당한 동료들과 자하드의 공주들을 얼려 가사상태로 만든 쿤의 기지 덕분에 다른 이들은 무사했지만 유일한 화풀이 대상이  탓에 라크와 밤은 여즉 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처음 벙커로 쿤을 데려왔을 때처럼  깨지는 것을 포장하듯 쿤을 이불로 감싸둔 밤은 아직 혼자였다.

 

 “이제 열쇠만 찾으면... 다시 셋이서 모험을 떠날  있겠네요.”

 

 

 

 

 

 

-

 

 

 

 

 

 

 “그렇게 빤히 바라보지만 말고   있으면 바로  줄래. 우린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거든?”

 

 “아니... 화련씨가 순순히 도와주신다니까  신기하달까 그래서요.”

 

 “이건 도와주는  아니야.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하는 거지.”

 

 “ 다른 제가 그렇게 위험한 존재인건가요?”

 

 “너라서가 아니라 ‘그런존재는 누가 되든 위험해. 되돌릴 기회가 있을  움직여야하니까 서둘러.”

 

 비록 선별인원의 신분이지만 관리자의 보호가 함께하고 있으니 당장은 자하드군에게 따라잡힌다고 해도 걱정은 없다. 그렇다고 화련이 전에 없이 순순히 나서 주는 일에 긴장감이 없진 않아서 모두는 자신이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밤의 이야기를 들은 화련은  길로 자신의 무기를 챙겨들고 앞장섰다. 엔도르시마저도 당황할만한 반응이었으나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간도 없거니와 자세히 알면 일이  복잡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 파란 거북이는!”

 

 “제일 위험한 상태지. 그래서 말했잖아. 서두르라고.”

 

 “밤이 쿤을 죽인다는 거야?”

 

 “목숨의 위협이 위험의 전부가 아니야, 공주.”

 

 “말고 뭐가 있단 말이야? 시간 없다면서 돌려 말하기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 대해서 내가 뭔가 이야기 하는 것도 우리에게 위험이   있어. ‘ 그런 존재야.”

 

 동일한 존재가 둘이라는 것도 골치아픈데 하물며 탑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는 비선별인원이 갑자기 하나  늘어났다. 탑의  신수가 진동하는  길잡이인 화련에게는 똑똑히 느껴졌다. 과거의 밤은 지금의 밤보다 나을 리가 없으니 ‘ 필시 미래의 존재. 굳이 모두를 피해 시험장을 돌파하고 쿤만 데려간 것을 보면 자신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같진 않다. 하지만  알면서도 굳이 쿤을 데려가려 한다는  보통보다  심각한 문제다. 관리자가 섣불리 개입하지 못하는  보니 미래의 밤은 그녀가 원했던 대로 신이 되는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완벽한 신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문제의 핵심에 쿤이 있을 터다. 누군가 운명에 장난을  밤이 직접 그를 해하게 만들었던 모양인데 밤의 성격에 그에게 있어 소중한 인연의 대명사급이었던 쿤을 버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은 결코 예상할  없는 미래의 어떤 사건이 지금의 사고로까지 이어졌다고 봐야겠지.

 

 ‘이미 잃어버린  세공해서 다시 만들겠다는 건가...’

 

 미래의 쿤이 자신으로 인해 잘못되었다는  알면 여기있는 밤도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닌지라 예상되는 미래, 아니  다른 밤이 무엇인지 자체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는 화련이었지만 그녀를 쫓는, 열의에  밤의 얼굴을 곁눈질한 화련은 날이  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다시 앞을 향했다.

 

 ‘집착이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곤란하군. 하필  상대가 쿤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럼 그렇게 대단한 존재를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있긴 하다는 거야?”

 

 “엄밀히 말하면 그건 ‘지금의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은 아니야.”

 

 길잡이는 그들이  길을 걸을  있는 사람에게만 알려준다. 엔도르시의 말대로 미래에서  스물다섯번째 밤은 이미  탑의 신이기에 상대할 방법 같은  길잡이인 그녀라해도   없었다. 비선별인원이라는 밤의 메리트도 상대가 미래의  자신이기에 사라진 시점임에도 그녀가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 그녀의 숙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실 만큼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녀는 믿을  있었다. 미래의 자신이  뒤틀림을 교정하려  것임을. 사실 길잡이조차 시간이 교차할 때의 혼돈을 읽을  없기에 시도하지 않을  탑의 정점에 달한 존재들이라면 시간을 뛰어넘는 일에 대해서도 일반론은 알고 있을 터다. 목적이 교정인 만큼 필요한 시점과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따라서 그녀는 미래의 자신에게  최대의 이레귤러의 위치를 알려주고자 했다. 개입을 위한 틈은 필시 충돌, 그러니까 동일한 존재들이 마주하는 순간이 만들어  테니까.

 

 “역시 나라니까.”

 

 화련의 예상대로 미래의 그녀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번개가 치듯 갈린 공간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행을 덮어왔다. 그들이 나타난 것이  앞이 아니더라도 걸음을 멈출  밖에 없는 위압감은 그들의 둘러싼 신수의 진동으로도   있었다. 층이 바뀐 것처럼 탑의 신수가 휘감기며 모여드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들은 목소리는 분명 화련의 것이었지만 여기 있는 모두를 전부 합한 것보다  거대해 보이는 그림자는 밀도 높은 신수로 공간을 옭아맸다.

 

 ‘저건...’

 

  실루엣이 자신을 닮았다는  가장 먼저 눈치챈  라크 본인이었다. 본래부터 감이 좋았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도   있겠으나 미래와 현재의 자신이 맞딱뜨릴 때의 이지러짐을 그만큼 분명히 느낄  있는 자가  어디 있을까?

 

 “어디로 가면 되는 거냐, 빨간 거북이.”

 

 “.....라크씨?!”

 

 “.......”

 

 화련에게서 과거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막상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과거의 동료들을 마주하고 보니 자신은 감상적이지 않다고 자부하던 라크마저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내심 쿤도 만나기를 기대했었으나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다. 밤의 목적이 그였으니  만나게 되겠지만.

 

 “, 정말 악어란 말이야? 지금보다  크잖아?”

 

 “화련 누님! 나는 화련 누님을 보고 싶어!”

 

 “봐서 좋을  없을 텐데. 이봐,  다른 . 거기 조그만 악어는 우리가 잠시 맡아줄 테니 너는 어서 나머지를 데리고  다음을 향하도록 .”

 

 “라크씨를 넘기라니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럴 수는 없어요.”

 

 “그게 모두가 계속 탑을 오를  있는 길이야, . 서두르지 않으면 쿤을 구할  없을텐데.”

 

 “ 걱정은 하지 마라, 거북이들. 나는 아무래도  돌기둥 같은 녀석에게  일이 있었다.”

 

 미래의 자신임이 분명한 거대 파충류를 매드 쇼커로 가리키며 라크는 말했다. 물론 지금 대체 어떻게  상황인건지 판단할만한 이성은 라크에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마주있는  생물이 미래의 자신이고 밤이 만났다는 그가 미래의 밤이라면  상황이 이상하다는  눈치채고도 남았다. 미래의 밤과 자신이 여기에 있는데 미래의 쿤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상상할  없는 일이니까.

 

 “말했다시피 지금 네가 걱정해야 하는  악어가 아니라 쿤이야. 그를 되찾으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거든? 게다가 시간도 부족하지.”

 

 “파란 거북이한테 가라.   약골 거북이와 비교하지 말고.”

 

 “…..조심하세요, 라크씨. 쿤씨를 찾으면 다시 여기로 올게요.”

 

 쉽게 떨어지지 않는 걸음이었지만 밤이 미래의 자신을 보았듯  모습이 미래의 라크라면 라크는 저렇게 성장할 때까진 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믿음이 동료들의 발을 움직였다. 화련을 따라 멀어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잠시 눈길을 주던 라크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기만   입을 열지 않는 미래의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대답해라, 멍청한 돌기둥. 파란 거북이는 어떻게  거냐.”

 

 “…….”

 

 “  하고 있었던 거냐.”

 

 “……”

 

 “한심한 놈이군.”

 

 따지고 보면 같은 사람이건만 라크는 과거, 조그만 자신의 일갈에 따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때의 자신은 분명 한심했다. 인정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자신은  자리에  있다. 그리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성격상 변명은 용납되지 않았다. 대신 먼저 눈을 피한 그는 여전히 과거의 화련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던 화련을 불렀다.

 

 “검은 거북이는 어디 있는 거냐?”

 

 “기다리면  거야.”

 

 앉을 자리를 물색하던 화련은 오래지않아 고목의 나무둥치를 정리해 의자로 삼았다.  라크의 붉은 눈이 가늘어 졌지만 그런 것에 마음쓸 그녀가 아니었다. 발목까지 길게자란 불꽃같은 머리카락을 높게 올려 묶으며 하나뿐인 마녀의 붉은 눈동자는 기류가 바뀌고 있는 천정의  편을 향했다. 밤은 자신과 같은 시간 축에서  손님이 있다는  눈치챘을 터다. 그를 돕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따라온 화련에게 당장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려도 이상할  없는 상황이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때문이다. 어찌해야 쿤이 안전할  있는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거다. 수중에 두고자 납치를 강행했으니 당연하다. 아직 그는 자하드와 같은 폭군이 되진 못해서 강요에 익숙치 않은  화련에게는 다행스럽다가도 점점 그리 변할  같은 낌새에 씁쓸함을 느껴지기도 했다.

 

 상관 없어.

 

 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동료들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같아서, 시비조로  경고였다. 비선별인원이나 네이티브원 같은 특별한 존재도 아닌 너는 자하드를 넘을  없다고. 딱하게도 네게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고. 화련의 경고에 쿤은 대수롭지 않다는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이미 끝냈는걸.

 

  아게로 아그니스가 쿤의 가주가 되는 것이 중요한  아니라  에드안이  이상 쿤의 가주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에드안이 무너지면 쿤의 질서는 다시 쌓아올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닐테니 그걸로 됐다. 에드안이나 다른 10가주의 뜻이 어떠하든 그들은 자하드와 함께 탑의 적폐로 낙인찍혔고 이제는 사라져야  존재다. 탑의 새로운 질서가  밤이 자신과 같은 과거의 유산을 안고 간다는 것도 어찌 보일지 모르는 상황이건만 마음씨 고운 밤이나 라크는 여태 함께한 동료를 그런 이유로 잘라낼만큼 모질지 못하니까 이번에도 쿤이 직접 나서주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네가   야심가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자리에 머무르면 썩어버리겠지.  그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완벽한 변화니까.

 

 ........

 

 이만하면 충분히 야심가 아닌가?

 

 ‘  과소평가 했던 걸까, 아니면  바보를 과대평가 했던 걸까.’

 

 자하드가 지배하는 탑을 바꾸고자 했던 밤이나 자신의 긍지를 되찾고자 했던 라크에 비해서 고작 자신의 가문을 바꾸는  목적이었던 쿤은 소망은 보잘것 없다고 여겨졌을지도 모르지만 소망을 이루는 일에 있어 완벽을 기하는 정도에 밤과 라크는 쿤과 같은 고민을 했을 리는 없다. 그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지언정 자신이 악역이 되어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건 종류가 다른 올곧음이다. 생각할 수는 없어도 본능으로 그걸 알아차렸기에 밤과 라크는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고  이렇게나 찾아헤맬 정도로 의지했던 거겠지.

 

 “비올레가 온다, 악어들.”

 

 “ 누군데 아까부터  악어라고 부르는 거냐, 시뻘건 거북이!!”

 

 “네가 좋아하는 사냥 준비부터 하지 그래? 저건 탑에서 제일 강하고 귀한 사냥감이거든.”

 

 반면 아무리 좋은 꿈이라도 그걸 이루기 위해서 변해 버린다면  무슨 소용일까? 가까워오는 암운이 화련의 입술에서  한숨을 끄집어냈다.

 

 “아무래도 나까지도 네가 필요해  모양이야, .”

 

 

 

 

 

 

-

 

 

 

 

 

 

 “저기 화련씨.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번에도  속이신 거라면 정말로   거에요.”

 

 “ 빨리도 말하네.”

 

 “설마!”

 

 “이번엔 아니니까 안심해.”

 

 화련이  일행을 이끌고  곳은 무법지대의 공터였다. 지배자의 손길은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리자의 권능은 여전할 테니 당장은 자하드의 습격에서도 중간구역보다 안전할지도 모른다. 미래에서  인물들이 움질일 때마다 신수가 일렁여 황야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런 곳에 멈춰선 화련이 드디어 뒤를 돌았다.

 

 “여하튼 너희가 지금부터  일은 쿤을 찾는 거다. 정확히는 ‘받아내는것에 가까우려나?”

 

 “뭐라는 거야  …”

 

 “길잡이는 원래  저렇잖아.”

 

 “듣는 사람이 어렵게 듣는게 문제 아닐까.  있는 그대로 말했어. 쿤은 텔레포트 사용에도 익숙한 등대지기니까 ‘ 틈만 보인다면 시도하겠지.”

 

 “그럼 포켓으로 연락을 하는  먼저 아냐?”

 

 “ 볼걸? 순순히 보내  사람이었으면 데려가지도 않았을테니.”

 

 “ 말이 사실이면 텔레포트도 하면  되는 거잖아!”

 

 방금 전까지만해도 미래의 화련은 몸매 착한 누님이 됬을 거라며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던 이수였지만 친구의 일을 아주 잊고 있진 않았나보다. 무슨 이야기인지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바보들 보다는 그래도  편이 낫다고 칭찬을  줘야 하는 걸까?

 

 “위험하지. 좌표를 제대로 지정하지 못한 텔레포트는  하는  상책이긴 .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쿤이라면 시도할거야.”

 

 말했듯이 좌표를 제대로 지정할  없는 상황에서 무작위로 시도하는 텔레포트는 위험부담이 상당하다. 존재가 비집고 들어갈  없는 위치를 좌표로 지정하면 낭패일 테니 보통은 자신의 등대  하나를 기준 삼는 것이 일반론이지만 동료들에게 맡겨둔 등대가 없는 상황에서는 도박을   밖에 없다. 이런 경우 일단은 간섭이 없는 공중을 좌표로 잡는  그나마 차선으로 시도해봄직 하다. 높이를 너무 높게 잡을 필요가 없는 곳을 알고 있다면  곳의 어디쯤을 지정하는  시도할  있는 최선이 되겠다.

 

 “이런 공터가 주변에 있고 10가문의 육체는 튼튼하니까. 다만 이런 신수 흐름 속에서는 나도 위치를 정확히   없어.”

 

 “그래서 ‘받아야한다는 거였냐….  좋아. 장소가 넓으니까 구역을  나눌까? 봉봉이 있는 엔도르시나 청노를   있는 밤이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넓은 면적을 커버할  있겠지?”

 

 “ 밤이랑 같이  건데?”

 

 “ 와중에도  진짜…”

 

 “따로 가는  좋지 않을까요?  편이   안전하다면엔도르시씨도 쿤씨가 다치는  원하지 않을  아니에요.”

 

 솔직히 엔도르시야 쿤이 죽지만 않는다면 다치는  정도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그런 시커먼 속내를 들켜도 괜찮지는 않은 고로 어쩔  없이 이수의 제안을 수락했다. 엔도르시의 속내를 알기 때문인지 화련은 선별인원들이 각자 맡은 구역으로 흩어지고  다음에서야 밤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이쪽이야, .”

 

 “이쪽이란요?”

 

 “쿤이 떨어질 장소.”

 

 “알고 계셨던 거에요? 아까는 분명 길이  보이신다고…”

 

 “원칙적으로 신수의 흐름과 ‘ 아무 상관 없어. 네가 찾아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

 

 “화련씨는 정말….”

 

 엄밀히 말하면 밤이 걱정하는 방향이 아니었다해도 밤은 그녀에게  속은 꼴이 되어버렸다. 당장은 밤의 목적과 그녀의 목적이 일치하니 다행이지만 이래서는 그녀의 말을 곧이 들을  없어질  같다.

 

 “ 제가 찾아야만 한다는 거죠?”

 

 “신수제어를왠만큼   있는  너밖에 없으니까. 관리자는 쿤이 가지고 있는 ‘바늘새우 넘겨 받으면 너희를 다음 층으로 보내 줄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쿤이 제대로 등대를 제어해야하지.”

 

 “등대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텔레포트를 시도한다는 건가요? 위험한  아니에요?”

 

 “말했다시피 본래는 미친 짓이야.”

 

 “그런….. 쿤씨!!!”

 

 과연 화련의  대로였다. 예측이 어려우면 공중으로 좌표를 잡는게 낫다고 해도 쿤이 지정한 좌표는 완전히 허공이었다. 연산이든 입력이든 뭔가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겠지만 지금  원인을 따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밤은 자신이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를 따라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어젯밤의  속에서의 일이 겹쳐 보였다. 간신히 쿤이라는 것만 알아볼  있을 정도였던  속에서의 그보다는 훨씬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기시감은 밤의 마음 속에 불안을 퍼뜨렸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자신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다행히  꿈의 마지막처럼 밤은 쿤을 따라잡을  있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몸이었다. 디폴트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던 건지  쿤의 등대도  사람의 곁으로 내려왔다.

 

 “쿤씨, 괜찮아요?”

 

 “흔들지..”

 

 “?”

 

 “체내의 신수를 안정시켜, .”

 

 신체적인 구속 없이 저항할 능력을 뺏는  있어서는 내부의 신수흐름을 교란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장기가 뒤섞이는 기분일 거다. 생각대로 제대로 움직이는지 판단도 어려울 텐데 텔레포트까지 시도한 의지가 놀랍다고 해야할까? 주어가 없는 명령이었지만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밤은 화련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쿤의 입술을 빼앗았다. 물론 모양새가 그랬다는 것이지 밤은 진지했다. 아무래도  편이 흐름을 읽기도 쉽고 조율하기도 쉬웠으니까. 현기증이 심해서 눈을 뜨는 것조차도 버거웠던 쿤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시야도 다른 감각도 차츰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도 분명히 인지할  있었고.

 

 “정신이 드세요?”

 

 딱하게도 밤보다도 먼저 화련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기억해낸 쿤이었지만 좋은일 하고도 거칠게 밀려난 밤은 해맑은 눈으로 쿤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런 밤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당황스러움, 약간의 부끄러움까지로 혼란 일색이라 아직까지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쿤에게 화련이 소리쳤다.

 

 “! 바늘새우를 관리자에게 넘겨! 어서!”

 

 

 

 

 

 

-

 

 

 

 

 

 

 라크가  자리에 있으니 미래에서   강자가 마음껏 겨루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가벼운 육탄전만으로도  둘이 얼마나 강한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런 위압감이 느껴졌다. 직접적인 위협이 없지만 손끝 하나 까딱할  없는 공기에 답지 않게 라크는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  막는 겁니까! 라크씨도 분명 쿤씨를 되찾고 싶잖아요!”

 

 “잘은 모르지만  방법은 틀렸다.”

 

 “틀리지.. 않았어요!!”

 

 따라붙는 라크를 피하기 위해서 휘두른 밤의 손은 멀리까지 흙먼지를 읽으키며 대지를 할퀴고 있었다.  거센 풍압을 몸을로 받아내고도 흔들림 없이 라크는 밤의 진로를 막아섰고 말이다.

 

 “틀렸다. 우리의 파란 거북이는 아직  곳에 잠들어 있으니까.”

 

 “그래서 쿤씨를…”

 

 “ 녀석은 저들의 파란 거북이인 거지.”

 

 “……”

 

 “ 녀석을 깨울 거다. 다른 파란 거북이는 필요 없어.”

 

 라크의 말이 맞다는 것처럼 그의 손에 들린 푸른 창이 냉기를 뿜어냈다. 날랜 밤을 전부 얼리 수는 없어 옷깃에만 서리가 묻은 정도였지만 라크와   거리를 두었을  밤은 결국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어떻게요. 제가  손으로…”

 

 “ 손으로   없다면 내가 하면 되지.”

 

 “…..”

 

 “그들을 보내 줘라, 검은 거북이.”

 

 “….끝났군.”

 

 땅이 울리는 소리가 모든 공간을 메워왔다. 관리자다.  층의 관리자가 시험을 통과한 선별인원들을 위로 올려보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드물게도 이렇게 넓은 공간에 선별인원들이 흩어져 있으니  층의 기류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 오늘 하루에만 대체  번의 풍파를 겪는 것인지 모를  층의 신수들이 무색하게도 이쪽 불청객들의 일정도 이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 층으로 무사히 올라갈 모양이야. 지금 그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

 

 “….화련씨..”

 

 “ 악어도 보내줘야 하니까 우리도 서두르자고. 돌아가면 쿤을 깨울  있는 ‘ 알려주지.”

 

 “뭐라고요? 그런 방법 같은  없다고 하셨었잖아요!!”

 

 “네가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벌였기에 생긴 가능성이니까 이전까진 없는  맞지. 그렇다고 이런 경험이 유쾌했다는  아니야. 여러모로 큰일날  했다고.”

 

 황야의 이곳 저곳에서 붉은 빛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선별인원들을 실어나르는 관리자의 신수가  거리에서는 그리 보이는 것이리라. 그들과 함께 있던 라크의 몸도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자했다. ‘ 열기 위해 그런 라크에게 다가가던 미래의 라크는 얘기치 않은 순간에  쪽을 바라보던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  키만큼이나 우수한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나 거대한 존재를 보지 못한다는  있을  없는 일이겠지만.

 

 “파란 거북이!!”

 

 그들도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마당에 다가설 수는 없었지만 라크는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동료를 불렀다. 눈이 마주친 것이 착각이 아니라면 비록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다라도 그가 라크라는 , 무언가 말하려 하고 있다는  알아봐 주겠지.

 

 “ 들어라 파란 거북이!  결코!   다시!  우리가 없는 곳으로 보내지 않을 거다!!! 알겠냐! 그러니까 너도 도망치지 마라!! 아니,  따라 잡을 거다, 파란 거북이.”

 

 “라크씨…”

 

 관리자의 신수가 붉은 빛이라면 이쪽을 데려갈 빛은 찬란한 금빛이었다.  가지 색의 빛으로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그들은 선명한 푸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눈에 담았다.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는 아직   없었으니까.

 

 

 

 

 

 

 

 

 

 

 

 

 

 

 

 

 

 

 

 

 

 

 

 

 

드디어 쓰는 하편입니다.

 

사실 이 뒤에 한 문단 정도가 더 있어야 하는데 인내심 부족으로...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미래에서 온 밤과 라크의 언행으로 쿤은 미래의 자신에게 닥칠 일을 예상합니다만

 

밤이 자하드를 이기는 미래를 바꾸지 않게 위해 몇번인가 같은 선택을 하기에

 

당장 밤과 라크가 넘어오기 전까지의 미래는 바뀌지 않죠.

 

하지만 반복의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차이들이 결국은 쿤을 살릴 방법을 만들어 주었다....

 

가 결론입니다.

 

화련의 교정은 어떻게 저떻게 성공한 셈이 되고요.

 

이런 글의 커플링이 왜 밤쿤인고 하면 원래 그럴 예정이었는데 그 얘기까지 쓰면 제가 남아나지 않아서... 입니다.

 

어찌보면 미완성인 채입니다만 거의 덕질 시작 시점에 쓴 글이 남아있는게 다른 글 쓸 때마다 눈에 걸리고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요즘 시간도 잘 나지 않는데 무슨 배짱으로 이런 글을 구상했던건지 참 스스로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부족하나마 하나 더 쳐 냈으니 다음 번엔 다른 걸 들고 오겠습니다.

 

요즘 리버스가 훨씬 강세인 것 같아서 재연재랑은 별개로 마음이 허한데 자급자족이라도 해야죠 허허..

 

 

 

 

 

 

 

 

 

 

 

 

 

 

 

[신의 탑 - 하츠 X 쿤] 기회와 기약

신의 탑/단편

 

 

 

 

 

 

 

 “, 폐하! 제발 윤허를! 폐하!”

 

 “귀찮게 무슨 윤허야. 당장 내다 버려.”

 

 “육친의 정을 봐서라도, 제발…”

 

 “시끄러. 황족이면 황족답게 체통을 지키라고 했잖아. 감히   말하게  테냐.”

 

 “….”

 

 “  말하게 하지 말라고.”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번개가 본전을 가르고 지나갔다. 도열한 대신들은 푸른 번개가 지나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었지만 젊은 황제의 발치에서 애걸복걸하던 종친은 그대로 고압의 전기에 비산하여 사라졌다. 생명의 흔적은 사방으로  혈흔뿐. 신분을 이용하여 여항의 여인을 함부로 취한 죄는 당연히 물어야 하였으나 생전의 위세를 생각하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다. 혈육의 명줄을  손으로 끊고도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앳된 얼굴은 자신의 번개가  놓은 길을 따라  들어오던 차라 혈흔을 뒤집어쓴 누군가를 뒤늦게 발견하고 작게 혀를 찼다.

 

 “미안하다, A.A. 미처  봤군.”

 

 “……죽어 마땅한 죄과가 있었다 한들 형장은  곳이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

 

 “미안하다니까. 하츠, , 어서 친왕전으로 모시도록 .  잘못이니까 의복은 내가 새로 마련해 주지.”

 

 제위를 차지한 이상 아무리 허물 없이 지내던 형제라 할지라도 말을 가벼이 하지 말라 골백번은 일렀거늘.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동생에게 벌써부터 약한 두통을 느끼고 있는 아게로지만 문무 대신들이 모여있는 본전에서 황제를 훈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잔소리는 사석에서 하기로 하고 황제의 명령을 받드는  궁인을 따라 발길을 돌렸다. 선황인 에드안은 수많은 부인들 사이에서 그보다 많은 자식을 보았기에 유일한 적자인 란이  입맛대로 이렇게 썰어낸다 한들 남아있는 황족의 수는 아직도 많았다. 다만, 이대로는  역시 선황에 이어 폭군으로 기록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집정 초기의 란은 선황이 버려두다시피  민정을 살피고 황실과 관료들의 부패를 척결하며 성군이 등극했다는 기대를  몸에 받았고, 지금도 백성들은 그를 우러러 칭송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부패의 척결에 있어서 죄과를 따지기도 전에 이렇게 힘으로 눌러버리는 모습에 질려가는 귀족들이 늘고 있었다. 작은 결점도 용납하지 않는 란의 방식 때문에 편전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피바람이 불었다. 출세가 오히려 저승길인지라 많은 이들이 등청을 거부해, 아게로를 비롯한 몇몇 친왕들이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문무의  분야를 돌보아야  정도로 나라의 일손이 부족했다. 란을 제어할  있는   되는 인물 중에 하나였던 벽성(碧聖)공주 마스체니마저 출궁하자 군주를 말리는 일을 거의 혼자 도맡게  아게로는 단연코  치하 폭정의 최대 피해자였다. 이미 성인식도 치뤘겠다 황실 간의 정략혼에 있어서는 혼기가 찼다 여겨지는 입장임에도 혼사 이야기가 들어올 때마다 대신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다른 황자를 천거하는 웃지 못할 광경을 지켜본 것이 이미 얼마던가? 아게로까지 출궁하면 쿤의 궁은 란의 치세가 이어지는 내내 매일이 살얼음판일 테니 살고자 하는 그들의 절박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과연 아게로는 얼마나   있을까.

 

 “죄다 선황의   머리를 물려받았나, 벌레만도 못한 놈들..”

 

 “전하, 고정을…”

 

 “그만큼 죽어나갔으면 몸사릴 줄도 알아야지. 나는 시간이 남아 도는  알아?”

 

 창경왕()  아게로 아그니스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처에 닿기도 전에 스스로 청은발을 묶어 올렸던 비단 끈을 먼저 풀어내고 외의의 매듭을 당겨 느슨하게 만들었다. 란에게 목숨을 위협받은 적은 없다지만  안의 모든 사람이  하나에게 기대는  상황도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본디 뛰어난 언변과 신묘한 지략으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란의 치세 초기에 친왕 중에서도 현황의 조력자로 크게 활약했으며 란이 선정을 베풀도록 이끈 장본인이었으나 일이 이리   알았으면 차라리 칩거할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후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어차피 황제가 되지 못할 운명이라는  진즉에 알고 있었던 마당에 그가 바란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친왕의 신분이면 궁에 머무는 황족 중에서도 신분이  높은 축이라 란이 의복을 내려주기 전이라 한들 갈아 입을 옷이 없지는 않아서 아게로는 우선 친왕전에 닿자마자 형제의 피에 젖은 외의를 벗어 나인의 손에 맡기고 세안을 위한 온수를 준비하라 일렀다. 대전에서 란의 낌새를 살피던 단의 호출로 밤새 공문을 읽다 잠깐 눈을 붙이기도 전에 달려갔건만 결과가 이꼴이라니 시작부터 허무한 날이다. 아게로가 의복을 정제하는 순간에도 방심할  없는 노릇이라 준족인 단을 다시 란의 곁으로 보내면서도 분에 못이겨 이를 갈며 아게로는 환복을 위해 나인들을 물렸다.

 

 “ 하겠으면 그만 둬라, 귀치장.”

 

 “.”

 

 “성질 더러운  동생을 말리는  말이다.”

 

 “말은 쉽지. 사람들이  단이나 노빅한테 맡기지 않고  찾는  알면서 하는 소리야?”

 

 “…….”

 

 “ 탓이니까 고쳐 달라는  아냐. 란의  결벽증을.”

 

 “그렇다면 더더욱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써야할  아니냐.”

 

 “어떤.”

 

 “나와 도망치자.”

 

 “.....미쳤어?”

 

 하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을  아게로의 반응은 충분히 빨랐다. 옷을 여미는 매듭을 풀어가던 중이라 반쯤 자유로워진 옷감이 호를 그리다 너풀거리며 떨어졌다. 소싯적부터 함께한 숙위의 입을 틀어막고 벽으로 밀어붙인 아게로는 이미 자신이 친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물린 이후임에도 긴장감을 느꼈다. 야반도주를 꾀했다고 해서 란은 아게로까지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츠는 어떨까? 선황의 제위시절과 다름없이, 죽음에 무뎌질 정도로 많은 피를 보고 있는 지금이지만 아게로는  주변으로 혈무가 몰아치는 날을 상상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란은 분명 아게로에게 관대했지만 그만큼 집착하고 있었다. 많은 친왕들이 출가 전에도 친왕부를 두어 사가에서 지내고 있음에도 란은 따로  내에 친왕전을 지어 아게로를 붙잡았다. 대신들이 먼저 나서서 말리지 않았더라도 란은 아게로에게 출궁을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반증이었다. 그건 정사를 논할 상대가 아게로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다. 란의 속내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진중히 헤아려본 일조차 없지만 사람에게는 예감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도 란은 이런 식으로 아게로를 독차지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아게로가 그의 수중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농이 지나치면 화근이 되는 법이야.”

 

 “........”

 

 “  가려 . 하여간 몸만  졌지 변한  하나도 없어.”

 

 “그러는 너야말로  걱정  그만하지? ...”

 

 “전하!”

 

  놈의 궁은 말싸움  시간도 주지 않는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아게로는 벗으려던 옷을 매듭은 묶지 않은 채로 다시 걸치고 나인을 불러들였다. 등청을 위해 예복을 제대로 입었으니  세겹을  벗어내지 않는 이상 속살이 비칠 염려야 없겠지만 예전부터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던 그를 아는 하츠의 눈에는 그간의 변화가 다시   눈에 띄게 되는 대목이었다. 요즈음의 아게로는 황족이 아니라 국정을 돌보는 기계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처럼 여유를 찾아볼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마음 고생은 똑같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하츠의 입장에서는 몸은 갇혀 있었다 해도 폭군으로 악명 높은 선황의 제위시절의 그가  황족답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송구하오나 폐하께서...”

 

 “ 송구해. 옷을 주겠다고 했으니 갈아입기 전에 갖다줘야지.”

 

 “.....하아..”

 

 아게로가 단벌신사로 유명한 다른 친왕도 아니고 이미 가진 의복만 해도 족히 일백벌일 텐데, 그저 빠진 옷장을 채워 주겠다는 말인  알았더니 당장에 저가 하사한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뜻이었을 줄이야. 백번 양보해서 란의 심중을 아게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라고 쳐도 황제의 밑으로 늘어선 나인의 수가 얼마인가? 환관에 호위에 나인을 합쳐 못해도 수십명이 란의 일거수 일투족을 뒤따르고 있을진데 굳이 직접 오다니. 옷궤를 직접 지고 오지 않은  보면 사람이 있다는  알고 있긴  모양인데 말이다. 아무리 어이가 없어도 황제를  밖에 세워둘 수는 없어서,   없이 모양새는 갖추도록 풀었던 매듭을 다시 묶으며 아게로는 길을  상석으로 황제를 모실  있게  주었다. 란이 고깝지 않아도 황제는 황제이니 하츠도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세를 낮추었다. 무인이라해도 허락없이 황제의 앞에서 무기를 들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머리는  잘라도 되겠지?”

 

 하츠와 같이 황제에 대한 예를 늦게나마 갖추려고 했던 아게로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얼굴로 손을 뻗는 이복동생 덕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몸을 굳혔다. 란의 손에 눈을 찔릴뻔   주요했지만 란의 관심사는 피가  아게로의 머리카락뿐이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아게로가 핏물이 들었다고 어깨보다 짧게 머리카락을 잘랐더니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때는 거의 생피를 뒤집어 쓰다시피 했었고 지금은 살짝  거니까 자른다고 해도 그렇게 싹둑 자르지는 않겠다만.

 

 “네가 머리를 기르면 되잖아. 똑같은 색이니까.”

 

 “귀찮아.”

 

 “…됐다. ...금방 씻을 거니까 괜찮겠지. 정무는 어쩌고 여기로  거야?”

 

 “파했어. 나머지는 접대 얘긴데 그런  귀찮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지 .”

 

 “접대?”

 

 “ 친구 말이다. FUG 황태자.”

 

 “비올레가 사신으로 온다고? 즉위 축하인가..”

 

 “.....몰라. 귀찮아.”

 

 란이  황제로 등극했으니 주변국의 축하가 이어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제국이라 칭해질만큼 세력이 강대한 13국은 그들간의 마찰은 피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기에 란의 치세 이후 각자에 걸맞는 방식으로  황제의 등극을 축하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FUG 황태자를 사신으로 보내 직접 인사를 전하기로  것이야 그간의 친분이나 국격으로 보아 있음직한 일이었지만, 무려 황태자의 내방 소식에 란은 오히려 심기가 불편했다. FUG 황제가 어찌 생각하는 지를 헤아릴 식견은 없지만 황태자가 걸음하는 이유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란의 즉위를 축하하는 전령으로서 파견된 것임에는 틀림 없지만 황태자 본인의 목적은 분명 오랜 친구인 아게로와의 재회일 터였다. 황녀가 없어 창경왕과의 혼사를 도모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보니 황태자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겠지. 아게로에게도 그의 방문은 분명 즐거운 일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중요한 행사이니 당장은 준비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 속이 복잡해진 모양이었다. 란에게는 차라리  편이 나았지만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부터 생긴 불안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런가.. 당장 가서 여정을 확인해 봐야겠네. 국경의 비어(飛魚) 수도로 불러야겠고.”

 

 “공무가 중요하기는 해도 당장은 조금 쉬지 그래. 네가 자는   봤다고 신료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 일이네. 네가 그런 말도  전해주고. 대충 중요한 것만 안배하고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셔, 폐하. !  다시 형조에 넘기기도 전에 대전에서 사람 끌어내고 그러기만 해봐. 무슨 수를 써서든 벽성공주를 다시 불러올 테니까.”

 

 친왕전에서만큼은 아명도 부르고 허물없이 대해달라고 명한건  자신이었지만 이렇게 잔소리만 들으려고  말은 아니었는데 보람없이 되었다. 해도 명색이 황제인데  명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친왕이 있다는  밖으로 알릴 이유는 없으니 란은 아게로를 붙잡아 강하게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목의 맨살에 대고 약한 전격을 흘려 넣었다.

 

 !

 

 금속성의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순간의 방심으로 의식을 잃은 아게로를 단단히 안은 채로 란은 눈동자만 흘려 검과 검이 맞부딪힌 자리를 바라보았다. 예상하던 바라는 듯한  눈동자에는 그야말로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츠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도, 충직한 자신의 호위에 대한 치하도.

 

 “A.A. 훌륭한 개를 골랐군.”

 

 “무슨 짓을  거냐.”

 

 “말버릇까지 똑같은  별로지만. 물러나라. 잠시 눈을 붙일  있게  것뿐이니까. 너도 봐서 알겠지만  녀석은 황족의 말을 곧이 듣는 성격이 아니라서.”

 

 따지고 보면 그건 선황, 에드안의 업보인데 어째서 형제들도 이리 애를 먹어야 하냔 말이다. 백성들이 하늘의 힘이라 찬양하는 벼락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무투파에 가까운 쿤의 다른 황족들과는 다르게 지략과 처세술에 관심을 두어  아게로가 란에 비해서 선이 고운 외모를 갖게  것이야 놀랍지 않은 일이었지만, 조정을 떠난 관료들을 대신해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예를 갖춰 차려입은 화려한 의복이 무겁지 않을까 싶게 마른  안아든 몸의 무게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이대로 두면 비올레의 내방 전에 아게로가 과로로 쓰러지는  먼저였을 거다. 하츠와 같이 아게로를 오래 모셔온 자들은  이유가 란의 무신경한 지배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할테니 무심결에 란에 대한 적의가 드러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침전으로 안내해라. 내궁에 들이면  무슨 소문이     없으니까.”

 

 이미 어전에서 칼을 들었던 하츠가 명령을 곧이 들어줄 리가 없다 여겨, 귀찮음을 무릅쓰고 란이  말을 붙인 보람이 있었는지 검을 거둔 하츠는 다시 무기를 내려놓고 친왕전의 침실로 향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란은 내궁의 어디라 짚어 말하지 않았지만, 아게로는 뒤늦게 봉호를 받고,  직후의 상당한 시간을 선황에 의해 내궁에 갇혀 지냈다.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지만 좋은 기억이었다면 문후까지 거부하며 내궁으로 들어가길 저어할 이유는 없을 터다. 때문에 란도 친왕전을 동궁과 함께 외궁에 두도록 했으니   했다. 따라서  시절부터 아게로의 곁을 지켜온 하츠라면 진짜로 란이 아게로를 내궁으로 데려가려 했었다면 목숨을  놓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저지하려 했을 터다. 란이 그를 쉽게 죽여줄 이유도 없긴 하다만.

 

 “내일까지는 수면향을 써서라도 친왕전에 잡아 두도록 해라. 비올레야  녀석만 만나게  주면 충분할테지.”

 

 

 

 

 

 

 

-

 

 

 

 

 

 

 

 “해서 이렇게  거다. 그러니 얌전히 있어라. 네가 공문에 손만 댔다고 해도 이곳 나인  몇은 죽어 나갈 판이니.”

 

 “너나 란이나 아주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 머리야. 그럼 하루가 그냥 지나 간거네? 청여(靑汝)라도 잠시 불러야 하나...  변태 자식을  뭘로 꼬드기지.”

 

 능력은 있어도 권력욕 없이 풍류에만 매달리는 성격 때문에 아게로와  맞지 않던 하츨링까지 궁으로 불러들일 생각을 해야할 정도로 당장의 인력난은 심각했다. 달리 말하면 란이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면 아게로가 위험했던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란의 비뚤어진 정의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느낀 이상 아게로는 그걸 바로 잡을 때까지 자신을 갈아 넣는 노력도 마다 않을 사람이었으니.

 

 “게다가  어쩌자고 란한테 칼을 들이대?”

 

 “  있을  알았다.”

 

 “황제의 호위가 몇인데! 그랬으면    났지!!”

 

 반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참수에 멸족이다. 아게로가 지켜본 바로 하츠는 가족을 끔찍히 아끼는 자인데  이렇게 위험 천만한 일을 벌이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멍청해서라고 하면 설명은 되지만...?

 

 “좋아. 나도  테니까 너도   머리  식히는  좋겠다. 사가에 가서 동생들 얼굴이라도 보고 오도록 .”

 

 “갑자기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가족들 생각도  하라는 거다 멍청아. 어차피 나도 오늘은 외출 금지니까   있겠어.”

 

 “대담한  형제들은 그렇게 생각  할건데. 여태까지의 암살 시도는 전부 황족들의 사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황궁에 자유로이 드나들  있어.”

 

 “..... 시도 하는 쪽이 멍청한  아닌가? 너한테 걸릴 정도면 그래도 수완이 좋은 녀석들인 셈이지.”

 

 진짜로 오늘은 친왕전 밖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인건지 하츠에게도 하루간 특별 휴가를 허락한 아게로는 나인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 일렀다. 옷도 평소의 복장 대신 중단이 없는 간소한 실내복이나 간편한 철릭으로 준비하라는  보니 대신 움직여  다른 친왕들에게 연통을 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모양이었다.

 

 “무슨 뜻이지?”

 

 “모르는  하기는. 되먹지 못한  형제가 몇인데 겨우  정도만 자객을 보내겠어? 멍청하게도 대부분이 시도도 하기 전에 걸리는  아냐. 란한테.”

 

 “.......”

 

 “걱정말고 다녀와. 여긴 내궁도 아니고 무슨  있으면 바로 연락할테니까.”

 

 아게로는 왠만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연락할 인간이 아니다만 누구 고집이 센지를 겨루면   쉬지 못할테니까 하츠가 물러나기로 했다. 물론 그건 아게로의 말에 전부 수긍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침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때였으니까 선택을  것이지.

 

 “알았다.”

 

 시원한 대답을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게로는 미간이 좁아졌다. 요사이 하츠의 말을 알아 듣기가 어려워졌다. 아게로의 언성이 높아질 때까지 혹은 그가 분에  이겨 하츠를 친왕전 밖으로 내쫓을 때까지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질  알았건만 이리 빠르게 수긍하다니. 늦게 일어나 부상의 위치를 확인치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날이다.

 

 “어제처럼 방심하다  형제들에게 뒤통수 맞는 일만 없도록 해라.”

 

 “?”

 

 “내일 보자. 아침에 늦잠 자지 말고 기다려라.”

 

 “내가   기다려, ! 할복무사!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야?”

 

 아게로도 에드안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본인이 무예와 담을 쌓았다해도 기본적인 운동신경이나 순발력이 뒤쳐지진 않겠지만, 일어난  얼마 되지 않아 두꺼운 침구를 헤치고 하츠에게 닿는 것은 무리다. 그의 호위이자 숙위로 오랜 시간 함께할  있을만큼 실력이 출중한 무장인 하츠를 상대로는 더더욱. 유유히 친왕전을 빠져나온 하츠는 란의 집권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가족들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자유로이 행동할  있는  시간은 귀하다. 기회는 허투루 사용하지 말라고 아게로에게 배웠으니 란처럼 오늘은 하츠가 수년간의 가르침을 따라볼까나.

 

 

 

 

 

 

 

-

 

 

 

 

 

 

 

 “? 쿤을 빼내고 싶다고?”

 

 “ 비올레가 축하사절로 방문한다고 들었다. 기회는  때뿐이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이에 쿤을 설득할  있겠어? 무사히 거길 빠져 나간다고 해도 추적이 계속될지도 모르고 , 아니아니 비올레가 의심을 받게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런  밤이 알아서 하겠지.”

 

 “...”

 

 아게로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자중하라는 뜻으로 하츠에게 휴가를 주었겠지마는 가족들과 감격의 재회를 나눈 하츠는 맏형과 놀고싶어하는 어린 동생들을 뒤로하고 중립국, 월하익송의 요인이   친구와 연락을 취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동생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지만 이미 황제가 하츠의 심중에 대해 눈치챈 마당에는 시간이 없었다. 하츠나 하츠의 가족들이 인질로 잡히면 아게로는 더더욱 란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용해 먹을 것은  이용할 거라고 선황의 제위시절부터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녀석이건만 자기 사람에 대한 신의는 골수를  바칠 정도로 굳건하고, 그런 주제에 정을 너무 쉽게 주는  아게로의 단점이다. 아버지에게는  곳을 떠날 준비를  달라 분명히 전했고, 이수가 조만간 하츠의 가족들을 월하익송으로 데려가 준다고 하니 걱정은 덜었지만  다음은 여전히 문제다.

 

 “ 녀석은 쿤을 궁에 계속 가둬  생각이다. 새장이  넓어졌다고 해서 선황보다 낫다고  수는 없는  아니냐.”

 

 “그건 그런데... 위험부담이 너무 . 일단은 너랑  가족이 문제고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쿤도 입장이 난처해질텐데 굳이 지금 그래야겠어? 생각이 있으면 쿤이 먼저 움직일 거니까   기다려보는  어때?”

 

 “ 가족이야 너를 믿으니까 맡긴 거다. 망가지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을 녀석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어. 내가 결정한 일이다.  걱정은 하지 .”

 

 “걱정이 하지 말랜다고  되는   아냐.... 최대한 빨리 움직이겠지만  전까지만이라도    사려. 일단은 밤이랑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같으니까.... 으으, 어쩌다가 내가 이런 일에 휘말리게  거지?”

 

 “...미안하다.”

 

 “? 네가 갑자기 ?”

 

 “.......그럴 일이 있다고만  두지.”

 

 란이 아직 하츠에게까지 감시를 붙여둘 정도로 아게로의  친구들을 경계하고 있지는 않는 눈치지만 모름지기 거사라는  벌어진 이상 속도가 생명이다. 바로 움직이겠다는 이수와 연락을 끝낸 하츠는 드디어 동생들이 기다리는 대청으로 향했다. 궁에서 입던 푸른 군복 대신 붉은 소매를 가진 검은 옷으로 갈아 입고  친구와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어째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에드안이 아게로를 찾아 내기 전의 과거라면  동생들에게 시달리는 하츠를 놀릴 친구들이  능선 너머로 고개를 내밀겠지. 부질없는 감상을 떨어내듯 하츠는 닫혀있던 방문을 열어젖혔다. 오늘은 그의 생에 다시 없을 멋진 휴일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한 일정은 촉박하기만 하므로 하츠는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사신의 접대에는 필요한 것이 많다. 원칙적으로 축하를 받는 자리이니 답례가 과할 필요는 없지만 귀한 손이 오시는 만큼 경호를 비롯하여 그의 짧은 타국 생활에 부족함이 느껴져서는 아니되었다. 비어창술의 창시자이기에 비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청륜왕(淸倫王) 아센시오와 뛰어난 얼음술사인 선빈왕(仙滨王) 엘리엇에게 연통을 넣어 두었으니 제일 중요한 국빈의 신변 안전은 그럭저럭 해결이  것이었으나 다른 것은  자리에서 계산이 되지 않았다. 하츠가 답지않게 당부를   터라 친왕전 밖으로 나가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을 꾹꾹 눌러담은 채로 아게로는 탕에 몸을 담그고, 여유를 만끽하는 척을 했다. 어쨌든 친왕전은 황제가 윤허한 무법지대니 하츠든 란이든  곳에 다시 발을 들이는 순간 철저한 응징을 해주리라 다짐하면서 말이다.

 

 “폐하께서 하사한 의복이라...”

 

 “송구하옵니다, 전하.”

 

 “쉬라 하셨다더니 찾아 계시는가. , 좋다. 소매끈이나 함께 가져오거라.”

 

 만나면  작은 머리통을 쥐어박는  불편함이 없도록 말이다. 하츠의 언동이  신경쓰이지만  앞에 있는  란이라면 란부터 뜯어 고치는  순서였다. 란이 이번에는 당장에 얼굴부터 들이밀지 않고 궁인을 먼저 보낸 것만해도 장족의 발전이지만 칭찬은 나중이다. 윗선의 일은 하루가 밀리면 절차상 시급한 안건이었어도 다시 말단으로 전달되는 데까지 한달은 금방 소요된다. 사신 접대와 같은 국가 과제를 앞에두고 이런 사고를 치다니. 정말로 란의 머리를 한대 때릴 생각을 하고 있는 주인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왕전의 나인들은 몸이 바빴다. 몇번인가 잘라서 당장은 어깨를 살짝 넘어서는 길이지만 아직 젖어있는 청은발도 여러 장의 베 올을 세듯 닦아 말려주어야 했고 속옷부터 자수가 가득한 대자의까지 십수벌이나 되는 비단 옷의 순서도 틀려서는 안되었다. 은사와 감청색 수술로 맺음을 하는 머리장식도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어서  세신을 마치고 나온 주인의 몸에 대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황제가 방문을 예고한 마당에는 푸념조차도 시간낭비였다. 대신 언제 봐도 새삼 감탄이 나오는 창경왕의 수려한 용모가 그녀들을 마음을 달래주었다. 꾸며주는 손끝마다 꽃망울이 터지는듯한 청초하고도 요요한 미색에 보람이 샘솟듯 했으니 말이다. 완성품을 감상할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으나 그네들은 황제의 권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다과를 들일  슬쩍 들어난 화의 끝이나 다시   있을까 하는 정도겠지.

 

 “쉬라더니 무슨 일로 찾아왔어?”

 

 “나도 같이 쉬려고.”

 

 역시 소매끈을 받아두길 잘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아게로는 곧장 거침없이 란의 머리통을 갈겼다. 허나 분하게도 란은 그리 아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복슬복슬한 머리카락 속에 무언갈 감춰둔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표정하게 돌아갔던 머리를 바로하고  대신 달달한 수정과를 들이라 명하는   내봤자 아게로의 손해라고 이야기하는  했다.

 

 “상도 없고 축일도 아니고 심지어 비올레가 오려면 이레가 넘게 남았는데 황제가  쉬어!”

 

 “ 마음이다. 황제는 나잖아.”

 

 “이게 진짜 선황과 똑같은 소릴...”

 

 “A.A.”

 

 “.”

 

 “선황과 모후께서 너와 귀비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이제 여기 없어.”

 

 “......”

 

 “그런데도 궁이 싫은 거냐.”

 

 선황은 황자들을 고까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훗날 제위를 탐할 자들이라 여겼기 때문에 황후와 총비 몇몇이 간신히 자신의 아들을 지켰을 , 대부분은 다른 이도 아니고 아버지인 황제 본인에 의해서 화풀이 대상처럼 쓰여 죽어나갔다. 때문에 아게로의 어머니는 그녀가 쌍아를 가졌다는 것을 이용해 공주만 고해 올리고 황자는 숨겼다. 다른 친왕부의 아이라 속이고  밖에서 자라도록  것이다. 허나 에드안은 그가 가장 아끼는 후궁이었던 그녀의 아들만큼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황후는 그녀를 실각시키기 위해 아게로의 존재를 밀고했으나 선황은 그녀와 그녀의 일가를 몰살시키기는 커녕 사람을 풀어 아이만 잡아들였다. 물론 선황이 귀비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귀비가 끝내는 병을 얻어, 눈을 감을 때까지 아게로를 내어주지 않았고, 공주도 출가시킨 이후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끔 감시를 붙였다. 이를테면 그녀가 목숨보다 아꼈던 자식들을 전부 빼앗은 것이다. 어머니를 닮았는지 아게로의 누이, 은람(銀灆)공주도 요절하자 홀로 내궁에 갇혀있는 아게로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했다. 절세미인이었던 어미를 대신해 에드안이 노리개 삼고 있다는  주요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내궁에서 그를 만났던 란이 보기에는 헛소문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 났었다면 진즉에 에드안이 죽거나 아게로가 죽거나 했을 터였다.  시기부터 아게로의 총기는 눈에 띄었고,  뛰어난 처세술로 란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싫지. 내가 어떻게 여길 좋아할  있겠어.”

 

 누이도 어머니도 얼굴을  적은 손에 꼽는다. 12살이  때까지는 부모도 제대로 모른   밖에서 살았고, 난데없이 아버지라는 작자에게 붙들려  뒤로는   수년을 에드안이 허락한 공간에서만 지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가족이라 애틋함이 가슴에 남아서 에드안이 죽고 없는 지금까지도 그를 용서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평생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버지로서 아게로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준 것도 아니니까 실로 그렇겠지. 란이 붙잡는 바람에 궁에 머물게 되었지만 아게로는 궁에 있는 시간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정무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 였던  같다. 여하튼 관청은 전부  밖에 있었기에 공무를 핑계로 바깥출입이 가능했다. 과거,  모르고 어울렸던 친구들도 지금은 모두  국의 요인이 되어버려 예전처럼 웃고 떠들며 세계를 유람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을 꿈꾸게 되는 것도  그런 반작용일 터였다.

 

 “단지  때문에 남아 있다는 소리냐?”

 

 “틀린 얘기는 아니네.  그래서 언제   들어줄래.”

 

 “. 네가 모르는 소릴 하는 거지.  귀찮다고  죽이진 않는다.”

 

 “당연한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거야?”

 

 “당연하지 않다. 내가 나고 자란 궁은 그런 곳이었으니.”

 

 “........”

 

 “나만도 아니다. 쿤의 괴물들은  기준 삼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기준 삼을 것들이 널려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우릴 납득시키지 못했지.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마 그것도 너라서 느낄  있는 것이겠지.”

 

 “그거 골치 아프네.”

 

 “A.A. 우릴 설득하는  이제 그만 둬라. 하지만 우리에겐 선황으로부터 물려받은 무한한 시간이 있으니 쉬어갈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건 허락하겠다. , 네게만이다.”

 

 그래. 아게로는 에드안을 용서할래야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대체 어떻게 수많은 여인들로 하여금 권력에 미치게 만들었고, 자신의 뛰어난 용모와 재능을 물려받은 아이들을 하나같이 괴물로 키워냈을까. 설마  모든 것이 그의 사후에도 아게로를 쿤의 궁에 묶어두기 위한 비책이었던  아니겠지. 물론 란은 에드안과는 다르다. 에드안은 그가 허락한  이외에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심지어는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어기면 혹독한 벌로 다스렸지만 그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주제에 아게로가 마치 자신의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꾸며놓는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권좌를 넘보는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옥좌가 아닌 아게로가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라고. 그를 차지하는 자가 승자라고 말이다. 란의 치세도 결국은 그렇게 이루어  것이었기에 쿤의 괴물들은 아직도 그리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비올레를 따라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

 

 “알았어. 대신 숙제를 하나 줄게.”

 

 “귀찮게  뭐냐.”

 

 “내가 이대로 사라지면  어떻게 할래?”

 

 그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었던 터라 찻물은 거의 식었지만 귀찮은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황제를 배려한 찻상이라 나인들이 이미 우려낸 차를 다관에 담아 두어 풍미를 해할 염려는 없었다. 새하얗고 투명한 찻잔 바닥을 맴도는 호록빛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로 아게로는 란의 뇌리를 온통 뒤흔드는 소릴 여상히 뱉어놓았다.

 

 “네가 !”

 

 “그러니까 상상을  보라잖아.”

 

 붙잡아 두기만 하면   알았던 인생의 목표가 갑자기, 어느 순간에, 봄눈처럼 증발해버리면, () 황제  란은 어찌 하겠느냐고. 선황으로부터 소싯적의 그와 가장 닮았다 인정을 받은 얼굴인데 사르르 웃어줄 때의 홍안은 계집보다도 고와서 분노가 끓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던 란은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생각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그리 두지 않을 테니까.”

 

 “그래.”

 

 “네가 하라니까 노력은  보겠지만.”

 

 “.”

 

 아게로는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갈 , 란을 나무라지도 다시   타이르지도 않았다. 차가 충분히 식었기에 고양이 혀인 아게로도 쉬이 마실  있었는지 금방 비운 잔을 한번  채웠을 뿐이다.

 

 “.....아직 모르겠으면 생각날  알려줘. 나는 내일을 위해서 일찍  생각인데, 너는 어떻게 할래?”

 

 “그래. 쉬어라.”

 

 마음 같아서는 자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싶지만 아게로는 예민해서, 그런 상황에서는 잠이  온다고 숙위인 하츠마저도 침전에 들이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비올레의 방문으로 마음이 복잡해서 끝내 아게로를 보러 오긴 했지만 원래 목적은 그가    있게  주는 것이었으니 란이 시간을 오래  수는 없었다. 에드안은 그에게 튼튼한 신체와 영생에 가까운 수명을 물려주었을지 몰라도 그의 어머니인 귀비는 미인박명의 예시와도 같은 인물이었으니 아게로의 말처럼 란과 다른 친왕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를 붙잡아   없는 때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가능성마저 줄여주면 되는 . 황제가 친왕전을 나서자 아게로는 찻상을 물리고 바로 침전에 들었다. 환복도 목향도 저가 알아서 하겠다면서 말이다.

 

 “미리 우린 차에 시기도 적절하니 예상은 했지만벼르고 있던 놈이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네?”

 

 음독이면 그래도 독이 어느 정도 희석이 되는데다가, 상대도 황제의 앞에서 바로 아게로가 쓰러지면 곤란할테니 복용량을 조정했을 터다. 더해서 너무 금방 발견 되면 오히려 해독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천천히 퍼지게끔 손을  두었을 텐데 벌써 각혈이라니.  잔을 마신  조금 패기로웠는지도?

 

 “, 이걸  먹어야 겠네. 내가   생각을 못했지.”

 

 각혈이 있다고 해도 바로 죽음에 이르는  아니라지만 아게로의 표정은 죽음을 목전에  사람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해야할까? 재미있는 놀이가 생각난 어린 아이처럼 개구진 표정으로 아게로는 자신의 포켓으로 손을 뻗었다. 하츠가 늦잠을 자지 말라고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가 언제 하츠의 말을 들어줬다고.

 

 

 

 

 

 

 

-

 

 

 

 

 

 

 

 “정신이 들어?  진짜 어쩌자고 알면서도 독을 먹냐? 아후,  떨어지는  알았잖아! 내가 너랑 자하드의 공주들만 아니면 천수를 누릴텐데.”

 

 “그럼 전부  탓인 것도 아니잖아.”

 

 “지금 농담이 나와? 내가 쟤랑  말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

 

 아무렴. 고생  하라고   부른 거니까. 여하튼 해독제를 구해서 득달같이 달려온 하츨링 덕분에 목숨은 건진  같다. 친왕전의 나인들이 하나도 죽지 않게  달라고 했더니 란과 하츠를 동시에 말리느라 하츨링이  수고를 했겠지만 이걸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란도 진지하게 아게로가   과제에 대해서 생각을   테고, 형제들  유일하게 ‘기준 제시해 줄만한 인물인 청여도 수도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남은  하츠를 달래주는  정도인가?

 

 “...해독이 그렇게 단번에 되는  아니니까 무리하지 .”

 

 “그래야겠네. 진짜 당해본  처음이라 몰랐어.”

 

 “아오, 그런 짓을  하냐고 그러니까. 누가 그런 거야? 짐작 가는 데가 있으니까 심문도 하지 말라고   아냐?”

 

 “됐어. 거기 아무것도  들어 있었으면 내가 만들어 먹을 판이었으니.”

 

 “무슨 뜻이냐, A.A.”

 

 “죽을 생각은 아니었고. 하츠.   .”

 

 아직  기침에도 피가 섞여서인지 입맛이 괴이한터라 대화를 이어가기에 앞서, 아게로에게는  안을 씻어낼만한 무언가 절실했다. 신경독은 아니라 목숨에  지장은 없겠으나 폐혈이 생길 정도로 조직이 망가졌으니 당분간은 움직이는 것을 조심하고 먹고 마시는 것도 가려 하라고 했다. 특히 완전히 눕지 않고 상체를 항상 어디에 기대있게끔 해야 기침도 덜하고 내상이 빨리 아물  있다고 했다. 높은 분들의 틈바구니라 사시나무 떨듯 떨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는 의원에게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며 아게로는 당장에라도 누굴 죽일  같은 눈빛의 란과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굳은 표정의 하츠를 곁눈질로 살폈다.

 

 “이봐, 청여왕.  괜찮으니까 부탁한 거나   해줘.”

 

 “, 근데  설마 나한테  시키려고 독을 먹은  아니지?”

 

 “그걸  지금 물어봐? 내가 그렇다고 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아악! 알겠어, 알겠어. 간다고!  하러 가면   아냐,  악마야.”

 

 “사실이냐, A.A.”

 

 “농담이야. 괜찮은거 확인했으니 너도  봐도 되는데.”

 

 “싫어. 네가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

 

 “.......”

 

 기회가 좋아서 감행한 거지만 연달아 사흘이나 갖은 이유로 침대 신세를 지고 보니  것도 오래  일은 못된다. 애석하게도 독차까지 마시게  장본인은 여전히 변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아쉽기는 하지만  술에 배부르는 일이 어디 흔하던가?

 

 “네가 얼굴도  내밀면 청륜왕이 사무치게 서러워할텐데 그래도 되려나?”

 

 “..”

 

 “.  지킬  있는  네가 아니라 나야.”

 

 어린 황제는  단호한 선언에 입술만  깨물었다. 분하지만 통감하는 바가 있다는 의미였다. 헌데  이야기가 어째 이복동생에게만 하는  같지 않아서, 곁에  하츠도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궁에 드나드는  ,  만에 달하는 인물들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는 그가 당장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아끼니 곁에 두었고, 그렇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들이 다치지 않게, 인내의 폭을 재고  재다 오늘에서야 한번 다듬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일 테다.

 

 “그리고 황제의 일을   있는  오로지 너지.  기준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제껏 지켜봐 왔으니   있어. 이미 몸에 베었을 테니까.”

 

 “A.A.”

 

 “잠시 쉬어가도 좋다고 했었지. 그럼 나는 이제부터  쫓지 않고  속도로 한번 따라가 볼게. 운이 좋으면 창의 궁을 달리   있게 되겠지.”

 

 

 

 

 

 

 

-

 

 

 

 

 

 

 

 아게로는 이번 국빈 접대를 끝으로 잠시 정양을 겸한 휴식을 갖기로 했다.  곳은 대체로 날씨가 춥고 건조하기 때문에 폐부에 내상을 입은 그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만한 남국으로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태내관의 진언이기도 했다. 나인들이 여정을 위한 짐을 준비하는 것을 아게로는 잠시 하츠의 어께에 기대 지켜보았다. 보름이나 일찍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몸도 불편하고 황태자가 머물 시에는 시간을 따로   있을지 장담이 어려우니 조금씩 진전시키는 것이 낫겠다는 선빈왕의 말을 듣길 잘한  같았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궁을 떠날 계획을 세운 거냐.”

 

 “그냥. 기회가 좋아서.”

 

 “독차가 마시고 싶었는데  앞에 나타나 줬다는 소리냐?”

 

 “뭐래. 멍청한 누가 자꾸 불나방처럼 몸을 사를 기미가 보이니까 그런 거지.”

 

 “……”

 

 “선황은  묶어두려  궁에 들이고  호위로 붙여 주었지만  보지 못하게 했다.  탐탁치 않게 여겼던 황후의 나인들이 선황의 눈이 되었지.”

 

 기댈 곳도 하츠 하나뿐이었는데  수는 없다니. 자연히 향하던 시선을 멈춰 세우느라 얼마나 애를 먹어야 했는지 하츠는 모를 거다. 에드안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바닥만 보며 지냈던  같다. 황후의 궁녀들이 거짓을 고해서 곤욕을 치르는 날도 있긴 했지만 아버지에게 하츠를 보여달라 빌지는 않았다.  말이 하츠를 죽음으로 몰고  거라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보낸  15년이던가…? 아무튼  고생을 하면서 지켜냈는데 겨우 이런 일로 죽는다고? 허락  하는  당연하잖아.”

 

 “…미안하다. 그건  생각 못했군.”

 

 “생각을 하긴 하는구나 너도.”

 

 “…….”

 

 “살아남는  내가 알아서  테니까, 너도   아껴줘.”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미    목숨보다, 가족들보다 아끼고 있어.”

 

 그러지 않고서야 황제한테 날붙이를 들이 밀겠냐? 생각을 해봐라. 그렇게 쏘아붙이니 아게로도  말이 없긴 하다. 물론 하츠의 행동은 이성보다는 본능이라는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항상 솔직하기도 했으니까.

 

 “따뜻한 곳에 데려가  테니까 어서 낫기나 해라. 그럼 내가, 옛날엔 닿을  없었던  탑의 꼭대기 까지라도 데려가  테니까.”

 

 

 

 

 

 

 

 

 

 

 우선 연휴동안 뭔가 하나 하긴 한 저 자신을 칭찬 합니다만...

왜 이게 먼저인지,

묘사도 엄청 쳐냈는데 길이가 왜 이 모양인지,

하츠쿤이 맞긴 한 건지 등등 여러가지 의문이 남은 연성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이럴거면 Correction은 왜 두 편으로 나눈 거냐며...

일단 내일을 위해 자긴 자야해서 잡소리는 잠시 묻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완성이 되면 조각글은 지우는데, 소중한 피드백이 달려 있어서 ㅠㅠ

이런 경우는 예상을 못했는데 고민을 해봐겠네요.

모쪼록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좋은 하루 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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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12 오탈자 및 일부 수정

세상에 후기에도 오타를 내다니...

 

 

 

 

 

 

 

 

[신의 탑 - 아센시오 X 쿤] Happy Birthday

신의 탑/단편

 

 

 

 

 

 

 

 

 

 

 

 

 

 쿤 가문의 본가는 가문의 가주인 쿤 에드안의 고향에서 유래했다는 고풍스러운 양식의 건물이었다. 가문의 상징인 심청색으로 단장한 탑을 중심으로 푸른 기와를 인 그보다 낮은 지붕의 건물들이 미로처럼 탑을 에워싸 거대한 푸른 산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었다. 호승심 충만한 가주는 가문 내에서의 권력 암투를 장려했고, 수많은 자식과 처첩들에게 순번을 매겨 위부터 더 크고 좋은 건물에 머물 수 있게 했다. 누군가를 이기고 올라오지 않으면 가주의 눈에 드는 것이 불가능함은 물론 그가 정한 한계선까지 활약하지 못하면 에드안은 가차없이 그들을 가문 밖으로 내 몰았다. 탑 내에서 10가문의 명성만큼이나 악명도 자자한 만큼 버려진 이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에드안의 거처는 당연히 정 중앙이었다. 탑의 온갖 재화가 모여드는 위대한 10가문의 가주, 쿤 에드안의 본궁은 바로 곁에 위치한 아센시오의 거처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화려한 내궁의 그 무엇도 아센시오의 시선을 끌진 못했다. 그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보물이나 신기한 아이템 따위가 아니었다.

 

 “돌아오셨습니까, 아센시오님. 가주님께서는 지금 출타중이십니다만…”

 

 “알고 있다.  오늘은 다른 일로 왔으니까 상관없어.”

 

 에드안이 시킨 일로 늘 바쁜 그이기 때문에 가주를 찾아왔겠거니 하고 가문의 수문장 조차도 지레 짐작할 정도인 아센시오지만 그의 말대로 오늘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형질을 밖꾸는 에드안의 신수가 든 작은 패가 바로 그 증거였다. 탑 내부의 특별한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확인한 충직한 수문장은 아센시오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길을 열어 주었다. 세상의 모든 벽옥장식을 전부 쓴 것 같은 입구가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라도 되는 듯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왜인지 터져나오는 얉은 한숨을 참지 않으며 아센시오는 걸음을 내딛었다. 탑의 내로라는 권력자인만큼 에드안의 궁을 드나드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의 수발을 드는 시종을 제외하면, 에드안의 궁에서 밤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당일 그에게 선택받은 여인밖에 없었다. 때문에 누가 되었든 에드안의 궁에 다른 이유로 머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매우 특별했다. 에드안을 오랫동안 모셨던 시종들 조차도 버림받고 본가에서 쫓겨날 줄 알았던 아들을 그가 다시 데려왔을 때 상당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아무리 감금에 적당한 방이 없어도 그렇지, 하필 이 곳이라니. 에드안의 무신경함에는 아센시오도 학을 뗄 수 밖에 없었다. 여하튼 주인의 신수와 감응한 내궁의 가장 깊은 곳이 열리자 아센시오도 처음으로 에드안이 특별한 여인들과 밤을 보낼 때에만 사용했다는 아방궁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지금 그 곳에 머물고 있는 것은 여인이 아니라 에드안의 아들이자 아센시오의 동생이었지만 말이다.

 

 “오랜만이다. A.A.”

 

 “……”

 

 피를 나눈 형제이니만큼 아센시오를 돌아보는 눈동자는 그의 것과 같은 색이었지만 다른 신수형질의 힘인지 혹은 그를 향한 원망 때문인지, 동생의 눈에 깃든 빛은 그와는 사뭇 달랐다. 아직 랭커의 자리에도 오르지 못한 선별인원인 주제에 그에게는 내궁의 화려한 장식을 모두 평범한 것으로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 기세의 5할 넘게가 꾹꾹 눌러담은 분노겠지만 그런 점이 에드안을 자극한다는 걸 아센시오의 동생은 분명히 자각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낫기 어려운 눈 같은 곳이 상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가 마지막으로 아게로를 보았을 때보다 거즈로 감싼 부분이 늘어난 걸로 봐서 아버지에게 또 얹어맞거나 했을 테다. 독점욕이 강한 에드안이 감금을 목적으로 만든 공간에 창을 내 주었을 리는 없지만 신수를 봉인당했어도 이미 인증을 받았기에 간단한 검색 정도는 가능한 것인지 실내에 펼쳐져 있는 아게로의 등대들 덕분에 가뜩이나 별천지 같은 밀실의 내부는 더없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건 상처 투성이에 달랑 백의 한 장만 걸친 아게로였지만. 사지에 걸린 투명한 사슬이 장식품처럼 보일 정도로 부모의 빼어난 미모를 고루 물려받은 동생은 고작 품이 넓은 흰 옷에 진짜 장신구라고는 머리카락을 묶은 작고 푸른 꽃장식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눈이 부셨다.

 

 “왜 왔냐는 표정인걸?”

 

 “잘 아네.”

 

 “너무 타박하지 마라. 아버지께 여기 온다고 허락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넌 모를거야.”

 

 “당연하지. 끌려 오자마자 여기 쳐 넣던데.”

 

 “…A.A.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래. 정말 에드안이 이 곳에 동생을 가둘 거라고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성녀로 추앙받던 아게로의 어머니는 바로 이 곳에서 에드안에게 함락당했다. 그 아들인 아게로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는지 혹은 단순히 감금에 적당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인지는 에드안만이 알 일이지만 부모의 역사를 다 아는 아들을 두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는 데에는 아센시오도 이견이 없었다.

 

 “뭘 어쩔 수 없어. 놓쳤다고 하면 됐잖아.”

 

 “너니까 한두번의 실수도 용서가 되는 거지 아버지께서는 그리 자비로운 성격이 아니시다.”

 

 “용서 좋아하시네. 그 인간한테 용서 받을 바엔 죽는 게 나아. 애초에 내가 그 인간한테 뭘 잘못했는데. 누나나…. 어머니라면 몰라도.”

 

 “…….”

 

 동료들과 탑을 오르던 아게로를 직접 찾아간 것이 아센시오였을 뿐 사실 그를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에드안이 아게로의 어머니, 아그니스의 명줄을 쥐고 있던 연유였다. 말 그대로 에드안에게 붙잡히는 순간 자결을 택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아게로가 별 수 없이 버티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테고 말이다. 사실 에드안은 그에게 아버지로서 자비를 베푼 적은 없을지도 모른다. 비상식적인 애정은 오히려 학대에 가까운 지라 아센시오라한들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지금이 낫지 아버지에게 자비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동생의 힐난대로 그는 자신의 죽음을 면하고자 동생을 대신 바친 꼴이 되었다는 것도 바뀌지 않을 테고.

 

 “실언했다. 인정하지. 그래도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좀 더 기분 좋은 생각을 하는게 어때.”

 

 “기분 좋을 일이 어디 있다고.”

 

 “내가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그래서.. 뭐?”

 

 “네 생일 선물이라고.”

 

 잔뜩 토라진 동생의 마음이 이 정도로 풀리진 않겠지만 생일조차 챙겨주지 않으면 아센시오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그는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오늘 생일을 맞은 아게로의 면회를 왔다. 아무리 가문 내의 입지가 단단한 하이랭커라 한들 한 자릿수 랭킹을 기록 중인 위대한 10 가문의 가주, 쿤 에드안에게는 견줄 수 없는 실력인지라 아센시오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 점을 동생이 알아주면 고맙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를 내 주는 편이 아센시오가 보기에는 더 좋다. 죄책감과 상실감에 진짜 감정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12살의 꼬마 보다야 그 편이 훨씬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졌으니까.

 

 “선물을 챙겨줄 정성이면 여기서 꺼내줘야 하는 거 아냐?”

 

 “솔직히 나도 네가 밖에서 이것저것 터트려 줄 때가 훨씬 더 재미있었지만 말이야,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어서 말이지.”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면서 안 어울리게 야망 없는 소릴 하네.”

 

 이미 말했다시피 에드안의 의사에 반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게로의 특권이다. 철 없던 시절에 잠깐 그를 질투한 적도 있었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지 알게 된 이후로, 괜히 미안해진 아센시오는 아게로와 허물없이 지내려 노력했다.

 

 이만 하면 숨 돌릴 시간은 충분히 주지 않았니.

 

 ........

 

 데려오거라, 아센시오.

 

 하지만 그 노력조차도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지를 그는 얼마 전에서야 통감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 비겁한 마음가짐을 아버지를 향한 충정이라 일렀지만 진실이 어떤 것인지 본인은 너무도 잘 알았다. 앞으로를 생각해보면, 그건 고작 생일 선물 정도로 무마시킬 일이 아니다.

 

 “A.A.”

 

 “아직도 안 갔어?”

 

 “아버지께선 널 매우 아끼신다.”

 

 “그딴...”

 

 “넌 언젠가 그 분을 꺽을 창이니까.”

 

 수렁에 밀어 넣어야 무기는 더 날카로워진다. 에드안은 분명 그리 믿고 있었다. 근 1만년에 달하는 시간이 지나도록 자신의 피를 끓게 하는 자가 없는 무료한 삶을 살아온 에드안에게는 자극이 절실했다. 자결조차 불가능한 영생은 되려 그를 미치게 만드는 구속구였다. 그 지옥 속에서 겨우 발견한 희망을 그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언제나 살아있는 존재의 몫. 그를 넘어서야만 할 이유를 잔뜩 쥐어주면 아게로는 잘 벼려진 무기가 되어 자신을 찾아 올 것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그런 곳에서 위험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셨던 거다.”

 

 “......기가 막히는군.”

 

 그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에드안의 소망을 위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끝없이 담금질 당하는 길밖에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아센시오라 한들 달랐을까? 그러니 이건 모두 변명이다. 에드안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하지만 A.A. 살아 있기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

 

  “버텨라. 나는 비록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못난 형이지만 네 친구들이 다시 널 되찾을 수 있게 길은 열어 놓을테니.”

 

 “아센시오!”

 

 “생일 축하한다, A.A.  쑥쓰러우니까 선물은 내가 가고 나서 열어보도록 해.”

 

 아게로가 마치 거대한 창처럼 사용하던 등대의 불빛이 아센시오의 등 뒤로 사그라들었다. 에드안의 얼음으로 만든 사슬은 신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아게로가 끊을 수 없을테니 그는 방 안에서도 침상 근처라는 제약적인 공간에 묶인 바, 아센시오가 다가서지 않는 이상 그에게 닿을 수 없을 터. 다시 미지의 동굴같은 복도로 홀로 돌아온 아센시오는 심호흡을 한 뒤에 고개를 들었다. 걸음을 빨리 했다. 보폭도 발을 내딛는 속도도 달라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딱하게도 하이랭커가 되어서도 동생을 구하는 건 그의 동료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반쪽짜리 결론을 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센시오가 도와줘야 할 일이  분명 있었다.

 

  ‘아그니스님을 설득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키세아인가.’

 

  어리석은 것. 그녀의  친형제와도 같은 사촌들을 진정 사지로 내몰고 있었던것이 누구인지 알아채지도 못하고 오히려 에드안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는, 참으로 아둔하고 가여운 것. 마치 키세아가 눈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혀를 차며 아센시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눈 앞에서 빼앗겼겠다, 범인도 알고 있는 마당에 동생의 동료들이 이 곳에 당도하는 건 금방이다. 아게로가 먼저 가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곧이 들을 녀석들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애초에 그럴 인물들이었으면 가문에 빚지는 걸 싫어하는 동생이 열차를 멈춰달라는 터무니 없는 부탁을 했을 리도 없다. 누가 적이 될 지 알 수 없는 아수라장에서 자란 만큼 사람을 보는 눈은 정확한 녀석이니.

 

  “비선별인원에  네이티브 원이라... 무슨 친구를 사귀어도 그런 것들만 골라 오는지  원.”

 

 보통은 나가서 찾아오라고 해도 실패할 조합인데 말이다.  달리 말하면 아게로는 확실히 에드안의 기대대로 변화의 핵으로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도 모르게 다가 왔으면 좋을 운명을 눈치채이는 바람에 온갖 고생을 하는 중인데 시덥잖은 결말이라면 그 편이 오히려 서운하지. 해서 걸어 보기로 했다. 잠깐의 자유를 판돈으로 그의 인생 최대의 도박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동생의 동료들에게 열쇠를 건네주고 나면 그의 배신을 에드안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 이왕 숨어 지내는 동안에 아그니스와 키세아를 거두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그리고 에드안의 바람대로 아게로가 에드안을 넘어서게 된다면 자신의 도피생활은 길지 않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그것도 그대로 뭐.. 나쁘진 않다. 에드안에게 쓸모가 있는 건 아게로니까 그가 사라진 시점에서 에드안이 아센시오 같은 걸 기억해 낼 리가 없다. 그는 실수를 용서치 않기 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는 것 뿐이니 그를 떠나  도망친 나약한 자식들을 전부 기억하진 않는다. 아게로처럼 찾아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만 당사자가 고생스러울 따름이지.

 

 “그럼 이번엔 비어(飛魚)가 아니라 미끼 신세인건가? 모양빠지는구만.”

 

 해도 별 수 있겠는가? 빚을 졌으니 갚아야지. 둘은 형제지만 그런 관계다. 아프게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그가 다시 돌아봐 주겠지. 까짓것 어떤가? 자유로운 창술로 마음껏 누비던 창공을 동생에게 잠시 양보하는 것 정도다. 억압도 비웃음도 잠시. 어차피 그는 다시 창공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 무렵에 하늘의 주인이 바뀌어 있다면 첫 도박까지 성공한 행운의 사나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어서 와라, 새끼 상어들. 난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의 날렵한 창처럼 아센시오도 가벼이 몸을 날려 탑의 천장을 향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특별할 것 없는 움직임이지만 눈에 불을 켜고 아센시오를 찾고 있을 동생의 동료들이라면 놓치지 않을 터다.

 

 “자, 어서 서두르라고. 오늘이 지나버리면 녀석한테 할 말이… 없단 말이다!!”

 

 수십가닥의 푸른 번개가 그의 발 밑으로 내리꽂혔다. 흙먼지를 뚫고 빠르게 접근해 오는 검은 날개를 확인한 아센시오는 미소했다. 좋다. 이 정도 패기는 있어야 에드안을 몰아내고, 탑의 왕을 죽이고, 이 탑의 가장 높은 천장마저 깨 부술 수 있겠지.

 

 “그래… 이쯤은 되야 나도 녀석을 맡길 수 있고 말이야.”

 

 “……쿤씨를 어디로 데려간 겁니까.”

 

 “당연히 마왕의 성 아니겠어? 공주님을 구할 왕자님.”

 

 에드안이 진정 마왕이라면 자신은 마왕이 키우는 드래곤 정도일까나? 유쾌한 상상을 하며 아센시오는 또 한번 미소했다. 분명 눈 앞의 소년은 아직 작고 가늘었지만 황금빛 눈동자 밑바닥에 검게 일렁이는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그 검은 파도가 넘쳐 흐를 때엔 어쩌면 아센시오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그의 여정에 뒤따르는 수많은 소문들이 그런 결론에 닿게 해 주었다. 길게 생각할 것 없다. 그것만 확인하면 족하다. 에드안이 오기 전에 아게로를 보내려면 시간이 얼마 없었다.

 

 “와라. 고작 문지기 따위에 겁먹지 말라고, 왕자님.”

 

 

 

 

 

 

 

 

 

 

 

 

 

 

 

 

 

 

 

 

 

 

 

 


 생축설에 어둠의 오오라가 넘쳐나는 건 왤까.

그래도 에드안 이기게 해 주잖아? 괜찮겠지?

생일이 지나기 전에 뭔가 해 놓긴 해야 할 것 같아 올립니다.

조만간 갈릴 예정입니다만 밀린게 많습니다....?

아리에 혼 처럼 에드안도 자신에게 대들(?) 아들한테 아예 신경 끄고 살 것 같진 않아서,

쿤이 쿤 가문의 아들들 중에서도 험하게 큰 편인 건 에드안의 사주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입니다.

 

 

18.11.29 수정

시간이 없을 때는 열린 결말이죠!

오탈자를 한번 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사실 매번 그래요..)

좀 더 시리어스한 내용으로, 분량도 길게 가져갈 계획이었는데,

시간도 못 맞출 것 같고 이게 생축설이냐 싶기도 하고....

그래서 중간에 막 자른 기분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닙니다.

덕분에 커플링 이름도 이제야 알게 된 아센아게는 아센아게같지 않게 끝나버렸네요?

언젠가 뽕이 차오르면 다시 도전 해 보는 걸로 해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트위터에 연동되어서 글이 올라가는 연유로 유입도 많고 한데 제가 트위터를 잘 몰라요...

요즘 트위터 없으면 덕질 못한다고 누가 말해줘서 만들긴 했는데 확실히 읽을 게 많아서 행복하긴 합니다만 해시태그에 실트에 디엠에 모르는 말이 넘쳐납니다 ㅎㅎ

뭔가 공부를 좀 해서 내년에는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봐야 겠습니다.

저도 아센시오도 오늘이 끝나기 전에 미션 성공이네요.

생일 축하해, 쿤 아게로 아그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