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탑

'자하아게'에 해당되는 글 3건

  1. [신의 탑 - 자하드 x 쿤 x 밤] 공멸 2
  2. [신의 탑 - 자하드 x 쿤] 태양 4
  3. [신의 탑 - 자하드 X 쿤] 일몰 2

[신의 탑 - 자하드 x 쿤 x 밤] 공멸

신의 탑/단편

자하드는 소년의 금빛 눈동자에 시선이 꽂히는 순간 직감했다. 저 작은 소년의 몸 속에는 자신과 같은 탐식의 괴물이 들어차 있음을. 그리고 그 괴물이 어느 순간 불현듯 나타나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임을. 그의 예감은 곧 이 세상의 미래이기에 자하드는 가차없이 소년에게로 손을 뻗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촛불을 불어 끄듯 간단히 소년의 목을 꺾는 것이.

“밤!!”

분명 소년의 눈망울은 순수했다. 자하드에게 그의 내면에 웅크린 괴물을 들켰을 망정 적의는 담겨 있지 않은 투명한 눈동자였다. 자하드의 손이 마치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라는 기대라도 하고 있는 양 올곧게 그를 올려다 보면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들리고 나서야 눈을 돌렸다. 참으로 순진한 행동이었다. 그 순간에도 자하드의 손은 소년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자하드의 손이 움켜쥔 것은 온기가 도는 소년의 목이 아니라 차갑고 단단한 얼음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방해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소년보다 먼저 희생된 얼음은 파편으로 흩뿌려졌다. 마치 빛의 부스러기처럼 흩어지는 얼음 입자 사이로 소년을 찾는 자하드의 흉흉한 눈빛은 새파란 눈동자에 가려진 순간 잠시 흔들렸다. 익숙한 색채였다. 어울리지 않는 검은 로브의 후드 밑으로 고운 은발이 흩어지는 게 똑똑히 보였다. 흑백의 사이에 자리한 요사스런 심청빛은 이번에도 자하드의 손이 닿기 전에 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하드의 손이 허상만을 손에 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쿤의 아들이군.”

여전히 녹지 않고 바스라져 떨어지는 빛무리 속에 홀로 남은 자하드는 적색삼안의 안대를 벗으며 아주 오랜만에 맛본 허탈감을 흘려보냈다. 물론 당장 뜻대로 되지 않았을뿐 일은 곧 자하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 곳의 시간은 자하드의 의지였으니 말이다.

*

“쿤씨? 어떻게 아셨어요?”

“뭘.”

“제가 거기 있다는 거요.”

“당연히 물어물어 찾아갔지.”

“아....”

“아는 무슨 아야. 내가 항상 눈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하랬지? 이 일을 어떻게 할 거야?”

“제가 잘못 한 건가요?”

“말이라고 해? ‘왕’한테 들켜 버렸잖아. 또 이런 일 있기만 해봐. 그 땐 너도 나도 죽은 목숨인 거라고.”

“왜죠? 왕난씨의 아버지라고 하셨는데... 왕난씨는 친절하시잖아요.”

“친절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지. 걔도 이제 아버지한테 혼쭐이 날거다, 아마.”

분명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쿤은 밤에게 왕난을 만나지 말라고 누누히 경고했었다. 왕난에게도 알아듣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동료들이 치정극에서 주인공들의 연애를 방해하는 그들의 부모님 같다며 놀래댄 통에 생각만큼 효과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금빛 눈동자는 이세계에서 온 괴물의 상징이다. 그 눈을 하고도 멀쩡히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이는 ‘왕’으로 불리는 탑의 군주, 자하드와 그 아들들 밖에 없었다. 때문에 금빛 눈동자를 타고난 아이들은 발견 즉시 자하드가 풀어놓은 감시자에 의해 척살당했다. 딱히 소속된 국가도 없는 자하드의 탑은 그가 가진 막강한 힘으로 인하여 중립지대이자 무법지대였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감시자에 의해 도륙당하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오래된 전설을 믿기보다는 자하드가 그 찬란한 빛깔을 독차지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라고 수군댔지만 그의 병적인 집착을 보면 정말 아무 근거가 없는걸까 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도 생기게 마련이었다.

“저 때문에 왕난씨가 혼나야 하는 건가요?”

“그래. 걔는 혼나는 거고 나는 죽는 거지.”

“왜요!”

“말해줬잖아. ‘왕’은 금빛 눈동자를 가진 자는 다 죽이려고 한다고. 그걸 방해했으니 가만히 두겠어?”

“저는 차별 받는 건가요?”

“글쎄... 차별이 아니라 배척받게 아닐까.”

“너무해요.”

“억울해 하기 전에 도망칠 궁리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밤. 어서 가자. 감시자가 따라 붙기 전에 움직여야해.”

꽤 멀리까지 온 것 같은데도 쿤은 걸음을 재촉했다. 항상 그가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해서 밤도 그렇게 진중히 ‘왕’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는데 지내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쿤의 뒷모습을 보니 밤이 뭔가 잘못하기는 한 것 같았다. 왕난에게 잘 지내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나온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쩔 수 없이 밤은 쿤의 뒤를 따랐다. 생활력이 없는 밤에게 의지할 사람은 쿤밖에 없었다. 모두가 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던 이 땅에서 이야기를 나눠주고 먹고 입을 것을 가져다 준 게 쿤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밤을 피하지 않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의 작은 집에서 밤이 함께 지내도록 허락해 주었다.

“정말 그 사람이 쿤씨도 죽이려 할까요?”

“아마도. 탑의 왕은 엄청난 폭군이라 그의 앞을 막는 것들에게는 가차 없거든.”

“싫어요! 제가 쿤씨를 못 죽이게 할 거에요.”

“이제라도 내 걱정을 해 주니 고맙긴 하네.”

“정말이에요. 제가 쿤씨를 지킬 거라고요.”

“그래그래.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네가 잘도 그러겠다.”

“쿤씨!”

“농담 같은 게 아니야, 밤. 나도 도망치는 게 고작이라고. 처음은 내 존재를 몰랐으니 당한 거지만 다음은 없어. 그런데 나보다도 훨씬 약한 네가 날 지킨다고? 현실성이 없는 얘기야. 네가 정말 전설 속의 괴물이라서 왕이 들이닥친 순간에 각성이라도 하면 모를까.”

쿤은 자하드의 진의를 의심하는 자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였다. 직접 금빛 눈동자를 지닌 아이를 찾아서 그를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보기로 한 것이다. 어느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쿤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완전한 치외법권에 속하기에 살인을 밥먹듯 해도 죄를 물을 수 없으며, 이 세상의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도 이길 수 없다는 그 자하드에게 반기를 드는 건 다른 왕들에 대한 반역보다도 더 무의미한 꿈이었으니까. 하지만 운 좋게(혹은 운 나쁘게)도 이미 금빛 눈동자의 소년을 만나버린 쿤은 이제와서 손을 떼긴 늦어 있었다. 잠깐이지만 눈이 마주쳤으니 자하드는 이미 단서 하나를 손에 쥔 셈이다. 눈에 띄는 색채는 그의 출신지를 분명히 드러내기 때문에 자하드는 곧 그의 아버지를 찾을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쿤의 아버지에게는 수 없이 많은 자식들이 있었고, 그들의 아버지조차 그들를 전부 기억하지 못할 정도인지라 자하드의 수색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쿤들의 아버지인 쿤 에드안은 자하드 못지 않은 폭군이었기에 그의 성을 떠난 자식도 부지기수인지라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일 터다.

“제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나요.”

“........”

아직 갈 길이 먼데 쿤의 옷자락을 움켜쥔 밤은 더는 걸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금빛 눈동자가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화를 낼 수 있다는 걸 쿤조차도 오늘 처음 알았지만 그렇기에 노을빛으로 차오른 그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그는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목숨을 건 실험 중인 쿤에게 밤의 그런 반응은 꽤나 고까운 것이었지만 당장 해야할 일이 있기에 그는 말을 고르는데 꽤나 신경을 썼다.

“강해지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뭐든 한 순간에 해결되진 않아. 그래서 우리는 지금 시간을 버는 중이지.”

“뭐든 할게요.”

“그래.”

“강해지게 해 주세요.”

“응.”

*

쿤 에드안의 성은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 덕에 꽤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에드안은 탑의 왕이라는 자하드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되는 인물들 중 하나였지만 자하드의 방문이 썩 내키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늘 하던 대로 반라의 미녀를 양쪽에 끌어안은 채로,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자하드를 맞이하는 걸 보면 유흥의 단맛에 푹 빠지려는 찰나에 방해를 받은 것에 틀림없었다. 허나 눈치없게도 자하드는 마치 개선장군과 같이 푸른 우단 카펫을 밟아 나갔다. 세계의 손꼽히는 강자 사이에서 어느 쪽의 비위를 맞추는 편이 생존율이 높은지 머리 굴리기에 바쁜 다른 사람들만이 분주했다. 지금 이 순간의 주인공이라 할만한 둘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였지만 따로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먼저 져 주기로 한 쪽은 놀랍게도 에드안이었다.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옷도 갖춰입지 못한 여인들을 먼저 내 보낸 에드안은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먼 옛날의 친우를 향했다. 그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들은 몇 남지도 않았건만 반갑기 보다는 하도 봐서 질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무슨 일이냐.”

“쿤의 아이를 찾고 있다.”

“하? 그래서?”

“네게 향방을 묻는 것이다.”

“내 자식이 얼마나 많은데 네 눈에 띤 녀석이라고 내가 기억해 줄 성 싶냐?”

“충분히 눈에 띄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는데. 얼음의 힘을 쓸 수 있는 자는 네 자식들 중에서도 손에 꼽지 않던가?”

“뭐냐 갑자기. 더위라도 타는 체질이 된 거냐? .....물론 흔한 재능은 아니지만 그래도 십 수명은 될텐데, 난 그런 귀찮은 짓을 하고 있을 시간 없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작은 아이다. 그런 주제에 순간이지만 사상(寫像)을 뒤집어 내 시계(視界)의 시간을 ‘얼렸다’. 분명 네 눈에도 찰만한 재능 아닌가?”

“........”

“그 아이를 만나고 싶다. 아직 네 것이니 해치진 않는다고 약속하지.”

“후우.”

자하드가 보고 있든 아니든 긴 의자에 다시 몸을 기댄 에드안은 담배 연기를 뱉어내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하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에드안에게도 눈도장을 받을만한 아이지만 기억나는 얼굴이 없다는게 이상하게 분했다. 세상을 주름잡는 귀족가의 자제라 해도 성년이 되지 못한 아이는 부모의 소유이니 자하드의 말처럼 그가 성년이 되지 못했다면 아직 에드안의 수중에 있어야할 재산인데, 언제 주머니를 빠져나갔는지도 모르다니.

“찾아서 어쩌려는 거냐. 그저 재주를 치하하려는 건 아닐텐데.”

“그 아이가 금안의 괴물을 기르고 있다.”

“......해서 그 괴물을 죽이려면 찾아야한다?”

들으면 들을 수록 가관이라 에드안의 실소는 점차 광소로 번져갔다. 참으로 깜찍하고 요망한 아이다. 아버지의 눈에 들지 않게끔 재능을 숨기고 한다는 짓이 세계를 삼킬 괴물을 거두는 것이라니. 자하드가 자신을 찾아오게끔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에드안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을텐데 찾아내야 할 이유를 더해 주니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을 수 없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찾아봐 주지.”

“모르는 건가?”

“뭐?”

“당장은 알 수 없는 거냐고 물었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자하드를 마주한 에드안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주변의 기류에 에드안의 전기가 타고 흘러 파열음과 같은 소리를 만드는 간격이 짧아졌다. 자하드를 막아섰던 그 푸른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지만 에드안의 눈동자에는 또 다른 이채가 흘렀다.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는 신비로운 색이었지만 자하드의 머릿속을 채운 눈동자는 에드안의 것이 아니었다. 좀 더 투명하고 깨끗한, 그러면서도 깊은 눈동자였다. 이 땅의 생명이라면 자하드에 대해 모르지 않을텐데 그가 멸절을 선언한 괴물을 기르고, 또 자신의 손에서 앗아 도망친 맹랑한 아이의 눈동자 답게 아무런 두려움도 내비치지 않던 눈빛. 두려움만이 아니라 어떤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공허라 해야 하려나?

“그럼 내가 직접 찾겠다.”

“흥. 그러던가. 대체 날 왜 찾아온 거냐.”

“네 우리의 권속이 아니라면 내가 데려가도 불만은 없겠지.”

“뭐?”

자하드는 에드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함께 영생을 누려온 친구이자 세계의 지배자 중 한 사람인 에드안이라면 자하드도 손쉽게 제압할 수 없는 인물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당장 승부를 보기에 위험부담이 큰 쪽은 분명 에드안이었다. 자하드의 예상대로 에드안은 자하드의 돌발 선언에 퍽이나 당황한 듯 싶었으나 섣불리 주먹을 내 뻗지는 못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자하드! 야, 자하드!!”

당장은 대답 없이 멀어져 가는 친구의 등에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고작. 이 일로 에드안과 얼마나 틀어질 지는 아직 예상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명분은 자하드 쪽에 있으니 별 상관 없었다. 분하기는 하겠지만 아직 자하드가 에드안의 아들을 손에 넣은 것도 아니거니와 자신의 손으로 내다 버린 자식도 많은 만큼 에드안의 아들 중 하나가 자하드의 손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가 직접 나서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물론 자하드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에드안이 자신보다 그를 먼저 찾아낸다면 금안의 괴물을 자하드가 죽일 수는 있어도 에드안의 아들을 만날 기회를 다시 갖기는 힘들 것이다. 에드안의 물건에 대해서 자하드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말하자면 도박이었지만 자하드는 무엇도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도박의 결과가 어찌되든 그는 금안의 괴물만 죽이면 되었고 영생의 권태에 갉아먹히던 삶에 잠깐의 빛이 찾아든 것만으로도 만족할만 했으니까.

“아센시오… 들었느냐?”

“네. 아버님.”

“자하드가 말한 네 형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보다 먼저 찾아서 데려오거라.”

귀한 인재가 자신의 아들 중에 있었다는 걸 아버지인 에드안이 여즉 몰랐다는 것만해도 억울한데, 구경도 하기 전에 자하드에게 빼앗기다니 자존심 센 에드안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찍이 그에게 인정받아 휘하의 장수로 부리고 있는 자식들을 풀어 동생의 행방을 수색케한 에드안은 제 분에 못이겨 곁에 둔 와인을 병째 비웠다.

*

쿤의 지시사항이기도 했지만 그의 뒤에 꼭 붙어 따라가는 밤은 검은 숲의 오싹한 공기 때문에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무언가가 자신을 찔러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 밤과는 다르게 정면을 응시한 쿤은 내딛는 걸음마다 얼음을 깔며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전진 중이었다. 추적자들은 아직 쿤이 상대하기엔 버거운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을 피하려면 쿤도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내던 곳을 태워 흔적을 감추고 마물들이 우글대는 그림자 숲으로 들어온 쿤은 숲의 중심부 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색이 어려운 지점까지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했다. 먼 옛날, 아를렌이라는 대마녀에 의해 형성된 이 숲은 온갖 저주를 머금어 그림자를 대상과 같은 모습과 힘을 가진 마물로 변화시킨다. 다행히 쿤이 가진 얼음의 힘은 그림자를 흐려지게 만들어 일시적으로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숲 전체가 어둠에 휩싸이는 밤이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잠시라도 쉬어갈만한 목적지를 찾을 때까지는 쿤에게도 녹록치 않은 매일이겠지만 당장의 죽음을 피하는 방법은 이 뿐이었다. 다행히 쿤은 자하드나 에드안과 같은 강자는 아니니까 자신의 그림자가 덤벼온다고 해도 그 두 사람보다야 상대하기 수월하겠지.

“쿤씨.. 여긴 너무 무서운 것 같아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아까는 강해지고 싶다더니 벌써 포기한 거야?”

“쿤씨가 저한테 빙결마법을 가르쳐 주시면 되잖아요.”

“그랬다간 네가 마법의 입문도 떼기 전에 발각당할 걸.”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건가요?”

“당장의 계획은 이대로 물이 있는 데까지 가는 거야.”

“물이요?”

“그림자가 흐려지는 곳이 필요하거든.”

항상 검은 로브를 꼭 두르고 다니던 쿤은 숲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것을 벗어 태워버렸다. 덕분에 밤은 오랜만에 제대로 쿤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숲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까봐 긴장하게 되는 건 여전했지만 한 번 시선을 주고 나니까 오히려 쿤이 신경쓰여서 숲을 주시하기가 힘들었다. 엷은 그늘이 한 겹 드리운 것 같은 이 공간에서 그는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밤과는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신체 곳곳에 깃든 깨끗하고 맑은 색채가 밤의 시신경을 자극했다. 밤이 기껏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그가 미웠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키 차이도 별로 나지 않고 오히려 밤보다도 선이 가는 체형이 그대로 눈에 박혔다. 알고 있다시피 쿤은 밤보다 강한 마법사였지만 위험한 기운을 짙게 풍기는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여태 그의 보호를 받아온 밤조차도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다.

“물을 못 찾으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글쎄. 하루이틀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은 생각하기 싫은걸.”

“그럼 절 버리고 쿤씨라도 마을로 돌아가는 건 어떠세요.”

“됐어. 이미 들켰는데 널 떼 두고 간다고 안전하겠어. 마물들의 밥이 되더라도 여기서 내 선택으로 그렇게 되는 게 나아.”

여태 쿤이 계속 주의하고 있는게 ‘그림자’라면 두 사람이 물을 찾는다고 해도 앞으로처럼 따뜻한 집을 거처삼아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먹고 마실 것도 전부 이 곳에서 구해야 할 터였고 입을 것도 마찬가지였다. 쿤이 마을까지 나가 종종 보급을 해 올 생각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나는 첫 순간부터 길거리를 전전했던 밤이라면 모를까 쿤이 그런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밤은 이제야 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당장 눈 앞에서 저 작고 하얀 뒷모습마저 사라진다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

“좀 더 주무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다행히 두 사람은 한계에 달하기 전엔 물을 찾을 수 있었다. 숲의 그림자가 겨우 닿지 않는 곳을 거점 삼아서 쿤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밤은 그림자 마물을 상대로 수련을 시작했다. 쿤은 몰랐겠지만 이유가 생기고 나니 밤은 싸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마음을 달리 먹은 이후, 밤의 성장은 거침이 없었다. 고작 몇 년 사이에 시간대와 관계없이 숲의 마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밤이었지만 녹록치 않은 생활은 쿤의 건강을 차츰 악화시켰다. 예민한 성격을 타고난 쿤이 노숙이나 다름 없는 이런 생활을 시작한 이상 끝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는지도 모른다. 밤이 쿤 이외의 몇몇 인물들과 어울릴 적에도 그들은 쿤에게 왜 여항에 머무는 지를 묻곤 했으니 말이다. 실력만큼이나 몸도 성장한 밤이 보기에 병색이 완연한 지금의 쿤은 과거의 자신이 대체 뭘 믿고 그리 의지했었나를 돌이켜보게 할 정도로 연약했다. 밤이 잡은 들짐승의 가죽을 갈무리해 만든 모포로 감싼 몸은 며칠 사이에 더 마른 것 같았다. 가끔 시장에 나가서 생필품과 먹을 것을 사 오기는 하지만 숲에서의 생활 자체가 험한데다가 밤이 약재를 보는 눈이 없어 이리 되지 않았나 싶다. 상태가 쭉 안 좋은 쿤을 시장에 보낼 수가 없어서 최근에는 밤이 혼자 다녀오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의 밤은 혹 도시의 경비병과 시비가 붙는다고 해도 그들을 손쉽게 따돌릴 수 있을만큼 강해졌기에 마을까지 오가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물건을 보는 눈은 도통 생기지가 않았다. 그런 섬세함이 일찍이 있었다면 쿤이 밤을 위해 얼마나 힘든 선택을 했는지도 먼저 알아챌 수 있었을까?

“심심할텐데.”

“다른 할 일도 없는 걸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숲의 바람이 수면을 쓸고 지나간 흔적을 함께 바라봤다. 윤슬이 이는 양이 너무도 눈이 부셔서 쿤은 먼저 눈을 감았다. 저를 지켜주겠다는 말에 한 조각의 믿음도 가지 않던 소년이 이렇게나 자랐다. 이것으로 그가 기르려던 ‘괴물’은 완성된 것일까? 그 괴물은 자신의 소망대로 이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켜 으깨 부술까? 쿤은 혼자 쓰게 웃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당장도 자신을 어미새처럼 보듬는 유약한 소년이 쿤이 원하던 괴물일 리가 없었다. 그럼 결국 완성이라는 것은 쿤이 눈을 감은 이후에나 가능한 일일까?

“저..”

“죄송한데 말씀 좀 물읍시다.”

그림자의 숲 같은 험한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낮시간이라 위험을 무릅쓰고 이 숲을 건너려는 모험가들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숲을 빠져나갈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 호숫가에 이르렀다는 건 이상했다. 길을 잃은 이라면 이 땅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좀 더 놀라워 해야 했고, 이 숲으로 숨어든 자라면 좀 더 경계함이 옳았다. 부정합을 눈치챈 밤의 금안이 차게 식어 말 그대로 금속성의 광택을 띄었다.

“여기까지 찾아올만큼 한가한 몸이 아닐텐데.”

“역시 너 였냐, A.A. 하.. 이만 돌아가자. 아버님께서 널 찾고 계신다. 게다가 너 처럼 몸도 약한 녀석이 노숙이라니. 이러다 몸 상해.”

달려나갈뻔 했던 밤은 차분한 쿤의 목소리에 행동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직 잠들기 전이었으니 자신을 품에 안은 밤의 신체가 긴장으로 근육을 부풀리는 걸 느끼고 있었던 쿤은 얘기치 않게 그가 길러온 것이 괴물의 새끼가 맞긴 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지켜준다는 게 빈 말이 아니었던 건지 밤은 사람의 형태가 아니었으면 그르릉 거리는 거친 숨소리를 뱉을 듯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이 곳에 제대로 정착한 이후 밤은 첫 날처럼 쿤에게 혼자서라도 다시 돌아가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모두 잃은 이후에 그의 소유욕이 전부 쿤에게 집중되어 버렸나보다. 쿤이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깊이.

“몸 상하는 건 거기도 똑같지. 난 안 돌아가.”

“고집 부릴 때가 아니야. 아버님만이 아니라 탑의 왕도 널 찾고 있다. 지난 몇 년 간이나 이어진 집착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아?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쿤의 궁으로 돌아가야해.”

밤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소년이었을 적에 쿤이 말했었다. 자하드는 자신도 밤도 죽일 것이라고. 쿤의 궁에서 온 자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자하드는 실로 무서운 인물임이 분명했다. 다 알면서도 쿤은 여태까지 밤과 함께해 준 것이다. 이렇게 약해질 때까지도.

“밤. 저들을 숲 밖으로 쫓아내. 절대 죽이진 말고.”

그건 절대 형제에게 베푸는 온정 같은 게 아니었다. 죽이는 것보다 살아있는 자를 막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니까 밤에게 더 어려운 과제를 내려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쿤의 의중이 무엇인지 헤아릴 필요도 없이 밤은 당장에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섰다. 쿤에게 모포를 다시 여며줄 때를 제외하면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자 눈빛이었다.

“A.A!!”

“쿤 씨를 방해하지 마세요.”

“닥쳐라, 괴물. 지금 누가 누굴 방해한다는 거지? A.A.를 위험에 빠뜨린 건 너다. 네 녀석만 아니었으면 평안한 삶이 보장된 아이를..!!”

“쿤 씨가 절 선택했어요. 방해꾼이 누구인지는 이걸로 판가름 난 것 아닌가요?”

밤의 금빛 홍채 속엔 마치 경멸과 같은 빛이 어려있었다. 아마도 괴물은 자신이 느끼는 거부감을 그런 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는 진심이었다. 조용히 일렁이는 분노는 이미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입을 다문 그를 대신해 주변의 공기가 이글거렸다. 분노와 같은 박자로 범람한 그림자가 소년의 살갖을 검게 물들였다.

“금안의 괴물!”

일행 중 누군가의 입에서 탄식처럼 그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재앙'이라 불리는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니 동료들의 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나보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소년의 모습은 괴물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살갖을 타고 올라온 그림자가 검은 불꽃처럼 넘실댔다. 그것은 흡사 소년의 몸 속으로 어둠이 차오르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전신이 새까맣게 덮이고 난 뒤에는 흉흉하게 빛나는 금빛 동공만이 적을 향했다.

'...설마 숲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는 건가?'

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위치이긴 했으나 추적자들과 같은 상황을 보고 있는 쿤에게도 밤의 상태는 위험해 보였다. 그가 '괴물'이라는 걸 쿤이 지금만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놀라웠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순수하고 담백하게 이 기적같은 순간을 받아들일 뿐. 어차피 쿤이 원하는 건....

"A.A.!!"

밤의 몸 속에 잠들어있던 괴물이 개화하는 순간에 홀려있던 쿤을 찾아온 그의 형제가 잡아 끌었다. 아센시오는 동생이 정말로 금안의 괴물을 기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야 말았지만 당장의 문제는 이 숲도, 괴물의 새끼도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괴물이자 자신에게 동생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린 아버지, 에드안이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에드안은 아센시오의 다른 형제들에게도 재앙이 될 테니까. 분명 밤이라는 소년의 힘은 아센시오가 여태 보지 못한 종류지만 아직은 운용에 대해 서툰 구석이 많아 보였다. 전투에는 절대적인 힘 못지않게 경험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동생이 그를 죽이지 말라고 했으니 쉽게 공격할 수도 없을 터. 그 점을 노려 밤을 피해 재빠르게 쿤의 곁으로 도약한 아센시오는 그대로 일행을 버려둔 채 도망칠 생각이었다.

"윽!"

아센시오의 계획이 생각으로 그친 것은 소년의 몸 속에서 완전히 깨어난 괴물이 원하는 것은 그의 동생 단 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지 않을까. 밤을 잠식한 어둠은 쿤의 곁에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다가서게 두지 않겠다는 듯이 쿤의 주변을 검은 늪으로 감쌌다. 죽이지 말라는 말도 염두에 두고 있는 건지 모를 눈이었다. 새까맣게 물든 피부 덕에 어둠 속에 떠 있는 달과 같은 금빛 눈동자 마저도 흉흉해 보이는지도. 그렇게 타인의 육체까지도 넘보던 어둠은 식물의 덩굴처럼 침입자들을 휘감았다. 뼈를 부수는 둔탁한 굉음에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쿤이 형제에게로 달려왔다.

"아센시오!"

"크... 아게..로... 도망..쳐라, 어서."

"밤! 숲 밖으로 쫓아내기만 하면 되잖아!!"

"그럼 다시 올 거잖아요? 적어도 다리 정도는 못 쓰게 만들어야..."

"크아아아악!!"

"저흴 가만히 내버려 두겠죠."

밤이 그를 막진 않았으나 쿤은 아센시오를 향해 뻗었던 손을 떨어뜨렸다. 어차피 쿤이 바란 건 멸망이다. 늦든 빠르든 형제들도 그 때 쯤엔 의미를 잃을텐데 계속 미련을 두면 무엇할까? 쿤의 행동에서 체념의 빛을 읽은 밤은 살벌했던 눈을 다시 원래의 그로 되돌렸다. 어서 방해꾼들을 치우고 쿤을 다시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다시 자신의 품에 기대어....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쿤씨!"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빛은 지금까지 쿤이 본 그 어떤 것보다 눈부신 것이었다. 그 찬란함에 잠시 넋을 놓았던 쿤을 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깨웠다. 이어 턱을 잡아 올리는 단단한 손에 빛의 근원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쿤은 현실성 없는 사건들의 연속에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은 채였다.

"....당신은..?"

"쿤씨!!"

"!"

밤이 다시 한번 그를 불렀을 때가 되어서야 쿤은 밤을 돌아봤다. 자하드의 눈이 그 쪽을 향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방금 밤의 성장을 확인하긴 했지만 수천년 간 세계를 지배해 온 자하드의 상대가 되긴 아직 이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쿤은 자하드의 시선을 가로막고 자신에게로 뛰어드는 밤을 그대로 다른 공간으로 흘려내었다. 시선이 얽혀 있을 적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민함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표정을 유지한 자하드는 쿤을 당겨 품에 안았다.

"시공을 다루는 재주는 아주 드물고 또 어렵지. 그 힘을 버틸만한 신체를 타고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부모로부터 보통보다는 훨씬 강인한 육체를 물려받았기에 망정이지 한껏 약해진 상태에서 공간의 틈을 열었던 쿤은 천천히 의식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자하드가 금방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밤이 가까운 곳에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찾으러 왔던 형제들은 그 후에 어찌 될 지를 생각하는 것조차 무리였다. 쉽게 느낄 수 없는 마력의 파동을 바로 감지한 덕에 수년 간 찾아 해맸던 소년을 손에 넣은 자하드도 지금만큼은 서두를 것 없이 쿤이 자신의 품에서 완전히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너흰 이제 어찌할 테냐. 살고 싶다면 내가 거두어 줄 수도 있는데."

".....A.A...에게는 대체... 무, 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탑의 왕."

"......"

자하드는 말 없이 자신의 품에 잠든 소년을 내려다 보았다. 온 세상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명령을 맹랑히 거스른 그를 찾아서, 자신은 어찌하고 싶었던 걸까? 그가 기르던 괴물의 새끼를 죽여야 하기 때문에 아직 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척살의 대상이 아닌 이 소년을 찾아헤맨 이유를 그는 무어라 설명해야 옳을까? 아직은 대답할 수 없었다. 모르니까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꼭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 또한 없으므로 자하드는 마음 가는 대로 소년을 안아 올렸다.

"지금 부터 생각해 볼 참이다."

*

탑. 세계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그 곳은 역사가 존재한 순간부터 현신(現神), 자하드의 거처였다. 선사가 그의 손에 지워진 건지 그가 정말 신이라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하는 지는 이제와서 밝힐 수 없겠지만 여하튼 자하드는 뭍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존재였고, 때문에 탑의 위상도 공고했다. 자하드와 그의 친족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쿤은 자신이 그런 곳에 있다는 걸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그는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일텐데.

"좀 쉬었는지 모르겠군."

"......무슨 속셈이지?"

"글쎄. 아무튼 너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치료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들었다. 마력을 봉했으니 도망칠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거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기력도 없는 쿤에게는 마력이 그대로 남아있다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들었기로손 그걸 또 베풀어주기까지 한 걸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잠자리에서 푹 자고 일어난 영향인지 쭉 저점이었던 몸상태가 오늘은 좀 나아진 듯도 싶었다.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여전히 자세를 바꿀 기력도 없었지만 시야만은 밝게 트여 있었다. 몇 년이나 쿤을 찾아 다녔다고 했던가? 이제야 얻은 성과를 만끽하는 중인지 쿤의 침대에 걸터앉은 자하드는 물색 모발을 손끝으로 흘려내었다.

"에드안의 아들이 어째서 괴물을 보살피는 거냐."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

할 말이 없었기에 자하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누운 자리에서 똑바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깨끗한 눈이었다.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기에 나타나는, 그런 종류의 투명함. 자하드가 그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런 류의 생기를 하나도 담고 있지 않아 자하드는 소년의 눈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냥 죽여."

"넌 내가 금한 금빛 눈동자의 괴물을 길렀다. 그러니 나 또한 네 말을 들어 줄 이유가 없지. 나는 널 살리겠다. 네가 죽고자 한다면 더더욱."

"악취미네."

"네가 한 짓에 비하면 별 거 아니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오랜 예언이 이야기한 멸망의 위기로 세계를 쏟아넣었으니, 그는 분명 중죄인이었다. 하지만 자하드는 세간 사람들이 말하는 신이 아니기에 소년을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건 자하드가 그를 멋대로 대할 수 있는 무력이 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게다가 당장 중요한 것은 자하드가 소년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기른 괴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자하드가 자리를 비우면 그가 무슨 짓을 할 지가 염려되는 상황이었기에 왕은 부득이하게 어린 날에 그와 친구로 지냈던 막내아들을 불러 감시를 맡기기로 했다.

"다음에 볼 때는 협조적이었으면 좋겠군."

*

괴물. 갑자기 공간을 열고 나타난 밤을 가리켜 그 곳 사람들은 괴물이라 칭했다. 주변의 사물을 닥치는 씹어삼키는 어둠을 전신에 휘감고 나타났으니 그리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쿤의 도움으로 자하드에게서 도망친 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미웠다. 괴물이라는 단어가. 탑의 왕이 자신을 노리게 만든 이유, 친구들을 잃고 숨어 살아야 했던 이유,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에 남아 주었던 쿤마저 사라져버리게 만든 그 이유로.

"제가 어째서 괴물인가요."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서 금빛 눈동자를 물려 받았다는 사실이 밤을 괴물로 만든 것이라면 그들은 왜 밤의 부모부터 밝혀내지 않는가? 늘 마음을 기대오던 쿤까지 곁에 없으니 밤의 감정은 원망과 분노로 점철되어 스스로를 점점 더 괴물이 되는 길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밤 자신은 그를 의식하지 못한채로, 그의 어둠은 이제 살아있는 생물들까지도 손을 뻗었다. 직전에 피 맛을 본 그림자들은 더더욱 거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네가 정말 전설 속의 괴물이라서 왕이 들이닥친 순간에 각성이라도 하면 모를까.

밤이 하는 한 그가 무엇이든 개의치 않고 받아들여준 건 쿤 밖에 없었다. 이대로 공간을 삼켜가다 보면 다시 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 밤은 새로 찾은 희망으로 속도를 높였다. 혹여나 자하드가 이미 쿤을 죽인 뒤라면 그를 찾아 죽일 것이다. 쿤의 걱정대로 밤이 아직 그를 이길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상관없었다. 여하튼 그는 '죽음'이라는 같은 공간에 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구나, 작은 괴물."

어둠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빛. 마치 구세주처럼 그림자의 침식을 탑의 왕이 막아섰다. 같은 색의 금빛 시선이 부딪혔다. 한 쪽은 빛 속에 자리한 태양이었고 다른 한 쪽은 어둠에 뜬 달이었다. 같은 세기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 상반된 힘은 정 반대의 색으로 여전히 세계를 먹어 치우는 중이었다.

"예언을 막을 수 없다면 좋다. 누가 탑의 주인이 될 지 겨뤄 보자꾸나."

예전에 이 글의 일부를 보신 분이 있으실텐데...
이상하게 보이실지도 모르겠으나 결말은 이게 맞습니다 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제 표현력과 문장력과 아이디어의 부족이 불러온 대 참사 정도로 여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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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탑 - 자하드 x 쿤] 태양

신의 탑/단편

 

 

 

 

 

 

 

 

 

당신은 같은 아니야.

 

자하드는 눈을 감고 기억의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울였다. 온통 금빛을 휘감아 찬란한, 그리고 비할 바를 찾지 못할만큼 강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태양이라 이르며 받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태양은 막상 속은 비어 있음에 틀림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강대함과 영원을 자하드는 얼마나 저주했던가. 한계가 없다는 것은 자하드에게는 그런 의미였다. 끝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경외감에 가득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는 사람들은 결단코 알지 하겠지만 말이다. 자하드가 기억하는 ,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이는 기억 목소리의 주인,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러게. 어리석었던 지난 날의 자신에게 자하드의 목소리는 결코 닿지 테지만 기억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뒤를 돌아보고 이어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하게 때면 그는 대답하지 않을 없었다.

 

내가 미쳤었던 게지.”

 

 

 

*

 

 

 

요호(妖狐) 해도 금빛 털을 가진 모든 짐승은 상서로운 존재. 개체 중에서도 특히 찬연하고 날랜 자태는 그들의 천적이라 하더라도 쉬이 범접할 없는 영역인지라 자하드는 어렵지 않게 무리의 우두머리로, 나아가서는 요호의 왕으로 성장할 있었다. 쌓이는 세월만큼 축적된 요력은 머지않아 두각을 나타내었다. 눈부신 호선(狐仙) 받드는 이들은 그를태양이라 일렀다. 그는 진실로 지상에 내려앉은 태양인 찬란했으며 요력만큼이나 깊이를 없는 식견으로 모두를 이끌었으니. 자하드의 위신은 동족들의 땅을 넘어 별세계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최고인 아는 인간들마저 자하드를 여우신이라 이르며 경배한다 했다. 동시에 그들은 호기심의 동물인지라 자하드의 강대함을 알면서도 그를 직접 눈으로 보길 원했다. 그가 선인지 악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도전자에게 가차없다는 금모호(金毛狐) 악명이 퍼져나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힘이란 모름지기 두렵기 때문에 숭배 받는 . 자하드를 찾아 떠났던 자들이 함흥차사 꼴을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공포심이 고개를 차례가 되었다. 여우는 인간의 간을 탐한다더라. 금빛 여우가 살생을 통해 힘을 축적해 남방을 지배하는 대요괴가 되었다더라. 그가 살육을 즐기는 날엔 그의 영지와 맞닿은 마을 하나가 사라진다더라. 그렇게 그가 세상의 모든 땅을 자신의 영지로 만들 속셈이라더라불어난 소문 또한 자하드의 힘인지라 소문이 땅의 모든 영토를 집어 삼킬 . 자하드는 스스로를 음양사라 일컫는 소년을 만났다.

 

? 인간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

 

지난 자하드가 목숨을 취한 인간의 머릿수만 세어도 족히 백이니 인간을 처음 본다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대상을 음양사라는 좁은 속의 부류로 한정한다 하더라도 처음은 아니었다. 자하드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그를퇴치하겠다는 명분이 섰기에 음양사들과의 조우는 오히려 잦아졌다. 충혈된 눈을 그들은 자하드를 어찌 하기 위해 비장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글거리는 적의가 멀리서도 느껴져 굳이 자하드가 그들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같은 음양사라 이르면서도 앞의 소년은 달랐다. 만월의 호숫가에 밤산보라도 나온 듯한 걸음걸이로, 자하드에게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조용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호수 같은 심청색 눈동자에 담긴 달무리가 일렁였다. 풍경을 청초히 만드는 소년의 색채가 아니라면야 을씨년스럽다 이를만한 풍광을 그는 정갈하고도 고요히 가라앉혔다.

 

너도 봉인하러 게냐.”

 

그럼 좋겠지만 그럴 능력은 없지.”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거냐?”

 

알고 있으니까 방금 대답한 거잖아. 질문의 순번이 괴이한데, 당신.”

 

“…….. 찾아온 거냐.”

 

죽으러.”

 

스스로가 어떤 말을 내뱉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읊는 죽음. 생경한 기분에 자하드는 금빛 눈동자를 굴렸다. 자하드로 하여금 요괴라 칭하는 인간이 제게 죽음을 청한다고 해서 거리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뒤늦게 생을 달라 애걸하는 목숨고 이미 수십은 짓밟아 왔을진데. 하지만 자하드는 자신이 손을 뻗자 모든 것을 맡기듯 눈을 감는 소년의 가슴에서 심장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거칠 없이 폐허를 내달렸다. 날카로운 발톱 대신 보드라운 털가죽으로 소년을 감싼 자하드는 그를 취하자마자 자신의 영지를 향해 훌쩍 뛰어올랐다. 죽음의 냄새를 쫓아 자신에게 왔다면 다른 것에 미련을 남기지도 않았을 . 자하드의 마음 속에 자라난 의문이 풀릴 때까지 일을 미룬다고 해도 불만은 없겠지. 그런 억지스런 추측과 함께.

 

 

 

*

 

 

 

인간을 거처에 들이셨다고요?!”

 

그러하다.”

 

년을 목석같이 지내온 그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나 했더니 사내 아이라 하질 않나, 겨우 한다는 변명이 잠재워 데려왔으니 거처의 입구는 모를 거라는 정도다. 여우들도 수양의 편의를 위해 종종 인간의 모습을 빌리기는 하지만 여하튼 그들은 본질적으로 여우고 마찬가지로 인간은 타고나길 그리 태어난 생물이다. 자하드의 뜻에 감히 반기를 있는 인물은 없었지만 그가 지난 밤에 데려왔다는 은빛 소년을 발견한 호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 어서 내치시는 좋지 않겠습니까? 최근 인간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화근의 싹을 자른다며 눈에 띄는 동족이란 동족을 모조리 죽여 호선이 일일이 동족의 생활을 돌보아야 정도입니다. 마당에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 한들 주군의 눈에 띄게 두었다는 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교활하여 소년에게 어떤 주술을 걸어 두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루빨리 처리하시는 편이 이롭습니다.”

 

그를 양육하고자 데려온 것이 아니다. 마땅히 때가 되면 그럴 것이니 너무 염려 말거라.”

 

최근에 인간들이 여우가 보였다하면 사냥하려 듯이 여우들도 자신들의 영지에 있는 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니, 그저 자신의 흥미가 떨어질 때까진 가만히 두라는 뜻으로 이야기 하였을 뿐인데 이미 인간에 대한 악감정으로 가득한 여우들은 공분했다. 무리의 지도자이긴 했으나 누가 의견을 물을 때가 아니면 무심히 살아왔던 자하드에게 이런 동족들의 반응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따로 이르지 않았으면 그가 데려온 소년은 하루밤을 넘기기도 어려운 처지였으리라. 아무튼 무리의 지도자가 어떤 생각으로 데려온 인간인지는 제대로 없으나 고작 소년 하나가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냐 싶어서인지 여우들은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자하드의 앞에서 오래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호선들에게 왕이란 그런 존재였다. 감히 의심할 없는 절대적인 하나. 무리의 중심이자 정신. 인간들의 왕처럼 힘의 논리에 따라 바뀌는 그런 존재가 아닐 뿐더러 무리에 여럿일 수도 없는 자였으니까. 걱정이 가득했던 동족들이 각자의 자리로 다시 떠나자 자하드는 자신의 속에 홀로 남겨져 있을 소년에게로 드디어 돌아갈 있었다. 인간들처럼 으리으리한 궁을 짓는 습성은 지니고 있지 않았지만 그가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어떤 모습으로도 지내기 편하도록 꾸며둔 자하드의 여우굴을 잠에서 일어난 소년은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죽음을 청하러 왔던 상대이니만큼 자하드의 기척에도 놀라는 기미조차 없는 동족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백이랄까?

 

흥미로운 거처인데? 여우의 왕이면서도 이런 토굴에서 지내는 거야?”

 

여우의 거처는 당연히 여우굴이다. 그게 본질이고 본질은 모습을 달리 한다 해서 바뀌는 종류의 성질이 아니지.”

 

그래..? 그럼 서로 잡아먹어 안달인 인간의 본질인건가.”

 

무슨 뜻이지?”

 

아무 없어. 보다 여기로 데려왔는지부터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죽으러 거지 호족의 마을을 구경하고 싶다고는 하지 않았어.”

 

마음이다. 죽으러 왔다는 자에게는 시기가 중요치 않을텐데.”

 

매우 중하지. 죽고 싶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승을 떠나고 싶다는 뜻이라고.”

 

그럼 찾지 말고 절벽에서 투신하지 그랬나.”

 

“..........그건 맞는 말이네.”

 

이어 소년이 혼잣말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했으나 자하드의 청각으로도 붙잡지 못한 것을 보면 입술만 달싹인 수준의 아주 작은 소리 였던 같다. 자하드가 인간의 모습을 취할 종종 이용하는, 들짐승의 털가죽을 쌓아 만든 침상에 여즉 남아있던 몸을 이제야 일으키며 소년, 그러니까 아게로 아그니스는 자하드와 시선을 얽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자하드를 보며 황금으로 만든듯 하다 하던데, 같은 논리로 따지자면 앞의 소년은 마치 은으로 만든 했다. 새파랗게 빛나는 청금석 빛깔의 눈동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여우인 자하드의 눈에도 이렇게 곱게 비칠 정도라면 아름다움을 귀히 여기는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대접받을 인물일텐데 어린 나이에 죽음을 쫓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열리는 자하드의 입을 소년의 낭랑한 음성이 가로 막았다.

 

그래도 빨리 죽여버리지 않으면 후회하는 당신일 ?”

 

기이한 일이었다. 간소해도 남루하지 않은 행색으로 보아 인세(人世) 밑바닥에서 같지도 않았고 삶의 풍파를 맛봤다기에는 이다지도 작기만 한데. 허나 자하드의 의문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는 소년은 다시금 환하게 밝은 미소로 그의 혼을 놓았다.

 

여하튼 데려온 당신이니까 구경 하고 와도 돼지? 호족의 마을을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했는데!”

 

말보다 행동이 빠를 나이인지라 금새 저를 지나쳐 가는, 그의 절반만큼의 신체를 뒤늦게 인지한 자하드의 걸음이 빨라졌다. 자하드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릴 이는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호족의 영지를 홀로 돌아다니는 위험했다. 더군다나 그는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음양사라 이르지 않았던가. 근래의 여러가지 사건들로 인해 호족들의 음양사에 대한 분노는 대단했다. 그들은 보잘것 없는 실력을 감추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도술을 쓰지도 못하는 여우를 잡아 죽이고 있는 주체였다. 때문에 호선으로 성장한 동족이 따라붙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쉽게 쫓아낼 있었지만 장삿속으로 벌인 일에 여우와 인간 사이의 골은 깊어갔다. 이런 상황이기에 자하드가 데려온 것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호족들이 알게 되는 이전과는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인간! 아니, ....아게로.”

 

시작은 늦었지만 자하드는 세계의 지배자로까지 거론되는 존재. 어렵지않게 소년을 품에 가두는 성공한 그는 아게로를 번쩍 들어 다시 털가죽 침상에 내려놓았다.

 

뭐야, 갑자기. 당신도 사육할 셈이야?”

 

사육이라니.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것은 너다.”

 

“.....”

 

음양사의 징표는 모두 내게 넘겨라. 옷도 갈아입는 좋겠군.”

 

? 내가 다른 여우의 손에 죽을 까봐? 말했다시피 빨리 죽는 좋은데.”

 

네가 그리 명을 재촉하는 지는 모르겠다만 죽음에도 여러 형태가 있지 않나? 굳이 아래의 것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자하드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이 투명하다 생각했다. 악의가 없다면 날을 세우지 않는다.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일만큼 총명한 아이다. 감정이나 욕구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장점이라 했던가? 헌데 누군가는 이런 아이를 우리에 가두고 가축처럼 길렀다는 건가?

 

그러려면 체모의 색까지 바꿔야 할텐데.”

 

덮어 없애면 되지. 잠시 기다리거라. 필요한 것은 내가 마련해 주지.”

 

사실 여우의 부락에 구경거리랄 딱히 없었다. 여우의 토굴은 아게로가 함부로 드나들 있는 영역이 아니었고, 주인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아서 허락을 구할 처지도 되었다. 다만 마을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풍광이 뛰어나고 다른 색으로 바꾸었던 머리채를 바로 씻을만한 공간이 있어 시름은 오래지 않았다. 탐탁치 않은 기색에 아버지를 따라 시전에 놀러나온 어린 아이처럼 자하드에게 붙어 다녔던 소년은 물가에 닿자 바로 검게 물들였던 머리를 감았다. 달리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 먹으로 물들이자 하였더니 내색은 아니 하였어도 퍽이나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으으, 같다. 근질거려서 났네.”

 

미안하다. 미처 헤아리지 못했군.”

 

그렇다고 미안할 까지야. 음양사들이 너나 없이 여우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돌이라도 던질 알았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네.”

 

내가 곁에 있는데 호족이 너를 해할 리가.”

 

자하드의 정체를 모르는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잘난 하지 말라 소리 했겠지마는 가감없는 진실이라는 바로 있어서 아게로는 눈만 깜빡였다. 인간의 모습을 빌릴 알고 특유의 영특함으로 인간을 속이기까지 하는 여우지만 그들은 본래 인간보다 훨씬 순수한 존재. 무리의 지배자에 대한 신의는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견고할 터였다. 어쩌면 자하드가 동족들에게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있을 지도 모르지.

 

대단한 믿음이네. 하지만 당신은 답답하겠는걸? 그런 절대적인 신뢰 같은 부담스럽지 않아?”

 

전혀. 그것은 힘의 증표다. 내가 가장 강하니 섬김을 받고, 섬김을 받으니 백성을 살피는 것이다. 당연한 이치 아닌가?”

 

당신은 오랜 지기와 같은 이야기를 하네.”

 

힘이 있으니까 약자를 굽어 살펴야 한다고. 오후의 볕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들어갈 참인지 소년은 뭍가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물빛 눈동자에 호수가 비치고 바람빛 머리칼에 미풍이 스몄다. 수면에 비치는 소년의 그림자 옆엔 금빛 태양이 지키고 섰다. 새파란 눈동자에도 광경이 담기는 싶을 자하드는 마음 속에 응어리 있던 질문을 꺼냈다.

 

헌데 친우는 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두었던가?”

 

여우는 영물이라 그런가? 예리한 구석이 있네?

 

“……”

 

단순히 힘이 있다고 해서 모두를 거둘 있는 아니야. 친구도 그랬고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겠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군.”

 

당신은 같은 아니야. 그걸 잊으면 곤란해 날이 번은 ?”

 

쓸데 없는 걱정이다. 우리는 인간과 달라서 정과 은을 잊지 않는다.”

 

“…그래?”

 

소년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체모부터 눈동자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는 모든 곳에 황금빛을 둘렀기에 그의 일족과 금모호를 경외시 하는 인간들은 자하드를 태양으로 칭한다고 했다. 햇살이 타고 흘러 더더욱 눈이 부신 그를 보고 있노라니 모시는 자들의 심경을 알고도 남음이었으나 아게로는 이로써 그에게 이해를 구할 없음을 직감했다.

 

당신은 절말로 태양이 되고 싶은 가보네.”

 

것이 무엇 있나. 만물에게 은혜를 베풀면 그게 태양이지.”

 

그렇게 되고 싶은데?”

 

이상한 질문이군. 인간들도 그리 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죽이지 않고 데려온 거야?”

 

“……그는 아니다.”

 

하하, 역시 솔직한 마음에 들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자하드가 소년을 자신의 거처로 데려온 것은 그리 자애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무리를 위해 전지전능한 태양이 되기를 염원했으나 그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비정한 사냥꾼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소년에게 은혜를 베풀 아량 같은 시작부터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하드를 적대시 하지도 않았으므로 처우를 결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래. 아마도 그래서 그는 결정을 유보하기로 마음 먹었었나보다.

 

하지만 당신은 태양이 없겠네? 내가 섬기는 죽음뿐이니까.”

 

인간의 무리 속에서 살기 싫으면 나의 백성이 되어라.”

 

?”

 

그럼 되지 않느냐.”

 

몸을 일으켜 그대로 자하드를 지나쳐 가지 않을까 싶어서 그는 참지 않고 안에 맴돌던 말을 바로 끄집어 냈다. 절박함이라 이를 만한 애달픈 마음을 토해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응어리가 가슴 켠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자하드는, 요호의 왕은 절박했다.

 

“……., 며칠은 그렇게 지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죽음에도 여러 형태가 있으니. 물론 소년은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

 

 

 

아게로가 자하드의 손을 붙잡고 호족의 마을을 순회한 벌써 닷새 전의 이야기. 아직도 아침 잠을 파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게로의 귓가로 작은 발소리들이 앞을 다투었다. 가볍고 날랜 것이 필히 짐승의 . 벌써 새로운 거처에서의 생활도 적응이 되어가는 차인지 아게로는 놀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의 손님들이라면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여우들은 부락 내의 토굴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내버려 두었고 그건 요호의 왕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어른들이 모두 정무를 보러 아침 나절의 마을은 전부 꼬마 여우들의 차지라고 봐야 했다.

 

아게로. 이거 열어줘.”

 

뭐야. 부탁할 때는아게로님이라고 해야지.”

 

아게로, 이거 열어줘.”

 

“.....그래그래. 내가 여우한테 바라냐. .”

 

어느 세계에서든 동일한 논리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아게로에게 제일 먼저 마음을 것은 아직 인간으로 둔갑하는 법도 모르는 어린 여우들이었다. 어른들이 인간과의 결전을 앞두고 분주한 시기임에도 그들은 양치기처럼 아이들이 노는 곳을 돌보는 아게로에게 손발이 필요한 여러 일을 부탁하며 친분을 쌓아갔다. 사실 아이들이 노는 곳을 인간인 아게로가 돌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고, 그저 마을에 남겨진 것이 그들밖에 없다고 봐야했다. 더군다나 아게로는 자하드와 마을 구경을 마친 이후로는 자하드의 여우굴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꾸미는 것이 번거로울 뿐더러 자하드가 구해온 옷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물론 자하드가 아게로에게 마을을 보여주는 동시에 호족들도 아게로의 얼굴을 눈에 익혔기에 자하드의 물건인 그를 어찌 보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음양사로 유명한 일족이라는 알려진 이후에도 말이다. 여우들은 자하드가 그간 숱하게 음양사들을 도륙했기 때문에 이름높은 음양사라 한들 그가 자하드의 감시 아래서는 활약하기 어려울 것이라 믿었고, 무엇보다 어린아이가 그만한 주력을 갖추었을 것이라고 생각치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아게로와 함께 두다니. 놀라울만큼의 신뢰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믿음이었다. 여하튼 덕에 그나마 머리카락을 먹으로 들이는 수고는 덜어서 아게로는 눈부신 은발인 채로도 마을 어귀를 걷는 정도는 있게 되었다.

 

녀석들은 대체 가져 온거야? 뭐가 이렇게... !”

 

아게로 다쳤어?”

 

아니.. 긁혔어. 괜찮아.”

 

괜찮아? 나는데.”

 

금방 나아.”

 

호기심 많은 꼬마 여우들이 가져온 아마도 담배잎을 모아두는 통인 같았는데, 귀족의 물건인지,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다물린 통을 여느라 애를 쓰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모서리가 아게로의 손가락을 스쳤던 모양이었다. 피냄새가 번지니 예민한 후각을 가진 꼬마 여우들의 머리가 일제히 아게로를 향했다. 자기들이 부탁한 일이라 그런지 머리를 부비며 안부를 확인하는 모습에는 화를 낼래야 그럴 수도 없었다. 긁힌 정도는 그리 일도 아닌데 한마음으로 걱정해 주는 오히려 황송할 지경이다.

 

정말로....”

 

화륵-!

 

상처를 감싼 작은 불꽃이 상처 자체를 태워 버리자 새하얀 손끝에는 상흔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아기 여우들은 광경이 신기한지 음양사의 힘에 대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란을 피웠지만 쓰게 웃은 아게로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 일에 대해서는 어른들께 이르면 아니 ?”

 

왜애?”

 

그야 분들이 알면 마을에서 쫓아낼 테니까.”

 

아게로가 음양사인 우리 버지 알고 계시는데?”

 

주술을 쓰는 지는 모르시잖아.”

 

그래? 그럼 비밀로 할게.”

 

나도 비밀로 줄게!

 

나도!”

 

뭔가 대단한 일을 주는 것처럼 으스대는 꼬마 여우들의 눈빛을 보니 혹여나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더라도 여우 무리가 아게로의 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한참 나중이 되겠지마는 아게로는 감했다. 이곳에서도 자신의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그러게 자하드가 빨리 자신을 처리해 주었어야 했는데 무슨 바람이 건지 자하드는 아게로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거처의 반을 나누어 주고 호족의 마을에 머물 있게 주었다. 소일거리에 식음료까지 해결을 덕에 인간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지내면서도 불편함을 몰랐다. 마치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이는 것처럼 뚫어져라 자신응 응시하고만 있는 자하드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말이다. 아이들이 다시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모험을 떠나자 아게로는 그들이 떠나간, 아니 그보다 곳에서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태양. 태양이라는 이름을 감히 별호로 삼고 있는 여우, 자하드. 요호의 왕이라 이를만한 강자에 무시무시한 소문이 없어 기대를 걸어 보았건만 역시 축생은 인간보다 영혼이 맑아서 살의가 없으면 죽일 마음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깨 넘어 배운 지식이 전부라고 해도 아게로 역시 음양사로 유명한 가문에서 나고 자라 수학한 . 만물의 축복을 고루 받은 신성한 존재를 어찌 경외하지 않을 있었을까?

 

어찌 투신하지 않았느냐니...... 당연히 그걸로는 죽지 않으니까지.”

 

아프기만 더럽게 아프고 말이야. 무시무시한 소릴 덧붙이면서도 아게로는 여상히 가죽끈을 찾아 머리채를 올려 묶었다. 자신의 몸에 깃든 이기를 넘어 진정한 죽음을 있는 존재는 많지 않을텐데 누굴 찾아가야 하는 걸까? 인간은 누구나 그를 죽이는 것보다는 이능을 이용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니 아니되고. 물론 아게로를 끝내줄만한 저주술의 대가도 알고 있긴 하다만 그도 마음이 여려서 어떤 대의가 있지 않음에야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아게로가 인류가 적대하는 호족에게 있다는 밝혀지면 속히 처단하라는 청이 하늘 높은 모르고 빗발치겠지만 이를 알리기도 쉽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전쟁이 일어나는 능사인가..”

 

소문만 무섭지 요호의 왕이든 저주술사든 알맹이는 물러 터져서 아게로만 고생이었다. 죽음의 형태에 순번을 매길 있다 했던가? 아게로가 얼마나 오래 살아 있느냐에 따른 결말에도 순번을 매길 있거늘.

 

“……그래도 은은 입은 사실이니 보답 정도는 하고 떠나야겠지?”

 

 

 

*

 

 

 

종족 간의 전쟁에는 본디 명분이 그리 중요치 않다. 서로 다른 존재에게는 다르다 것만으로 온갖 감정으 도화선에 불을 붙일 있는 법이라 그저 방치하는 것만으로도 깊어진 골은 서로의 피로 밖에 메울 없는 수준이 되었다. 무리의 지도자로서 전투의 선봉에 서야하는 자하드에게 소년은 부의 부적을 건넸다.

 

축낸 식량 정도라고 생각해.”

 

호신부인가?”

 

대단한 재주는 없어서 정도 밖에 도움은 안되겠지만 없는 보다는 나을 ?”

 

주사(朱砂) 아닌 피로 쓰여진 부적은 처음 받아 보지만 투명한 눈이 거짓을 고한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자하드는 일단 그를 받아 속에 보관하였다. 동족들은 인간을 믿어서는 아니된다 번을 사뢰었으나 그는 처음 순간 부터 소년이 정결한 존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쌓인 수양의 힘인지 단순한 동물의 직감인지는 가름할 없었지만 그의 손에, 혹은 동족의 손에 소년의 피를 붇혀서는 된다는 확실히 있었다. 태양이라 칭송받는 자신보다 배는 상서로운 기운이 언제나 소년을 휘감고 있었으니.

 

, 이제 그만 죽여주지 않을래, 태양님? 전장에 서면 어찌 모르잖아. 전에 약속을 지켜 줘야지.”

 

쓸데 없는 걱정이다. 나는 승리할 테니까.”

 

. 어디서 패기야? 시커먼 전장에서 찬연한 금모는 노리기 좋은 표적밖에 될텐데.”

 

인간들의 무기 따위 두렵지 않아.”

 

평범한 무기라면야.”

 

비웃는듯한 소년의 목소리에 살짝 심기가 불편했지만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의 낭랑한 웃음 소리에 탁한 감정은 금새 곳이 없어졌다. 어디서 구해 건지 처음 만나던 날처럼 차려입은 단정한 백의에 본연의 눈부신 색채가 초설 속의 매화처럼 눈부셨다.

 

분명 후회할텐데.”

 

그럴 리가. 다른 이들은 몰라봐도 눈에는 보인다. 일월(日月) 축성(祝聖) 지닌 자를 함부로 해하는 좋은 생각이 아니지. 너는 세상의 축복을 받은 아이다.”

 

“……..천지 축복한다면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을까?”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다. 청금석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없었다. 다만 투명한 시선이 자하드의 음성을 옭아매어, 그는 답하고 싶어도 답할 없는 상태였다. 아릿한 물빛 미소가 자하드의 시선 끝으로 사라진 이후에야 그는 숨이 트였다. 멀리는 보는 채로 소년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나도 데려가. 호족의 마을을 인간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겠지, 요호의 .”

 

사실로 말할 같으면 자하드는 그를 안전한 자신의 뒤에 남겨두길 바랬다. 하지만 동족의 뜻은 소년의 말과 같았으므로 어쩔 없이 자하드는 소년과 함께 떠날 밖에 없었다. 소풍을 떠나는 , 혹은 만남의 날처럼 산보를 즐기는 . 병장기로 무장한 시커먼 무리의 즈음에서 소년은 힘든 기색 없이 사뿐히 뒤를 따랐다. 자하드와 가장 곳에 있어서일까? 분명 자하드가 원하는 대로 그는 자하드의 , 가장 안전한 곳에 있는대도 불길하다 여겨졌다. 예감은 조바심으로 이어졌다. 하루빨리 인간의 병사를 쓸어버리고, 그를 다시 여우의 영지에 데려가야겠다. 잃어버리기 전에. 사라져 버리기 전에.

 

 

 

*

 

 

 

비올레님!!”

 

그리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밤은 그들과 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다. 요호의 무리에 그가 있었다. 아게로 아그니스. 서로를 아명으로 부를만큼 친한 친구였고, 한때는 함께 수학한 음양료의 동무였던. 사라지기 전날 친우에게 죽음을 청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쇠창살 너머에서 담담히 그런 부탁을 하던 그는 밤이 끝끝내 제안을 거절하자 한숨처럼 말했었다. 후회하게 것이라고. 지금에 와서 밤은 의미를 분명히 헤아릴 있게 되었지만 망루에 굳은 표정의 밤을 발견했을 그는 눈이 마주치자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약간은 오만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마 말이 맞지?’ 정도의 말을 건네는 눈이 아닐까.

 

아게로님 부터 처단해야 합니다.”

 

“……”

 

힘을 호족들의 편에서 사용한다면…”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도 알고 있을 터였다. 의심이 어떻게 그를 죽일 . 손에 있을 때는 가축만도 못하다 싶을만큼 부려먹고 손을 떠나니 당장에 위협이라며 제거하라니. 동족의 양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에 이런 계획을 세웠을 그는 정답을 맞춘 스스로를 자축하며 득의 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이런 결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밤은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건만.

 

당신이 옳았습니다, 아게로. 저는 분명 후회하겠죠.’

 

. 친우가 죽음을 청하던 때에 밤이 부탁들 들어 주었더라면 그는 적어도 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을 터인데 지금에 와서는 한번 잡아보기도 전에 가여운 영혼이 지상을 떠나버리 겠지.

 

이것이 괴로웠을 당신을 외면한 죄과라는 겁니까..?’

 

여우의 영지로 먼저 병력을 보낸 것이 인간이니 요호의 왕에게서 대화를 시간 같을 틈이 없었다. 또한 미리 읽어내었을 아게로니까 밤은 옴짝달짝할 없이 그의 역할을 달게 받아들여야 했다. 혈액으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치유할 있는 이능 덕분에 길지 않은 생의 절반이 넘게 우리에 갇혀 생피를 뽑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마치 천리안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꿰고 있었던 그다. 이번에도 밤이 저주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기어코 축복을 요호들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다. 그렇게 밤을 몰아갈 터였다. 여우들이 인간과 달라 축복을 온전히 하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인간은 그러지 못할 테니까. 만약 여우들마저도 힘을 탐내 인간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용할라치면, 밤은 그도 내버려 없으니까.

 

쿤씨는 제게 맡기세요. 제가어떻게든 보겠습니다.”

 

 

 

*

 

 

 

무시무시한 저주의 힘을 타고나 힘을 두려워 하는 자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친우는 사실 심성이 곱고 여려서 소년의 부탁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아게로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손으로 그를 죽일 수는 없다고 했다. 대신 새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결정을 미룬 것이다. 지금 앞에 타오르는 태양과 같이.

 

여전히 사람 좋다니까. 좋은 일이나 시키고.”

 

주변에서 난리를 테니 저주의 화살이 심장에 내리 꽂힐 테다. 드디어 염원하던 순간을 손에 넣었으니, 마지막으로 따뜻하고 찬란했던 태양에게 소년도 무언가 보답을 볼까? 축생도 안다는 은을 사람이 베풀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니.

 

오늘 아무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라는 법은 없겠지만.”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함포를 찢고 상처를 태우는 불꽃이 만물에 범람했다. 마치 지상에 태양이 나린 듯한 광경이었다. 무기를 녹이고 주술을 삼킨 불꽃은 신기하게도 생명은 해하지 않았다. 다만 더없이 찬란했던 불꽃의 바다가 이윽고 자취를 감추었을 , 인간의 태양과 요호의 태양은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CP 표기가 민망하게도 사실은 거의 논컾...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시간이 끌리다 보니 산으로 가 버린 느낌이네요 죄송하게도;;

그래도 트친분이랑 약속한 글이라 보여드리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컴퓨터가 켜 진 김에 후다닥 올립니다.

이런 글이라 죄송합니다 사이님 ㅠㅠ

 

 

 

 

 

[신의 탑 - 자하드 X 쿤] 일몰

신의 탑/단편

 

 

 

 

 

 

 

 

 

“…….여긴..”

 

쿤은 이마를 짚어 약한 두통을 물리적으로 누그러뜨렸다. 실크 천정까지 딸린 침대는 넓고 포근해서 굳이 억지로 몸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지만. 얇은 커튼 뒤로 비치는 실내는 온통 붉은 벽지에 기하학적인 금빛 문양이 천정과 바닥의 경계를 휘감고 있었다. 문양 자체는 그리 대단치 않지만 강렬한 색채대비 덕분에 화려한 분위기. 이런 공간을 보는 것은 분명 처음이지만 10가주 중에서도 위세가 대단한 가문의 부유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기품이라는 그는 눈에 알아봤다. 침대와 침구는 물론이고 흐릿하게 보이는 집기까지 단편만으로도 꽤나 나가는 물건이라는 고고히 뽐내고 있는 풍경을 모로 누워 바라보며 쿤은 자신이 곳에 도착한 경위에 대해서 따져보았다. 분명 시작은 있을 S 공방전에 대한 사전 조사일 터였다. 함정이라는 빤히 보이는 이벤트였지만 그만큼 방해세력을 확실하게 알아낼 있는 방법도 없었기에 쿤은 직접 미끼를 물어 보기로 결정했다. 결과가 이리 되었으니 돌아가면 동료들의 잔소리를 듣는 정해진 사실이나 다름 없어졌다만 정도의 재력과 잠깐이라도 쿤의 의식을 빼앗은무엇 함께 가진 자라면 역시 위험하다. 게다가 쿤을 죽이거나 상처 입히지 않고 가만히 보면 간단히 제압할 자신도 있다고 봐야 한다. 탑의 꼭대기가 가깝기는 해도 아직 랭커가 되지 못한 선별인원이니 얼마든지 얕보일 수야 있겠지만 쿤과 함께 탑을 오르고 있는 동료, 비선별인원 스물다섯번째 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텐데

 

생각보다 담이 세군. 그게 아니면 에드안과의 결전 직후라 약해진 건가?”

 

“!!”

 

자하드 궁에 환영한다. 쿤의 새로운 가주, 아게로 아그니스.”

 

인기척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갑자기 떨어졌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거기에서 묻어나는 여유가 중압감이 되어 쿤을 짓눌렀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지만 지금 감지한 위험은 위험이라는 단어가 보잘 없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부피를 자랑하고 있었다. 공포심의 근원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만큼 분명했다. 자하드. 탑의 왕의 이름이 문제였다. 비선별인원이 탑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면 자하드가 그들을 탐탁치 않게 여길 이유는 많았지만 밤은 아직 탑의 정상에 적이 없는 애송이였다. 때문에 격이 맞지 않다고 여겼는지 자하드는 밤을 향한 살의를 감추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 나서지도 않았었다. 그랬는데 난데없이 이제와서 왕의 위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함정까지 가며 전면에 나타났다는 걸까? 고작 쿤을 붙잡기 위해? 차라리 곳이 자하드 궁이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쪽이 그럴싸한 상황이건만 예감은 비현실의 방향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당장 쿤이 에드안의 시험을 치뤘다는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기이했다. 에드안의 시험을 치르고도 살아 남았으니 쿤이 에드안의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로 돌릴 있게 것은 사실이었으나 에드안이 당시의 쿤에게 일렀듯 또한 탑의 지배자로서 섬김을 받던 . 에드안의 명예회복을 위해 쿤을 해치려는 자들을 뚫고 랭커가 되는 또한 다른 하나의 과제였다. 그렇기에 쿤이 직접 사실을 떠벌리고 다닌 적은 번도 없건만.

 

탑의 왕은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렇지. 하지만 인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손으로 친구의 아들을 죽이기는 껄끄러워서 말이야.”

 

당신이 자하드라고?”

 

광신도에 군대까지 거느린 탑의 왕이 선별인원의 싸움에 직접 끼어들었다는 황망하게까지 느껴져서 쿤은 전신을 짓누르던 위압감의 무게마저 잊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며 몸을 일으켰다. 그와의 거리가 예상보다 너무 가까워서 놀라기는 했지만 그런 표정을 여과없이 드러낼 정도로 이제 쿤은 경솔하지 않았다. 침대의 한쪽 끝에 걸터앉은 사내는 분명 자하드의 상징, 적색삼안으로 눈을 비롯한 얼굴의 반을 가린 자였다. 아버지인 에드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다부지고 커다란 신체에 사람들이 자하드에 대해 묘사할 빼놓지 않던, 빛으로 만든 찬란한 금발. 보이지 않아도 적색삼안의 안대 밑에 같은 색의 눈동자가 있으리라는 쉽게 예상할 있을 정도로 그는 자하드의 외양 정보와 많은 것이 일치하는 남자였다.

 

그래. 탑의 왕이자 너희를 지배하는 신이지.”

 

신께서 같은 선별인원한테는 무슨 볼 일이실까? 가주가 되면 임명식 같은 거라도 하는 거였어?”

 

원한다면 예식을 열어주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바라는 일이 아닐텐데.”

 

당신이 보디가드를 준다면 다시 생각해 볼만 하지.”

 

재미있군. 그건 친구를 배신하겠다는 말인가?”

 

경호원을 고용하는 거랑 배신이랑 무슨 상관이야. 신이라면서 말귀가 어둡네.”

 

인정하지. 말보다는 행동하는 좋아해.”

 

객관적으로 말해서 쿤이 아무리 쿤의 가주 자리를 차지했다한들 그는 아직 선별인원의 신분이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버지의 아성을 뛰어넘을 있을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했다. 하물며 아버지도 아니고 탑의 왕인 자하드를 이긴다는 더더욱 가능성이 낮은 일이었다. 물리력으로 에드안을 이길 가능성이 1% 된다면 자하드를 이길 가능성은 0.00001%? 그건 그대로 기적의 확률과 같았다. 아마 그보다야 높겠지만 앞의 남자가 정말 자하드라면 쿤이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 동료들에게 돌아갈 있을 가능성도 없이 0 가까운 수라는 자명했다. 그런 자가 쿤의 농담을 받아주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기적이라고 생각해야겠지.

 

왕이자 신인 나에게 경호를 맡길 생각을 하다니 과연 에드안의 아들답군. 하지만 고용하는 대가는 만만치 않을텐데.”

 

“......어차피 그럴 생각 없잖아 당신은. 하고 싶은 거야? 인연이 생각나서 아버지에게 가주 자리를 돌려주려고?”

 

쿤의 가주가 누구인지는 내게 중요치. 말했다시피 데려온 단지 손으로 죽이기는 곤란해서다.”

 

재미있는 소릴 하네.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죽는 거에 그렇게 연연하는 분이 아니야. 당신도 알고 있을텐데?”

 

물론 그는 핏줄에 연연하는 자는 아니지. 하지만 쿤의 가주라면 그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가질테니까.”

 

말을 받아주는 것만이 이니라 자하드는 쿤에 대한 태도도 단순히 포로 다루듯 하지는 않았다. 마치 입술의 아래가 것이 느껴질만큼 얇은 유리로 만들어진 와인잔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쿤의 뒤부터 뺨을 쓸어 내려온 손끝이 부드럽게 끝을 당겼다. 쿤의 시야에서는 안대에 가려진 자하드의 눈동자를 없었지만 자하드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새파란 시선을 눈에 담을 있었다.

 

공교롭게도 좋은 미끼이기도 하고.”

 

미끼라니. 누가 물어 준단 말이야? 아버지가? 밤이? 그건 당신 착각이지. 그렇게까지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보기엔 너야말로 스스로에 대해 모르는 같은데.”

 

자하드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입술이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몸이 밑으로 기우는 느낌에 쿤은 자기도 모르게 억눌린 신음을 뱉었다. 침대 위니까 부딪힌 등이 아프진 않았지만 붙잡힌 손목을 조이는 힘이 너무 강했다. 남자의 그림자가 덮혀 오는 유예됐던 끝이 다가오는 것인양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자하드! 쿤한테는 대지 않겠다고 했잖아!”

 

자왕난?!”

 

그건 네가 냈을 때의 약속이지.”

 

, ... ..!”

 

!!”

 

방해하지 마라. 네가 아끼는 친구가 고통스러워하는 원하지 않는다면.”

 

전에 헤어진 왕난이 자하드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었지만 숨통을 죄는 자하드의 때문에 어떤 말도 수가 없는 처지의 쿤은 숨이 부족한 이유로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걸음 물러나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자하드도 목을 조르던 손울 풀어주어 기침과 함께 숨이 트였지만 왕난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는 일렀다.

 

잠깐의 동료였던 녀석마저도 끔찍히 아끼는데 시험의 층에서부터 수십년을 함께한 동료라면 각별하겠지.”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자왕난!! 녀석이 너한테 시켰어? ?”

 

..”

 

설마 이수한테광고를 보낸 너야?”

 

, 그건….”

 

신기한 일이군. 에드안은 항상 핵심에 닿는 느렸는데.”

 

?!”

 

너는 어서 일을 하러 가거라.”

 

다시 멀어지는 소리가 들려올 왕난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쿤은 그제서야 왕난이 앞의 사내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미쳤다. 뒤는 추측하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단서가 주어지자 쿤의 뇌는 자동적으로 그가 알고 있는 퍼즐 조각들을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조잡하고 어리숙해 보였던 함정이 왕난과 그의 동료들이 벌인 짓이라면, 밤은 분명 공방전을 진행하는 중에 얘기치 못하게 동료를 적으로 마주하게 것이었다. 인정에 무른 성격을 생각해 봤을 밤이 왕난을 무력으로 꺾고 지나갈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은 아무리 자하드의 농간이 있다고 해도 끝의 끝까지 승부를 미룰 테니까 당장 누군가의 목숨이 위험해 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이번 공방전에 걸린 아이템을 왕난 쪽에서 쓸어가거나 버리면 이어서 닥칠 자하드와의 대결에서 밤이 불리해질 공산이 컸다. 이런 위기 상황에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하지만 닮은 구석도 없진 않군. 말해봐라. 너는 괴물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거냐. 너희 부자는 한결같이 나보다는 그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재수없는 소리 하고 있네. 누가 누굴 닮았다는 거야? 기대하고 있냐고? 기대 같은 . 밤은 그냥 친구야. 소원을 들어주는 같은 아니라.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그랬던 건가…”

 

아까부터 대체 뭐가…”

 

역시 돌려보내 주면 내가 곤란하겠어.”

 

다른 대답을 들었더라도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는 일이었지만 쿤이 아무리 억울해 한다고 해도 곳은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직까지는 절대자인 자하드를 막아설 있는 자가 있을 없었다. 지금의 쿤이 아버지인 에드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그의 편린일 테니 둘이 닮았다는 자하드의 표현에 학을 떼는 것이겠지만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둘은 닮았다. 부자지간을 잇는 유전자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아니다. 자하드와 함께 탑을 오르던 시절의 에드안은 잘난 척이 심하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특히 눈에 띄었지만 의외로 세심한 데다가 가끔씩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맹점을 후벼파는 통찰력이 있었다. 자하드의 무리에 사실 명의 리더가 있었다는 눈치챈 것도 에드안밖에 없었고 데이터 세계의 자하드에게 너는 왕이 아닌 모험가라고 본질을 일깨워 것도 에드안뿐이었다. 어쩌면 그가 모험가가 아닌 왕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동조해 것이 아닐까 싶다. 가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것도 이제 그와 동료들이 탑의 꼭대기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는 직감한 것이 아닐까? 방탕한 삶을 살며 많은 것을 누려 왔지만 에드안은 처음부터 삶에 무게를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자유롭게 바람처럼 사는 이라 항상 현실에서는 유리되어 있는 존재. 소싯적의 그와 아들을 보니 자하드의 심중에서도 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지금 느낌은 그가 신이 아니라는 증거 같은 것이었다.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할 수는 없었던,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랬던, 치부이자 약점이고 동시에 그를 완성시켜 주는 무엇.

 

지금부터 것이다.”

 

뭐라고..?”

 

녀석의 아들에게는 절대로 넘겨줄 없지.”

 

쿤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전부였던 사랑을 앗아 V, 이어 남은 찌꺼기마저 삼키러 작은 괴물에게 넘겨주기 싫은 찬란함이다. V 각별했던 에드안이 결국은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었듯이 지금 손에 들어온 보석도 자하드는 작은 괴물에게 넘겨줄 마음이 없었다. 푸른 눈동자의 앞이니 솔직해질 있다. 신이 아니기에 아무리 운명을 뒤틀어도 마지막이 오고야 것이라면 자신은 인간 답게 지배자로 군림하는 동안이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쟁취할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순간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지라도.

 

 

 

 

 

 

 

 

 

 

 

 이 글을 익명님께 바칩니다!

....라고해봤자 미완성같고 그렇죠... 네....

죄송합니다, 익명님 ㅠㅠ

하지만 너무 늦으면 기다리다가 지치실 것 같아서 얼른 들고 와 봤습니다.

자하아게 저도 쓸 수 있습니다! 하고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자하드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정말 어렵네요.

패기로웠던 과거의 저를 매우 혼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언젠가 다시 한번 시도해 보는 걸로 어떻게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