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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송이

신의 탑/봄 꽃

 

 

 

 

 

 

 

 

여긴 어쩐 일이냐, 귀치장?”

 

교양 수업이 아닌 이상에야 인문관 쪽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쿤이 캠퍼스를 횡단하다시피 하는 거리에 있는 체육관을 찾은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는지 견원지간이나 다름 없는 사이임에도 하츠는 꽤나 친절하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싫어하는 별명으로 부르는 무슨 친절이냐고 쿤은 반박할수도 있겠으나, 육두문자 섞이지 않은 문장이 완성되었다는 어디냐고 둘을 지켜봤던 모두는 대답할 것이다. 감춰 두었어도 탐스러운 여우귀가 쫑긋거리는 휜히 들여다 보이는 표정인 하츠에 , 가문의 등장에 소란이 일고 있는 체육관에 한숨을 쿤은 바로 목적인 서류봉투를 던지듯 하츠의 품에 안겨 주었다.

 

네가 전단을 놓고 가서잖아. 오늘 실기동에 뿌린다고 해놓고는. 하여간 임원이라는 녀석이 책임감 없이.”

 

“...그.... 오후에 거라 두고 갔던 거다. 멋대로 방해하는 거냐.”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지. 기껏 갖다 줬더니 말이야.”

 

다시 갖다 둬도 내가 점심 가져올 거다.”

 

뭐래. . 내가 돌리고 말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이건 일이.”

 

주변 사람들은 누구나 저런 일로 싸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으나 맡겨진 일에 대한 의무감이 투철한 하츠에게는 다른 어떤 말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그것이었기에 쿤은 하츠의 일을 자신이 처리 하겠노라 선언한 것이었고 효과는 굉장했다. 서류봉투의 사수를 위해 완전히 품에 안은 하츠는 연습용의 목도를 세워 방어태세를 취했다. 하츠의 목도는 날이 있는 진짜 검은 아니지만 그가 경호과이기에 소지할 있는 특혜품목인 만큼 둔기로서의 효용은 충분했다. 물론 수인들의 진짜 결투에서는 속성의 사용도 빈번하지만 당연히 캠퍼스에서 그런 류의 폭력이 허용될 리가 없었다.

 

항상 손이 먼저 나오시지.”

 

쿤은 하츠처럼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나갈 수는 없는 터라 싸울 자세를 잡는 대신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들이 밀었다. 모방에 불과하지만 경쾌함은 살아있는 셔터음이 찰칵하고 사람 사이에 울려퍼졌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는 하츠를 뒤로하고 아쉬운 기색 없이 쿤은 돌아섰다.

 

해봐라, 머슴. 경호과 학생이 허가 무기로 위협했다고 게시판에 신고하기 전에.”

 

.....? ! 귀치장!”

 

무기 소유를 허가받는 대신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은 법규의 특성상 당연한 논리다. 열혈 청년인 경호과 내에서는 시비가 걸렸기로서니 이런 해법을 제시하는 경우가 없어서 몰랐는데 제대로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혔으니 증언들이 하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더라도 며칠동안은 귀찮게 되어버렸다. 물론 쿤이라고 해서 당장에 경호과 학생에게 협박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하지는 않겠지만 골려먹혀진 하츠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뒤를 쫓던 하츠는 코너를 돌자마자 감쪽같이 사라진 모습에 혀를 찼다.

 

대체 무슨 잔재주를 부린 거냐, 녀석은...”

 

 

 

 

*

 

 

 

 

협탁을 손톱 끝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톡톡 일정한 박자를 때렸다. 에드안이 머리를 써야할 일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생각이 길게 이어질 때마다 나오는 버릇은 아들인 아게로에게까지 이어졌다. 에드안의 소싯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게로를 보게 되면 에드안과 판박이라는 평가를 붙이곤 했으니 당연한 것일까? 아게로가 아무리 아버지를 자신의 인생에서 밀어내려 애써도 유전자에 새겨진 그의 근원이 결국 에드안에게 닿아있다는 아버지된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다. 생모인 아그니스가 그렇게나 탐내던 능력 사람이 잉태하고 있던 것일까?

 

“.....마리아의 보고가 석연치 않으십니까?”

 

애에게 기대를 적이 없으니 석연치 않을 것도 없지.”

 

에드안은 실로 자녀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의 자식이라기 보다는 보좌에 가까운 역할을 맡고 있는 마스체니와 아센시오를 비롯하여 전원은 에드안에게 특별한 무엇이 아니었다. 그렇게에 장기말처럼 부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를 거쳐간 수많은 여인들도 그러했다. 그나마 잠자리 말고 다른 흥미를 끌어내기라도 했던 먼저 이혼을 제안했던 아그니스였다. 결과적으로 합은 에드안의 승리로 기록되긴 했으나 에드안은 그녀가 자신과 눈을 마주 할만한 호적수라는 점은 인정했다. 여하튼 그녀는 에드안보다 앞서 아게로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에드안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보석을 존재조차 모르는 채로 도둑맞을 했으니 다른 여인들과 같은 취급은 할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천리안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실로 그런 이능은 가진 아니니 여태 안에 있었던 건데... 미세한 균열을 너희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작당한 아니라면 아게로가 뭔갈 찾아다는 뜻이겠지.”

 

제가 직접 보겠습니다.”

 

됐다. 아비의 흥을 깨지 말거라.”

 

판을 읽고 흐름을 바꾸는 능력이 출중한 아게로가 여태 에드안의 수중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는 에드안이 가진 권력과 힘에서 기인한다. 에드안의 인맥이 아게로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내는 이만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실제로 그의 형제들과 친구들은 전부 에드안과 연결되어있다. 가족관계나 집안 간의 친분 같은 것들로 말이다. 헌데 간간히 끝없는 감시에도 불구하고 비는 부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틈이라는 것은 없는 것과 조금이라도 있는 간의 상황 차이가 현저하다. 그건 아게로가 여전히 에드안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황이기는 해도 자신을 굴러싼 굴레를 아주 조금씩 벗겨내는 일을 멈춘 적은 없었다는 의미다. 가슴이 뛰었다. 에드안에게는 낯선 감각이었다. 당장 엊그제만 해도 무기력한 몸을 떨며 독을 받아 마시더니, 뒤로는 맹랑히 에드안을 덮칠 파도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과연 에드안을 물어죽일 독사 답지 않느냐.”

 

 

 

 

*

 

 

 

 

인문관 쪽으로 모퉁이를 돌아서자 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괴한이 쿤의 옆을 덮쳤다. 담벼락의 그림자가 몸을 일으키기라도 새까만 사내였지만 그의 품에 안긴 꼴이 되는 순간 일그러지는 주변의 풍경에 쿤은 오히려 표정을 밝혔다. 그가 익히 아는 자였다. 마음놓고 기댈 있는 쿤의 안식이자 .

 

비올레!”

 

갑자기 찾아오셔서 깜짝 놀랐어요. 감시가 심해졌다고 하셨으면서 이렇게 눈에 띄는 행동을 하셔도 되는 건가요?”

 

그럴 오히려 방심하는 법인데 모르는 소릴 하시네.”

 

쿤씨를 믿긴 하지만 역시 걱정되는 걸요. 게다가 요즘엔 에드안님께서도 매일...”

 

예상했던 일인데 . 너야말로 조심해. 능력에 대해서 들키면 FUG 가만 두지 않을 .”

 

상처를 싸맸던 붕대를 풀듯이 검게 점철되었던 공간이 풀려나자 사람은 조그마한 한칸에 서로를 끌어안은 내려앉았다. 반지하의 단칸방이지만 실내만큼은 제법 아늑하게 꾸며져 있는 비올레의 자취방은 이제 쿤에게도 아주 익숙한 공간이었으므로 가릴 없이 쿤은 비올레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들어 짧게 입을 맞췄다. 간단하지만 달콤한 연인 간의 안부 인사였다. 인사에 응해 쿤의 허리를 끌어안은 비올레는 지척에서 보니 황홀한 쿤의 혼인색을 이제야 마음껏 누릴 있었다. 오랜만의 밀회라고 쿤도 나름은 신경을 썼는지 화사한 색감의 셔츠에 파스텔톤의 니트 베스트가 그림같이 어울렸다. 타고난 피부도 눈부시게 희어서 산뜻한 색상들이 살아나는 기분이랄까. 비올레에게 쿤은 색채만큼이나 찬란한 빛이었다. 아직까지는 사람의 사정상 공개연애를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을 독차지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사하게 만큼. 경계가 풀린 미소를 비올레의 품에 묻는 쿤을 내려다보는 비올레의 담황빛 눈동자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럼 너는? 세상에 동명이인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따지고 있어?

 

FUG 후계자, 스물다섯번째 밤이자 비올레 그레이스라는 소년의 경호를 위해 조직이 가려뽑은, 생김새가 동년배의 소년. 그렇기에 비올레는 이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FUG 사람들은 그들이 정한 순번에 따라 22번이라고만 불렀고, 별도의 이름을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별개의 인생을 살도록 허락받은 존재가 아니었다. 밤을 대신해 죽어줄 소모품일뿐. 살아갈 이유도 목표도 없었던 그에게 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발로 있게 주었다. 이를 테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게 주었다고 할까?

 

공강이라 찾아오셨겠지만.. 하츠씨가 많이 찾으실텐데요. 괜찮겠어요?”

 

둘러대는 거야 전공이지. 너무 걱정하지 .”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아무리 정리가 되어있다고 해도 비좁은 단칸방에 의지를 개나 두는 것은 힘들다보니 쿤은 제알아서 비올레의 침대를 차지했다. 사람의 연애가 온전히 이루어질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그간 번의 방문에 이은 학습 결과다. 마음이란 그리 쉽게 타인의 말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건만 쉽게도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남의 침대를 파고드는 연인을 비올레는 어쩔 없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침대에 걸터 앉았다.

 

쿤씨 일인 걸요. 내내 피곤해 하시는 같던데 주무시겠어요?”

 

아니.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래버리면 너무 아깝지.”

 

자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머리칼을 쓸어주는 비올레의 손에 몸을 맡긴 쿤의 목소리는 제법 나른했다. 조금 흐트러졌을 망정 화사함은 그대로라 비올레의 손길을 허락하는 무방비함이 약간의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했다. 사실 쿤과 비올레의 관계는 매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것은 쿤보다는 비올레의 상황에서 기인하는 면이 컸다. 쿤의 친부모가 그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쓰고 있다는 맞지만 그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보호받고 있는 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비올레는 다르다. FUG 그를 거둔 그가 FUG 후계자와 비슷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다. 심지어 이유를 만들어낸 필요가 밤을 대신한 죽음인만큼 FUG 쓸모 하나로 그를 거두어 가능성은 전무했다. 물론 쿤이 그에게 일러 주었듯이 그가 다루는공간원소 워낙에 희소한 속성이라 가치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치라는 비올레가 FUG 명령에 고분고분 따른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되는 이야기. 못할 것은 없다. 쿤을 만나기 전까지 비올레는 FUG 그늘에서 살아왔고 쿤과 함께가 아닐 때면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년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쿤을 만나기까지 FUG 은이 아예 없다고는 없으니 상황이 허락한다면 비올레는 기꺼이 FUG 정보원으로서의 삶도 받아들일 있었다. 하지만 다음 후계자라는 밤이, 그가 마음을 사람을 자신의 그림자 따위에게 빼앗기도고 오로지 가치만으로 비올레를 판단해 것인가?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밤과 비올레는 늑대 수인이다. 늑대 수인의각인 그들이 평생 바라볼 사람을 운명처럼 결정지어 버리기 때문에 밤이 쿤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지만요.’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과정에 밤이나 비올레가 쿤을 다치게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비올레는 아직 자신의 욕망을 눌러담기 위해 노력했다. 쿤은 자신이 둘러대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노라고 자부했지만 비올레의 욕심을 터뜨리면 그만큼 쿤이 신경을 써야할 테니까. 그건 위험부담을 쿤에게만 부과하는 일이다. 비올레는 연인에게 그런 비겁한 짓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니 쿤이 일러준 대로 밑에서 힘을 길러 FUG로부터 온전히 독립할 것이다. 그렇게 쿤의 보금자리가 되고 그를 품에 안을 터였다.

 

비올레.”

 

말씀하세요.”

 

심각한 표정인데 말은 듣고 있었나보네.”

 

당연하죠. 늑대 수인에게 반려란 그런 존재인걸요.”

 

.. 그럼 수인한테 반려는 어떤 존재일까?”

 

“..문제..인가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건만 그게 즐거운지 비올레의 침대에 누워 그를 올려다보는 그대로 새파란 눈동자가 가늘게 휘며 마음을 간지럽히는 미소를 흩뿌렸다. 바람결에 떨어진 꽃잎이 수면 위를 물들이듯 미소가 눈동자를 꽃잎색으로 물둘였다. 정말이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색채의 조합에 비올레의 머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뭐야.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줘야지.”

 

무리한 요구를 하며 쿤은 비올레의 손에 뺨을 기댔다. 자신과 다른 체온을 음미하듯 눈을 감은 쿤이 꿈결에 웅얼거리듯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농담을 던졌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눈에 보여서, 도도한 성격의 그가 부리는 앙탈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혹자가 봤으면 분명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고들 하겠지.

 

주무신다면서요. 졸지 말고 답을 알려 주세요.”

 

싫어.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말해.”

 

노력은 항상 하고 있는데요.”

 

. 감은 눈꺼풀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비올레는 소중한 연인을신의 품에 가뒀다. 그건 분명 치의 거짓도 없는, 완연한 진실이었다. 그를 위해서 비올레가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 가끔은 쿤이 사실을 아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올레는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애교라고 하긴 한참 모자라지만 나름의 노력만큼은 엿보였던 만큼 마음이 풀어진 쿤은 여전히 매혹적인 혼인색을 뽐내는 눈을 들며 가까워진 비올레의 목에 팔을 둘렀다.

 

나에게 너는 봄이야.”

 

뱀은 죽음과도 같았던 겨울잠의 끝에서, 낡은 허물을 벗고 혼인색으로 단장한 다음, 자신의 짝을 맞는다. 그들은 늑대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언제나 가장 새로운 것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계절의 시작을 반려와 함께 맞는 것이다. 그렇기에 해의 모든 최초는 오로지 자신의 연인을 위한 . 그렇기에 자신의 몸에 꽃잎의 색채가 만개하는 순간 쿤은 비올레의 입맞춤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계절의 주인이 제대로 찾아와 주었으니 거리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드디어 완결입니다.

사실 이렇게 이 글을 오래 잡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영 마음대로 안 써져서 ㅠㅠ

마무리가 허술한게 느껴지지만 당장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올레쿤은 봄 꽃의 소재를 제공하신 홍련님의 리퀘였는데,

늦기도 너무 늦었을 뿐더러 내용도 부족해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퇴고 못했고 해서 시간이 나면 손을 좀 볼 수는 있겠지만 봄 꽃은일단 여기서 끝입니다.

그간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글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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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송이

신의 탑/봄 꽃

 

 

 

 

 

 

 

 

 

 

 

 

주말까지 나오고 너무 무리하는 아니야? 몸도 좋다면서.”

 

녀석들의 어딜 믿고 쉬겠냐. 네가 고생이 많겠다. 공대는 과제도 많다던데.”

 

.. 과제가 많다기 보단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 아닐까. 하도 밤을 샜더니 이제 새벽이 아니면 생각도 . 그러니까 새벽까지는 도와줘도 문제 없을 ?”

 

낮에 일하고 새벽에 과제하면 잠은? 가끔 이수의 밑이 숯을 칠한 것처럼 시커멓게 변하는 이유를 같아진 쿤은 속으로만 경의를 표했다. 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이기에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스펙도 높아진 경향이 있으므로, 재수를 했다고 한들 입학에 성공한 자들은 집안이 어떤지를 떠나서 사회의 클래스에 있는 재목임을 인정받은 셈이 된다. 거기까지 노력하고 헤이해지거나 벽을 느끼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무너지지 않는걸 보면 이수는 역시 대단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 없었다. 그가 동아리의 장을 맡게 것도 이수의 성실함을 인정하는 이가 말고도 여럿 있다는 반증이었다. 공부하는 것만 해도 녹록치 않은 공대생이면서 주말을 동아리에 투자하다니. 타고난 노력가에 책임감도 훌륭하니 그가 졸업할 즈음에 자리 챙겨 주려는 선배들이 분명 즐비할 거다. 사람 보는 있어 매정한 구석이 있는 쿤조차도 인정하는 십이수가 아닌가?

 

원숭이 수인이 강철 체력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늑대라면 모를까.”

 

하하, 내가 특출난 거지. 원숭이도 한다고? …..저기, 그런데 .”

 

.”

 

이런 해도 되는 거야? 네가 뭔가 곤란한 입장이 아닌가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졸린데 자는 같아서 말이야.”

 

놀란 표정이 드러났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보면 표정을 바꿀 여유조차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수는 흔들림 없이 저를 향한 시선에 아니라면 괜한 걱정을 거라고 얼버무렸지만 막상 당사자인 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이수에게 지적받고 동요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다는 틈을 보인다는 것이고, 그러고 나면 찔린다. 여태 쿤이 살아온 생태계는 그러했으니.

 

각성이 끝난 거야?”

 

몰라. 말대로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고.”

 

?"

 

너까지 신경쓸 일은 아니야. 집안 일이고 문제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전시회에는 피해가 없도록 말이야. 그렇게 마무리하며 흘러나온 머리카락을 정돈해 다시 묶은 쿤은 다시 전시회장으로 선정된 학생회관 메인 로비의 도면으로 눈을 돌렸다. 가벽을 설치해 동선을 짜고 사진을 전시할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했는데, 쿤은 대체로 이런 일에 적격이라고 여겨지곤 했다. 분명 공대생, 중에서도 건축과에 재학 중인 호량이 있었지만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계산은 쿤이 같다는 의견이 항상 존재했다. 보통은 보란 듯이 해내니까 그들의 사람 보는 눈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강박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를 따져보자면, 적어도 이수의 결론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무리봐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 더러는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왕난과 함께 것이 소문의 아게로 아그니스라는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소문과 너무 다른 인맥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화려한 외모는 소문과 같아서 머지 않아 이수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왕난을 따라 왔을 그다지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을 같았던 쿤은 역시나 다른 동아원들처럼 작품 활동에 열성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동아리의 각종 활동에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오히려 성실한 활동을 기대했던 왕난이 결석이 잦으니 언밸런스도 이런 언밸런스가 있을 없었다. 높으신 분들의 자녀교육 철학도 각양각색이라 왕난이나 밤처럼 엄격한 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이화나 라크의 경우처럼 자유분방한 방침을 가진 쪽도 있다는 이제 서민 출신인 이수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쿤의 경우는 독특해서 눈이 많이 가다보니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순간을 기억하게 건지도. 아무튼 이수의 생각에 가문은 특이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기행도 눈에 띄는 존재감으로 순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난봉꾼으로 유명한 에드안이 유일하게 관심을 두는 자식이 쿤이라던데, 그런 치고는 자유롭게 놓아둔다 싶다가도 아버지의 이름만 들어도 질색하는 쿤을 보면 뭔가 있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에드안이 쿤을 편애하고 있다면 다른 형제자매의 입장에서는 질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들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형제들이 쿤을 방패막이 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수의 합리적인 의심인 것이다. 그리고 의심은 자연스럽게 에드안이 쿤을 편애하는 이유로 이어졌다. 여전히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두운 구석이 하나도 없을 같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쿤은 설명을 얼버무리는 없이 아버지의 편애로 인한 불만을 라크나 왕난에게 털어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러는 모습을 쉽게 있지 않았을까?

 

확실히 가족사에 있어서 도움은 되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뭔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줘.”

 

뭐야 갑자기. 낯간지럽게.”

 

하필 지금 거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

 

알다시피 다른 애들처럼 대단한 집안 출신이 아니지만 그래서 도움 되는 구석도 있지 않겠어?”

 

일류 대학이라는 별세계에서 만난 귀한 집안 출신의 아가씨, 도련님들은 밖에서 때에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니 각자의 조각으로 표류하는 존재들 같다는 2학년에 접어든 이수의 총평이었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저마다 고민 하나씩은 안고 있게 마련이고 더러는 엄청난 배경 때문에 고민의 크기도 엄청나다는 알게 되었다고 해야하려나?

 

너도 정말 당하겠다.”

 

얼굴이 이수를 향해 있진 않았지만 눈을 감은 채로의 어쩔 없다 느낌의 가벼운 미소는 이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처음 보는 표정이라서 그랬나보다. 표정만큼이나 얕게 일기 시작한 파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감으로 가득 있어서 재수 없는 도련님이 무장해제를 하면 저런 표정도 나오는 구나 싶었다. 혼인색이 무르익어 가는 시점이라 빛이나 각도, 하나만 변해도 요사스럽게 아롱지는 색채가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지.

 

방금 , 후회하지 .”

 

물리기 없으니까. 이윽고 눈동자가 다시 열리는 순간, 이수는 셔터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눌러 참은 건방진 도련님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거라는 알아서. 그리고 지금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오래 눈에 담고 싶어서.

 

 

 

 

*

 

 

 

 

우와, 쟤가 A.A.? 동아리에도 나오고 그래?”

 

거의 개근상 감이지. 요새는 자는 밖에 안하지만.”

 

가문에서 일반인이랑 접촉 못하게 하고 그럴 알았는데. 저런 애는 진짜 같은 사람 맞냐완전 인형 같네?”

 

입만 다물고 있으면 말야. 말은 속으로 삼킨 이수였지만 최근엔 동방에 기껏 들러서 한다는 일이 전시전 준비랑 수면보충밖에 없으니까 크게 틀린 아닐지도? 작년부터 이수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쿤에 대한 통념은 동기들이 방금 입에서 뱉은 말들인 당연했다. 이수 또한 당장 오늘 지금까지의 쿤의 외모 랭킹을 뒤집을만한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고 말이다. 대외적으로 가문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범접하기 힘든 곳이기는 하지만 학교에 쟁쟁한 집안이 많은게 아니다보니 왕난과 같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캠퍼스 내에서까지 유난을 떠는 경우는 거의 없다. 쿤도 마찬가지라서 눈에 띄는 외모만 아니라면 친구들과의 생활은 거기서 거기다. 방금도 결국은 하츠와 이화와 마지막으로 하츠와 이화의 연합군과 싸우고 완전히 퓨즈가 나가버린 이수가 겨우 중재하고 달래서 저녁을 먹고 헤어진 길이니. 그래도 이제 전시회장의 배치에 대해서는 가닥이 잡혀서 모두가 힘을 모으면 남은 일정은 금방이다. 다들 방향이 결정된 이후의 단합심은 대단해서 거기까지 가는 동안 임원 따위 때려칠까 싶던 이수도 이후의 모습을 보면 역시 좋은 녀석들이라며 마음을 고쳐먹길 수십 번이니 말이다. 말인즉슨 도도하기 짝이 없는 가문의 도련님도좋은 녀석들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방금 , 후회하지 .

 

역시 무슨 일이 있는 같단 말이야?’

 

쿤의 곁에는 이수 말고도 좋은 집안의 친구들이 많다. 당장 TOG 구성원들만 봐도 집안 좋고 실력 좋고 외모도 되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니 만약 그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다면 이수에게 도움을 청하느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가능성이 높았다. 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가족이라면 아무래도 집안이 든든한 쪽이 안전할 테니까. 쿤에게나 도움을 주기로 결정한 쪽에게나 말이다. 이전에 개인적인 문제라고 아무 말도 주지 않을 거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이수로서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요인이기도 했고.

 

녀석은 항상 도와주는데 나는 도움을 수가 없네. 못났다, 십이수.’

 

동아리 일만 해도 중간에 한번씩 이수가 중재할만한 싸움판을 벌여서 그렇지 쿤이 없다면 정리 자체가 되지 못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을 거다. 어찌보면 이수가 리더로 중심만 잡아도 되게끔 쿤이 악역을 자처하는 면이 크다. 가문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가진 능력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안다는 것만 해도 그는 충분히 좋은 사람인데 본인만 그걸 모른다. 개인사에 대해 말하는 워낙 꺼려하니 다들 눈치만 보고 있는 격이지만 도와달라는 마디면 쿤에게 손을 내밀어 사람은 수두룩해서 그들로 캠퍼스를 포장하고도 남을 건데.

 

으아악, 힘내자, 십이수! 자수성가해서 올라가야지!!”

 

동기들과 과제도서관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에 힘이 실렸다. 후회하지 말라고?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보다 사람이 되어서 언젠가를 기약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것이었다. 첫걸음이 바로 이번 조별 과제 부터다. 비장한 이수의 표정을 보아하니 오늘 밤도 침대의 포근함과는 안녕이다.

 

 

 

 

*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A.A.”

 

네가 일찍 아니고? 저녁은 먹었어?”

 

당연하지. 어서 들어가 봐라.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

 

아오, 또야? 저녁 먹을 사람 쯤은 널리고 널렸는데.”

 

잠자코 들어가. 엊그제 처럼 내시면 곤란하잖아.”

 

자식들 중에서 에드안이 겸상을 허락하는 아게로가 거의 유일하다. 다른 자식들은 공무가 아니고서야 얻기 어려운 자리였지만 그게 부럽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에드안은 분명 아게로에게만 많은 것을 허락했다. 연예인이 되지 않겠다고 것도 용납했고, 대신 매니지먼트 사의 회계를 보라며 회계학과로 진학을 권했을 때도 돈을 만지겠다며 경제학과로 진학한 아게로를 말리지 않았다. 얼핏 자유분방하게 지내는 같아 보이지만 에드안이 준비한 틀은 그것만이 아니기에 아게로는 여즉 에드안의 수집품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온갖 특별대우를 받는 에드안의 아들이라는 점은 감시의 눈을 늘렸고, 아게로의 하소연을 대외적으로는 분에 넘치는 소리로 만들었다. 형제자매들의 관심이나 친구들의 호의도 에드안의 다른 눈이라는 눈치빠른 아게로는 진즉에 알아차렸겠지만 조차도 당장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일 터다. 아그니스와 에드안이 그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읽었든지 간에 아직은 그저가능성 . 것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오늘도 괴롭히진 않으시겠지?”

 

어제까지 앓아 누웠던 앤데 설마 그러시겠어. 그나저나 자하드든 FUG 빨리 데리고 날아 버리지 여태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얼씨구. 언제는 자기가 10 유튜버 돼서 지켜 준다더니.”

 

“10만이 생각보다 어려운 어떻게 하라고.”

 

이대로면 아게로 오라버니가 가문을 물려받지 않으실까요? 세월에는 장사 없으니.”

 

전에 A.A. 미치거나 사고 치지 싶은데.”

 

그래도 저택 안인데 하는 말이 없구나.”

 

마스체니 누님!!”

 

저택의 1인자가 에드안이라면 2인자는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도맡고 있는 마스체니인 것이 당연했다. 자하드 가의 아들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몸이라 독립이 머지 않았으나 아직까지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을 형제자매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 가문의 이면을 이끌어온 그녀를 알고 있다면 그녀와 피를 나눈 형제라는 것에 평생 감사하며 사는 것이 더욱 합당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옥체에는 별고 없으십니까? 타겟은…”

 

아버지께서는 A.A.?”

 

.”

 

잘됐군. 나중에 찾으시면 먼저 자러 갔다고 전해드려라.”

 

완벽주의자인 그녀지만 살림과 바깥 살림을 동시에 돌보는 피곤한 일이 아닐 없기에 보고라도 미뤄지는 이런 날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게로가 끝내 에드안의 손을 벗어나게 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독립할 때까지는 이복동생이 버텨주길 바랄뿐이다. 그녀의 소소한 일탈은 에드안이 그를 손에 쥐고 있을 때에만 허락되는 것이었으니. 대외적인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기에 대중은 물론이고 상류층의 대부분조차 가문이 요인 암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모른다. 수인들이 수인을 그리 두려워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면 당연한 일이건만 에드안은 천사 같은 외모로 세계의 눈을 속이는 성공했다. 에드안에게 맡겨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아우라와 그의 이면이 내뿜는 공포감에 질려 그의 자식이자 부하로 살아가는 길을 택하기 마련이었다. 마스체니 조차도 그러했는데, 선택의 기로에 처음 섰던 그녀보다 반절 밖에 되지 않는 꼬마 아이가 이미 진실을 꿰뚫어보고 데뷔에 필요한 프로필 사진을 찍겠다고 했을 때를 떠올리면 수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어찌보면 에드안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대가를 아게로는 이만한 시간을 들여루고 있는 중이지만 마스체니 조차도 아게로는 특별한 아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그런 부분에서 기인했다. 그녀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면전에서 다른 길을 걷겠다고 이야기할 자신은 솔직히 없으니까.

 

쉬십시오, 누님!”

 

적당히 해라, 아센시오. 누가 보면 마피아나 갱단인 알겠어.”

 

알겠습니다! 누님!!”

 

“…….”

 

답답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내가 그녀의 뒤를 잇는 가문의 3인자라면 누가 믿을까? 자신의 격이 떨어지는 기분에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실력을 생각하면 참아줄만한 정도라 소리 없이 그녀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오랜만입니다!

뭔가 써야 겠으나 졸려서...

이제 한 편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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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송이

신의 탑/봄 꽃

 

 

 

 

 

 

 

 

 

 

 

 

가문의 저택을 누구든 쉽게 찾을 있는 단연코 압도적인 위용 덕이었다. 에드안에게 딸린 식구가 몇인가를 생각한다면 그만한 호화 저택이 아니고서야 그의 아이들을 전부 거둘 없다는 것은 누구든 예상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에드안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는 그의 핏줄을 거두기는 했지만 아이들을 길러내는 전부 고용인들의 몫이었다. 왠만해서는 자식들에게 눈길을 주는 일조차 없지만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대중만이 아니라 고용인들에게도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휘두르는 그는 아버지라기 보다는 일종의 지배자였다. 그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그의 인정을 받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에드안과 각자의 어머니로부터 뛰어난 외모를 물러받은 아이들이었지만 특히 연예계에서 에드안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그만큼이나 독보적인 존재였다. 여전히 모든 토크 쇼에서는 그를 게스트로 맞이하고 싶어했고, 가십을 넘어 정시 뉴스에서도 그의 행보를 대서특필하는 일이 잦았다. 애정을 주지 않는 아버지라도 그가 자식들에게 존경받는 이유 또한 그가 구축한 절대적 아성에 있을런지도 몰랐다.

 

보고 드렸던 대로 아게로님께 문제가 있는 아닙니다. 지금은 열도 많이 떨어졌고요. 예민 성격이시니 급격한 스트레스에 일시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지신 걸겁니다. 각성에 흔히 동반되는 증상이죠.”

 

급격한 스트레스라….”

 

주치의의 보고를 들으며 에드안은 암레스트의 끝을 손톱으로 가벼이 톡톡 때렸다. 오랫동안 드안을 모셔온 주치의에게는 반응을 끌어내기 힘들 소리였으나 주변에 도열한 그의 비서를 비롯해 에드안에게 인정 받았다 여겨지는 몇몇 자식들과 경호인력에게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리였다. 그가 네임을 외우고 있는 안되는 자식들 하나임이 분명한 아게로는 가문의 예외 중에서도 예외였다. 에드안의 친자로 확인된 17명의 사내아이 15번째 아들로 가문에서 유일하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기를 거부한 아이. 물론 아게로는 밖에도 에드안의 명령 어기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반항적이었지만 에드안은 그의 눈에 들고 싶어하는 모든 아이들을 제치고 그에게만 눈길을 주었다. 아게로가 연예인이 아니다보니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이긴 했으나 가문에 속하는 이들이 그를 모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형제들이 그에 대해 질투를 표하지 않는 그들과 아게로가 다를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누구보다 알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알겠네. 당분간은 각별히 신경 주게.”

 

가문의 주치의를 돌려보낸 에드안은 그대로 턱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싶었다. 같은 성격에 난봉꾼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세간 사람들은 그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다혈질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 그런 행동은 에드안이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목적의식이 분명할 때의 그는 누구보다 영민했다.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생각을 모두 읽히는 느낌이 정도라서 두렵고 두려웠다. 수행원들이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긴장감에 억눌려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윽고 결론에 도달한 에드안은 ,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래그래. 갑자기 어울리게 동아리 따위를 시작했나 했었지. 아무래도 마리아만으로 감시하기는 역부족인 같구나.”

 

면목 없습니다, 아버님.”

 

키세아까지 붙이도록 해라. 마리아에 대해서는 네가 따로 충고를 주도록 하고.”

 

. 알겠습니다.”

 

아게로는?”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부러 조금 독한 약을 썼기에…”

 

잘했다. 그럼 오랜만에 제대로 대화를 나눠볼 있겠구나. 너희들은 이만 보거라. 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

 

 

무슨 일을 하든 1류가 되려면 인정하기 싫어도 그래야할 해야 한다. 한성은 이만 인정해야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교수자로서 한성의 역량이 얼마나 대단하든지 간에 먹여주는 학생이 받아먹어 줘야 교육이라는 성사된다는 것임을.

 

학교에서와 여기에서 수업 태도 차이가 확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학교에서도 딱히 좋아서 아니었는데요. 쿤씨보다 모르면 같아서 열심히 하긴 지만요.”

 

쿤씨? 아게로 아그니스?”

 

? 아그니스의 아들이 같은 학교던가?”

 

돌아오셨군요, 에반켈님! 그런데 아그니스가 아그니스…..”

 

아이들이 에드안의 성만 따라가는 기분 나쁘다더군. 그녀라면 생각해 봄직한 일이지.”

 

FUG 지상과 지하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정보조직. 그리고 명성은 우수한 정보원들에 해서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FUG 정보원들은 그야말로 세상 어디에나 존재했다. 세상의 꼭대기와 밑바닥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종교만큼이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정보원들을 FUG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정보원 개개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했다. 단신으로 FUG 입성해 간부의 위치까지 올라간 에반켈은 많은 정보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들의 교과서 같은 자였다. 한번 마주친 것만으로도 어떤 정보든 불게 만들 같은 위압감, 그에 걸맞는 휜칠하고 다부진 신체, 혼자서도 1 군단과 맞먹는 힘을 가졌다는 속성의 최강자이자 분쟁지역과 관계된 정보를 총괄하고 있는전쟁의 여신’. 공로를 인정받아 FUG 후계자인 스물다섯번째 , 아니 비올레 그레이스의 무술 스승까지 맡게된 그녀였지만 아직까지 그녀가 내지 못한 유일한 임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후계자의 신임을 얻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여전히 작구나, 한성아.”

 

제가 작은 아니라 에반켈님의 키가 거죠.”

 

나와 침대까지 가려면 분발해야겠는걸?”

 

방금 말씀은 성희롱입니다?”

 

현장에서의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아직 적이 없는 밤이지만 부하 직원에게 추근대는 그녀는 없이 목격한 밤이 어떻게 그녀의 능력을 신임할 있을까? 그래도 오늘에서야 처음 밤의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가 입에서 나왔으니 조금쯤 진전을 기대할 있을지도?

 

쿤씨의 어머니를 아세요?”

 

, 엄청 친한 아니고. 고객 명이라서.”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요.”

 

고객 정보지만 상사니까 괜찮은 건가…… 세계에서 다섯 손에 꼽히는 자산가로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 야심가라고도 있지.”

 

에드안이 분의 아들한테 꽤나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같던데요. 희대의 난봉꾼한테도 마음 가는 구석이 있었나봐요?”

 

얘기는 길게 하자면 굉장히 스펙터클한데. 듣는 대가가 필요할 정도로. 네가 이만큼 벗어준다던가 내일 시간을 준다던가…”

 

듣는 비올레님인데 대가는 제가 치러야 하는 거죠?!”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니. 아직도 조직의 생태를 모르다니 답지 않구나, 한성아.”

 

달려들 기세인 한성의 이마를 짚어 가벼이 저지하며 에반켈은 밤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애초에 한성에게 좋은 감정이 별로 없는 밤이 그의 정절(?) 따위를 아까워 이유는 없으니 거래는 성사 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동물의 털이 오소소 곤두서는 한성을 쿤이 봤다면 학점이 반토막 나도 좋을 구경을 했다고 여겼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

 

 

아게로.”

 

어째서 수인들은 다른 되면서 허물 벗어놓듯 자신의 껍데기는 벗어놓고 유유히 사라질 수는 없을까. 모든 전자기기를 압수당한 쿤은 왕난과 레포트는 물론이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당장 앞에 있는 에드안 밖에 없지만 아버지의 사람들이 주변에 깔려있다는 이미 짐작하고도 남았다. 컨디션이 워낙에 좋지 않았던 탓이지만 틈을 이상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억지로 에드안과 마주 앉게 쿤은 식사 대신 신경질적으로 접시에 담긴 모든 것을 잘게 썰어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늘따라 일을 일찍 마쳤다는 것도, 눈을 뜨고 보니 방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던 것도.

 

몸도 좋지 않다면서 먹어야지. 오늘도 자하드 가의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어쩔뻔 했니.”

 

“………”

 

아니면 3 처럼 아버지가 쉬게 줄까?”

 

“…… 정도로 나쁘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부드럽게 위를 향하는 입꼬리와 함께 에드안의 세로로 동공이 가늘어졌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아게로는 에드안의 표정을 그려낼 있었다. 그는 위협을 가할 짐짓 친절한 척을 하곤 한다. 바늘로 빼곡이 채워진 듯한 공기가 이렇게 전신을 위협해 오는데, 말투만은 전에 없이 나긋했다. 그가 언급한 3 전에도 그랬다. 에드안이 이사장으로 있는 병원에 쿤은 꼬박 한달을 갇혀 있었다. 에드안의 처리는 완벽했다. 학교에는 진단서를 보냈고, 병원에 있는 동안 아게로의 상태가 나빴던 것도 사실이었다. 의료진은 성심성의껏 아게로를 돌보았고 에드안도 바쁜 스케쥴을 쪼개어 정기적으로 문병을 주었다. 그리고 일로 쿤은 아버지의 힘에 대해서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으면 무엇하나 마음대로 없다는 알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몸은 솔직하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더구나. 누이가 유학을 갔다기에 마음을 놓고 있었더니 그니스가 다른 사람을 보낸 모양이지?”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들 어머니 쪽으로 마음은 없어요.”

 

그럴테지. 아버지도 알고 있단다.”

 

그런데 ..”

 

아게로.”

 

분명 사람은 테이블의 양단에 앉아 있었는데 피부에 닿지 않게 쏟아져 있던 앞머리를 려내는 새하얀 끝에 아게로는 몸을 굳혔다. 엷은 푸른색에서 꽃물 같은 분홍빛으로, 이윽고는 다시 물빛으로. 에드안을 손끝을 타고 흐르는 빛깔은 참으로 황홀한 것이었으나 아게로에게는 그에 감탄할 여유 같은 주어지지 않았다. 식기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자신에게만은 각별한 아버지를 밀어낼 밖에 없게 만드는

 

“!!”

 

확실히 무르익겠구나. 하지만 혼인색이 드러났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당장 성인으로 인정받을 있는 아니지.”

 

두꺼운 융단이 깔려있는 바닥은 은식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모조리 잡아냈다. 대신 높은 등받이에 리를 부딪히는 소리가 정도로 에드안에 의해 세게 고개를 꺽인 아게로가 낮은 신음을 뱉어냈지만 소란이 일었다 한들 집안에 그런 소음을 들은 이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빼닮은 심청색 눈동자 속에도 아스라이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확인한 에드안은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다만 입을 웃고 있어도 눈은 웃지 않는 표정은 가히 괴기스럽다 표현할 했다. 가늘게 찢어진 에드안의 동공이 아게로의 눈을 찔러 들어올 같았다. 턱뼈를 부서질 조이는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끝의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게로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안의 눈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그런 일이 있으면 당장 아버지께 달려왔어야지. 네가 아무리 감추고 괜찮은 한다해도 버지는 있단다.”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언뜻언뜻 보이는 에드안의 송곳니가 날카로웠다. 불길한 예감은 빗겨가지 않는다는 아게로는 새삼 알아가고 있었다. 물론 왕난의 억지를 받아준 에드안의 추측대로 늦은 귀가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기 위한 이유가 컸다. 아그니스의 사람을 만나게 되든, 에드안이 아직 눈치채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든지 간에. 어차피 아게로에게 반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뻔했다.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입을 있을 가능성은 0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에드안의 눈과 마주한 순간에도 당당할 있는 사람은 아게로가 아는 한은 그의 어머니, 아그니스가 전부였다. 먹잇감을 압도하는 눈을 당해내기엔 아게로는 아직 어렸다. 분하지만 에드안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러고 나면 걱정되는게 부모 마음 아니겠니.”

 

!”

 

아직 입맛이 없다면마시렴. 아버지가 억지로 먹이기 전에.”

 

경호원을 줄세워 데리고 다니는지 없을만큼 에드안은 강했다. 놓아주나 싶더니 이번에 아들의 머리채를 에드안은 아게로의 앞으로 유리잔을 내밀었다. 투명한 물에 방울의 붉은색이 나선을 그리며 퍼져갔다. 에드안의 . 오로지 그만이 해독할 있는 독을 이용해 에드안은 3년전에 아게로가 꼬박 달을 앓아 눕게 만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스스로 때까지 번이나 해독과 중독을 반복시켜서. 아마 쯤에서 아게로가 굴복하지 않았다면 달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독방에 갇혀 있었을 지도 몰랐다. 때문에 물을 마시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알고 있으면서 아게로는 여전히 떨리는 손끝으로 유리잔을 감싸쥐었다. 당장의 최선이 그것이라는 것도 이미 체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내일은 방에서 발자국도 나갈 생각 말거라. 상태가 나쁘다고 하니 자상한 아버지가 금은 주지.”

 

 

*

 

 

그래서. 내일은 나올 있겠냐?”

 

간다고. 시키지 . 죽을 같아.”

 

. 그럴 거면 부르냐, 멍청한 거북이 같으니라고.”

 

들리라길래 병문안이랍시고 기껏 선물까지 왔더니 시키지 말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작태였지만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라크의 입장에서는 쿤을 마냥 바보라고 폄하하기에는쩍은 구석이 있었다. 애초에 내버려 수가 없어서 여태 친구로 지내고 있는 아니던가? 오로지 재능으로만 가치를 평가받고, 여전히 부모에게 도구취급 당하는 아빠친구 아들과.

 

걱정할 사람까지 없애서 하려는 거냐. 아무 짝에 쓸모 없는 형제들 보다야 녀석들이 훨씬 진심일 텐데.”

 

닥치고 그렇게 전하기나 .”

 

아오, 놈의 성격장애 거북이를 그냥….”

 

캠퍼스의 다른 친구들에게 내일은 나갈 있다고 전해달라는 라크를 부른 목적이었으니 일은 끝난 것이 맞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당장 꺼지라니 상황에서 열받지 않는다면 그쪽이 성인군자다. 덕분에 라크의 붉은 눈이 불을 뿜어낼 기세로 타올랐지만 그는 웅크린 등을 갈기는 대신 콧방귀만 남기고 쿤의 저택을 나섰다. 어차피 바보 머저리 거북이에게 그런 훈계를 봤자 알아먹지도 못할 뿐더러 쿤이라고 몰라서 그런 선택을 것이 아닐 터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지만 현재의 최선이 쿤의 선택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에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항상 라크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아버지들 간의 인연에 힘입어 라크에게 부여된 역할이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하튼 에드안이 살아 있는 그가 라크의 앞에서 사라질 일은 없다는 뜻이니까. 딱하게도 라크의 역할이 거기까지라는 그를 화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본인만이 모르는 채로, 악어는 캠퍼스로의 길에 올랐다.

 

 

 

 

 

 

 

 

 

 

 

세 번째 이야기 입니다.

앞으로 두 편쯤 남았네요.

이번엔 제목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제 상황상 자세히 풀어쓰질 못해서 이해가 되실까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에드안과 쿤 사이에 뭔가 사정이 있구나 정도만 알아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나온 켈한성은 글(낑깡)님의 리퀘스트였습니다.

짧게 나온 만큼 뒤에 좀 더 다루거나? 해야할 것 같은데 계획대로 돼줄런지 모르겠습니다.

연휴 때 오랜만에 시간이 좀 나서 이것저것 해 봤는데

사실 그만큼 당분간 좀 바빠질 예정이라 ㅠㅠ

조~금 길게 이따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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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송이

신의 탑/봄 꽃

 

 

 

 

 

 

 

 

 

 

으아, 레포트에 깔려 죽겠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외치는 왕난의 절규에 쿤은 마음 속으로만 동의를 표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녹아내리듯 책상에 엎드린 쿤의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보이는 이상증상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상상 이상이었다. 너무 졸려서 점심이고 레포트고 당장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아니 생각이라는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려나? 쿤의 의식이 까무룩하게 가라앉아 가는 와중에도 혼자 왁왁대며 쌓여가는 레포트의 수에 울분을 토하던 왕난은 강의실에 둘만 남았음에도 쿤이 아무런 대구가 없자 천천히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 . 아직도 졸려서 그래?”

 

점심 먹으러 깨워줘.”

 

지금 그래. 오늘만 늦게 먹지 . 식당에 사람들도 바글바글할 테니까. .. 그럼 나는 경영전략 레포트를…”

 

왕난이 접어서 넣었던 노트북을 다시 꺼내는 데도 쿤은 미동 없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각성이라는 특수한 절차 때문에 무기력해진 요즈음의 쿤은 깐깐하고 도도한 본래의 성격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울 정도로 무방비했다. 졸고있는 동안은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라면 친구들이 만지는 것까지도 오케이였다. 역시나 오늘도 물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묘한 분위기를 풍겨서 왕난은 혼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간판이 좋은 대학인만큼 캠퍼스에는 집안도 외모도 되는 선남선녀들로 넘쳐났지만 학생들이 결혼이 아닌 연애 상대로 손에 꼽는 이는 누가 뭐래도 지금 왕난의 옆에 세상 모르고 잠들어 계신 아게로 아그니스였다. 높으신 분들의 특성상 결혼은 대부분 정략혼이기 때문에 상대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자유연애를 즐기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고 더해서 수인들은 성에 관한 구분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떤 동물의 피를 타고 났느냐에 따라 그들이 호감을 느끼는 대상은 사뭇 다른데, 다른 동물의 피를 타고난 사람에게 기준을 적용하고 보면 암수구분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주요했다. 요는 종족 번식의 가부라던가 자신이 속한 가문의 입장 등에 따라 최종적인 배우자는 부모님이 결정지어 주니까 연애만큼은 자기 취향대로 하고 싶다는 특권층 젊은이들의 마인드라는 거다. 와중에 쿤이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대중을 휘어잡는 연예인 집안 출신인 만큼 많은 이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외모를 갖춘데다가 가문이 높은 이름 값에 비해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주요했다. 요컨대 지하세계의 손이라던가 정치적 수완 혹은 군사력으로 유명한 집안의 자제들은 아무리 취향에 맞는 성격이나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질 경우 위험부담이 상당하다. 하지만 가문이라면 최악에 최악으로 헤어진다고 해고 가십거리 정도로 끝날 테니까 안전하고 오감도 즐거운 연애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버지와는 전연 다른, 쿤의 결벽증에 가까운 자기관리 덕분에 아직까지 소망을 이룬 이는 아직 학내에 아무도 없지만 말이다. 같은 소망을 가진 이들 사람으로서 왕난도 이번 기회에 쿤의 머리카락에 한번 손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여전히 머릿 속에서는 새하얀 목선이 아른거리지만 맨살에 체온이 다른 손이 닿으면 쿤이 깰지도 모르니까. 딱히 나쁜 짓을 하려는 아닌데도 터질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왕난은 천천히, 원래도 나지 않을 소리까지 죽여가며 손을 뻗었다. 닿는 순간부터 감탄이 터져나오는 물결 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올려 뒤로 넘겨주니 흡사 눈의 요정처럼 잠든 얼굴이 드러나 다시 한번 왕난의 심장을 때려댔다. 마음 같아서는 레포트고 점심이고 필요 없이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얼굴만 보고 싶은 왕난이었으나 뭔가 이상한 예감에 왕난의 손은 한번 전진했다.

 

? 괜찮아? 있는 같은데?”

 

…”

 

병원.. 아니면 약이라도 와야 하는 아냐?”

 

“….괜찮아. 아침부터 그랬어. 해열제는 가져왔고.”

 

팔꿈치 사이의 간격을 좁혀 완전히 얼굴을 감췄던 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보통은 서늘하게 느껴질만큼 왕난보다 체온이 낮은 쿤이 왕난과 비슷한 정도의 체온을 가지고 있다는 한여름이 아니고서야 그의 상태가 나쁘다는 밖에 되지 않는다. 쿤은 왕난의 걱정을 점심 먹으러가자는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왕난은 이제 켜진 노트북을 다시 덮고 쿤을 잡아 끌었다.

 

그럼 졸지말고 약부터 챙겼어야지. 일단 점심 먹으러 가자. 약도 먹고. 내가 동방이나 잠시 쉴만한 곳으로 데려다 줄게. 어지럽지는 않고?”

 

졸려.. 뇌가 녹을 같아.”

 

그건 졸린 아니라 네가 열이 나서 그런 거잖아. 강의도 없는 같던데 차라리 하루 쉬는 낫지 않았어?”

 

그랬으면 유한성 악마 같은 교수가 학점을 반토막 냈을 .”

 

아무튼, 가자. 가방 내가 들어줄까?”

 

아니야. 먹지. 늦어서 식당에 자리가 있을까 모르겠네.”

 

사실 왕난이 거의 쿤을 잠들자 마자 깨운 셈이라 점심시간은 오히려 지금이 절정이겠지만 열이 올라 시간 감각이 무뎌지기까지한 쿤에게 어서 약을 먹이고 집에도 데려다 줘야 겠다는 생각이 왕난은 사람이 많지 않을 같은, 그러면서도 환자한테 추천할만한 메뉴를 정하느라 혼자 고심했다. 영혼 없이 왕난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인 쿤은 왕난의 고민을 헤아려주진 못하겠지만. 결국 왕난이 정한 오늘의 메뉴는 대학가 주변의 조그마한 가게에서 파는 죽이었다.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이 아니라서 아직까지 이렇다하게 인기를 끌고 있진 않지만 이수의 고향에서는 죽을 환자식으로 주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하츠의 고향에도 비슷한 있다고 하는 보면 쪽에서는 대중적인 음식인가보다.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건지 가게는 손님은 없지만 주문받은 음식을 담느라 분주했는데,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오는 없는 음식이지만 예감은 좋았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에게 추천한다는 쇠고기죽과 참치죽울 주문해 놓고 보니 거기서도 앉은 채로 벽에 기대 졸고 있는 쿤을 발견한 왕난은 없다는 듯이 쓰게 웃었다. 대단한 배경에 비해서 대단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왕난은 학교도 다른 수를 써서 둘어온 틀림 없다는 말을 학기 초부터 듣고 있었고 덕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 4 내내 전공 수업을 혼자 들어야 하나를 고민하던 왕난의 옆자리를 OT 불참으로 넘겼던 쿤이 차지하면서 걱정은 시작부터 산산조각 났지만 말이다. 왕난을 위한 배려라기 보다는 왕난의 옆에 있으면 여학생들한테 시달릴 같다는 이기심 똘똘 뭉친 선택이었음을 감추지 않은 쿤이었지만 뒤에서 수군거리는 보다야 직설적인 화법이 차라리 마음에 들어서, 둘은 이후로도 전공 수업을 함께 들었다. 표현방식이 재수 없어서 그렇지 지내다보니 무른 구석이 많은 쿤은 왕난이 선택한 볼일 없는 교양 수업도, 기괴한 비주얼의 점심 식사도, 막무가네로 정한 사진 동아리에까지 전부 따라가 주었다. 동아리 덕분에 이제 쿤이 아니라도 점심 식사를 함께할 친구는 얼마든지 구할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왕난에게 가장 친한 친구의 손에 꼽히는 아직까지는 쿤이었다. 쿤이 속으로 어떤 계산을 건지는 없지만 이제껏 함께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왕난에게는 많은 점수를 갔으니까. 친구를 넘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큼.

 

술이라도 먹어, . 그래야 약을 먹지.”

 

“...... 시킨 거야?”

 

죽이라는 건데 이수가 환자한테 좋은 스프랬어. 거는 소고기, 꺼는 참치.”

 

참치라니. 고양이가 맞긴 맞구나.”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거든?!”

 

닥쳐 개냥이.”

 

아오! 환자니까 참는다. 기운은 없으면서 놀릴 기운은 나냐? ?”

 

대답 없이 어깨만 한번 으쓱해보안 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을 숟가락으로 한번 깊게 저었다. 스프라고는 해도 그간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비주얼이지만 먹을 들어있는 같지도 않고 냄새는 고소하다. 천천히 식혀 먹으라는 식당 주인의 말에 조심스럽게 숟가락 정도만 입에 넣어봤는데 다른 음식에 비해 담백하고 부드러워서 확실히 넘기기가 쉽다. 고양이 혀인 왕난과 쿤의 입장에서는 많이 식혀야 먹을 있을 같지만. 위에 막이 생길 정도로 식었을 겉만 살살 긁어 먹어야 온도가 적당한 같이 느껴지는 음식이지만 입맛이 떨어진 상황에서 정도면 확실히 맛있는 축에 든다.

 

이제 수업 없는 맞지?”

 

.”

 

그럼 기사 아저씨를 여기로 부를 테니까 바로 집에 들어가. 이수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전시회 때문에 골치 아플텐데.. 이화랑 하츠가 도와주려나...”

 

걔네 둘이야? 밤은?”

 

학기 중에는 바쁘잖아. 센스도 없고.”

 

밤은 출사가 아니면 임원진에서 쓰임새가 없다고 푸념하는 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찬가지로 디자인 센스가 없는 왕난도 같이 공격을 받는 느낌인지라 말할 처지가 아닌 왕난은 마디도 보탤 없었다. 다른 센스면 몰라도 보이는 거에 대해서는 이화도 믿을만 하지만 하츠는 딱히 밤이나 왕난과 다를 없어 보이는데 어쩌다가 준비위원이 건지 입이 근질근질해도 말이다. 사진동아리의 특성상 계절별로 있는 출사가 중요한 행사이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하는 사진 전시회 또한 중요도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축제때마다 동아리 회원들이 출품한 사진들로 여는 전시회는 수익금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동아리 창립 이후 해도 거른적 없는 사진 동아리 TOG 메인 행사였다. 때문에 임원진만이 아니라 센스와 행동력이 남다른 인재를 가려 뽑아서 별도로 준비 위원회까지 일시적으로 운영하곤 했는데, 예선부터 전시회장 디자인까지 모두 동아리의 인력만 동원하기 때문에 5월의 대학 축제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학기 초부터 발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어째서 과대나 동아리 임원으로 나서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탁월한 리더쉽을 자랑하는 쿤도 준비위원으로 차출당한 상태. 쿤의 대로라면 각성은 오래지않아 끝난다고 하지만 열이 있는 보니 감기몸살이라던가 다른 병에 걸린 아닌지 왕난으로서는 걱정이다. 왕난의 권유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건데 무리하다가 잘못되기라고 하면머리수로는 왠만해서는 당해내기 쉽지 않은 가문이 뒤집히는 아닐까? 각자의 팬클럽까지 동원하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하루 정도야 내가 대신 도와주면 되지. 너무 걱정하지 .”

 

너도 걱정인데. 게다가 너나 밤이나 다를 없잖아. 일과가 끝나면 바로 공식 일정 시작 아냐?”

 

…. 비올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형도 있고. 어차피 아버지는 나한테 아무 기대 하실 ?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카리스마 같은 전혀 없잖아.”

 

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왕난의 아버지자하드 이른바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정치인이었다. 40세가 되기도 ,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치에 입문해서 벌써 4 의원이자 장관 직을 역임하고 있으며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다. 사실상 적수가 없어서 자하드의 당선을 의심하는 이가 없는 정도인데, 왕난은 그런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자부심이라던가 자신감이 없어보였다. 형인 카라카가 아버지의 장점을 온전히 타고난 완벽한 2세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려나?

 

정치판이 연예계도 아니고 카리스마만 있으면 되냐?”

 

나라의 다음 대통령 자리가 자하드의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에는 쿤도 동의하는 바였다. 자하드의 성공적인 정치 활동도 한동안은 계속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식견이 넓고 신념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며 대중을 휘어잡는 또한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가 끝난 다음에도 사람들이 자하드와 같은 사람을 원할까? 모든게 완벽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원하는 정치를 있는 것일까? 어쩌면 미래의 사람들은 그들이 외면하고 있던 번째 왕자의 존재를 나중에야 깨닫고 뒤따르게 될지도 모른다. 실패를 적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없는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져 있는 컴플렉스 덩어리를 사랑하게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계를 알지만 도전하고, 자신이 작기에 위를 보는 범재지만 동시에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비범함을 함께 지녔으니까. 자신이 특별하다는 스스로만 모르는 왕난은 분명 가족들에게 학과대표가 것도어쩌다 보니라고 설명했을 테고, 수재가 아니라도 과제에 대한 질문을 하는 동기들이 있는 것은 자신이 만만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아버지의 우수한 부관이 되기 위해 경제를 열심히 공부한 사실이라던가 뒷배를 믿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서 새워 노력했던 따위는 아예 밖으로 내지도 않겠지.

 

다는 아니라도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말이지.”

 

그래. 머리 아픈 얘기는 하자. 자고 일어나서 나아지면 톡할게. 레포트는 같이 하자.”

 

그럼 나야 고마운데 기한이 넉넉하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

 

왕난에게 대학생으로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있는 시간은 저녁 식사까지지만 너무 잘난 아버지를 탓에 심심치 않게 있는 신변 위협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경호인력과 운전기사가 전속으로 배정되어 있는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다. 왕난이 이들을 개인적인 용도로 부리지 않으려고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쿤도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뼈와 살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 이기는 왕난의 차에 올랐다. 리무진의 자리가 좋고 어떻고에 감탄할 새도 없이 기운에 취해 곯아 떨어진 쿤은 사실 그가 주인을 베개 삼았다는 것조차도 기억하지 못할만큼 혼란 속이었다. 물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왕난의 차가 아니었으면 얻어 타지도 않았고 설령 타게 된다 하더라도 마음 놓고 잠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쿤도 이런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왕난에게 성격은 못되니까 절대 이야기해 주진 않을 테지만.

 

, 레포트고 뭐고 병원 가던가 자던가 하나만 . 주소도 알려주고 그렇게 잠만 자면 어떻게 하냐?”

 

알려줘도 맞게 왔는데 .”

 

니네 집이 워낙 유명하니까 기사 아저씨도 알고 있어서 거지! 하여간 입만 살아서는 부탁 드려요, 형님. 아까 저랑 점심 먹고 해열제는 먹였거든요? 그래도 열이 떨어져서요. 수인은 정도면 고열이라던데 신경 주세요. 여기, 이건 가방인데.. 들어 드릴까요?”

 

아냐아냐. 우리 집에도 사람 많으니까. A.A. 많이 끼쳤네. 나중에 내가 밥이라도 사라고 잔소리 놓을게. 신경써줘서 고마워, 왕난군. 바쁠텐데 어서 . 키세아. 가방만 들어줘.”

 

제가 오라버니를 업을 수도 있거든요?”

 

오라버니가 알면 기겁할거다. 신기한 일이네. 녀석이 아무한테나 몸을 맡길 사람이 아닌데.”

 

상류층의 구성원 중에 막장드라마 써본 집안이 어디 있을까마는 부모로부터 세상은 불신지옥이라는 처음 배운 탓에 의심이 중증질환급인 쿤이 지경으로 집에 돌아오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하츨링이었다. 그나마 대답은 못했어도 도착할 때까지는 의식이 아주 없진 않았던 모양인데, 왕난에게 소리 하는 것을 끝으로 기력이 모양인지 하츨링의 품안에서 잠들어버린 쿤을 침대에 데려다 놓기 위해 하츨링은 따라 나온 키세아에게 쿤의 가방을 맡겼다. 입학식에 왔다고 줄곧 쿤에게 마디도 않고 냉전 상태 유지 중이였던 키세아지만 인사불성이나 다름 없는 바로 위의 형제의 상태에 상당히 놀랐던 같다. 그리고 그녀도 하츨링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이미 멀리에 있는 리무진의 모습에 잠시 눈길을 던졌다.

 

설마 저런 순둥한 고양이가 오라버니의 취향인 아니시겠죠?”

 

진짜 설마다. 녀석이 자기 연인이라고 약한 모습을 보일 리가. 차라리 친구라면 모를까.”

 

왜요? 친구보다 연인이 가까운 사이 아닌가요?”

 

다른 녀석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A.A. 아닐걸.”

 

나오지는 않았어도 쿤을 데리고 들어온 하츨링과 키세아의 행색에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묻는 거실의 형제들에게 주치의에게 연락해 것을 부탁한 하츨링은 쿤의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층계를 디뎠다.

 

그나저나아버지께서 알면 난리날 텐데 어쩌나?”

 

 

 

 

 

 

 

 

 

 

 

 

 

 벌써 두 번째 봄 꽃입니다.

사실 Track 02보다 이게 먼저 나올 줄은 저도 몰랐어요..

내친 김에 빨리 몰아쳐 끝내 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봄 꽃은 처음 계획할 때 쿤른 커플링을 5개 정도 잡아서 편당 하나씩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나갈 예정이었습니다.

내용이 소프트해서 커플링이라고 해도 나중에 누구랑 잘될까? 하는 정도겠지만요.

저번은 그래서 (아무도 안 믿겠지만) 밤쿤이었고,

이번은 (역시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왕난쿤입니다.

왜냐하면 트위터상에서 저랑 가장 오래 많은 교류를 해 주신 어싱님께서 뽑아주셨기에...

왕난이는 사실 밤보다 더 마음이 많이 가는 주인공인데 쿤이랑 활동을 안해서...

밤쿤이랑은 완전 다른 분위기인데 이 커플은 진짜 진도 빼려면 쿤이 적극적이 되어줘야겠어요 ㅎㅎ

그리고 오래 교류해 주신 티스토리의 한 분은 이 글이 아니라 따로 리퀘를 받아드릴 예정이니

보시면 원하는 커플링 하나 뽑아 주시고,

제가 먼저 여쭈었던 다른 두 분께서는 좀 더 기다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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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신의 탑/봄 꽃

 

 

 

 

 

 

 

 

 

 

 

 

대세와는 달리 스물다섯번째 밤은 개강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다고해서 교수님의 수업이 그리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진학하기는 했지만 정치외교과의 수업은 밤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성격상 아무리 흥미가 없어도 강의를 빼먹거나 과제를 미룰 수는 없었지만 동기들과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올만큼 전공과 밤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양이나 동아리 활동 쪽으로 캠퍼스 생활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헌데 올해부터는 달라졌다. 동아리 친구, 아니 밤의 첫사랑이 복수전공으로 밤과 같은 전공을 이수한다는 소식을 전해 것이다.

 

안녕하세요!”

 

. 개강인데도 쌩쌩하네, . 공강이야?”

 

아니요. 아직 시작 했어요. 쿤씨랑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일찍 거에요.”

 

그래서 오면 깨워달라고 했구나.”

 

깨워달라고요?”

 

저기. 쿤은 여전히 동면 중이야.”

 

꽃샘추위가 기승이다보니 여전히 졸음이 쏟아지는 건지 동아리 방의 유일한 간이 침대에 웅크린 쿤은 이수의 표현대로 동면 중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같았다. 빼앗은 건지 잠시 기증받은 건지 모르겠으나 친구들의 외투에 뒤덮혀있어 위를 느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키보다 작은 간이 침대에서 잠든 모습은 또아리를 뱀이었다. 가을 낙엽을 그러모아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확보한 상태의 백사(白巳) 말이다.

 

고생하시네요. 날이 어서 풀려야 할텐데요.”

 

글쎄. 그러면 확실히 낫긴 하겠지만 쿤이 유별난 건지도? 쟤네 누나라던가 다른 형제들은 멀쩡하던데.”

 

정말요?”

 

아까 마리아씨가 잔소리를 퍼붓고 갔거든. 여동생 입학식도 보고 모양인가봐.”

 

하하나중에 어쩌시려고..”

 

내말이. 자기가 저지른 짓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동아리 방에서 밤을 반겨준 기다리던 쿤이 아니라 성실한 회장, 이수였지만 놀다 지친 아이처럼 곤히 잠든 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망마저도 데가 없었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밤의 행복 자체였으니까. 늑대 수인인 밤에게 첫사랑이란 운명이다. 평생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게 되는 그들이니 쿤이 밤을 선택하지 않는다 해도 밤이 그를 외면하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쿤에게는 아직 연인이 없으니 밤이 슬픈 생각을 떠올릴 때는 지금이 아니다. 밤의 아버지가 그랬다는 것처럼 없는 도전의 시기라고 해야겠지.

 

비오.. 아니, ! 오랜만이다! 그동안 지냈어?”

 

왕난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왕난씨는 지내셨어요? MT 때도 오셨잖아요.”

 

진짜 가고 싶었는데 선약이 있어서어흑. 다들 빼고 재밌게 놀았겠지..”

 

다음엔 같이 가요. 아니면 왕난씨네 근처로 출사 갈만한 곳을 알아볼까요?”

 

그건 절대 ! 아빠나 형이 경호를 붙일거야.”

 

역시 높은 분들은 뭔가 다르구나. 동아리 MT에도 경호라니.”

 

말이 경호지 완전 감시라고. 감시도 그냥 따라다니면서 쳐다보기만 하면 괜찮을 아빠한테 자꾸 일러 바친단 말이야. 품위가 없다던가, 행동이 가볍다던가!”

 

솔직히 아버지 위치를 생각하면 잔소리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한다만.”

 

!!”

 

지금도 왜라고 되물을 정도로 개선의 여지가 보이니까 당연하지. 일류 수행원이 밤낮으로 따라붙어 가르쳐도 늘지 않는 것을 이수가 겠는가. 친구의 기분이라도 나쁘게 어서 화제를 바꿔 주는 최선. 유명한 정치인인 왕난의 아버지처럼 이수의 동료들 중에는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이 많았다. 동물의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데다가, 수인들은 보통의 인간과는 달리 별도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이들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출세가도에 오르기도 쉬웠다. 특별한 재원들을 위한 최상위 고등교육 기관으로 평가받는 대학은 단연 신분상승의 상징과도 같았기에 이수 또한 재수를 감수하면서까지 도전했던 것이고.

 

강의는 언제야, ? 쿤은 깨워도 ?”

 

아직 시간이 남아서요. 동방에 들리려고 일부러 일찍 나왔거든요.”

 

혹시 깨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즉 이수와 왕난 그리고 밤이 떠들어도 뒤척이지조차 않던 쿤이니까 밤은 마음 가는 대로, 조심스럽게 쿤의 귓가로 손을 뻗었다. 깨우고 싶진 않았지만 만져보고 싶었다. 유독 눈에 띄는 색깔의 머리카락이라던가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같은 것들이. 현실성이 없어서 만든 처럼 생각되는 은청색 모발은 예상과는 달리 밤의 손끝을 흐르듯 피했다. 스쳐지나가는 촉감만으로도 곱디 고와서 온기를 머금은 피부에는 닿기도 전에 혼자 놀라 거리를 두었던 밤은 서슬에 흩어진 쿤의 머리카락에서 엿보이는 다른 색에 고개를 갸웃했다. 호기심으로 꽃물이 같은 바로 부분을 사르르 흘려보고있던 차에 저를 향해 열리는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 밤은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 중이던 이수와 왕난이 이쪽을 바라볼만큼 크게 놀라고 말았다.

 

, 일어나 계셨어요?”

 

..... 아니.., 그냥 깨워도 됐는데.”

 

대답이 그러냐 너는.. 밤이 때문에 30분은 먼저 나온 같던데 이제 일어나라.”

 

깨웠어 너흰.”

 

밤이 깨운게 잘못이 되냐..”

 

아직 시간이 남아서 일부러 깨웠어요. 많이 피곤하신 같아서요.”

 

피곤한 아니라 부작용 같은 건데 크게 신경 일은 아니야.”

 

무슨 부작용?!”

 

겨울잠보다 부작용이 훨씬 일인데 무슨 소리야?”

 

친구들의 과격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덮고 있던 더미에서 자신의 트렌치 코트를 찾아 걸친 쿤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부연설명을 덧붙이며 머리를 묶었다.

 

죽는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일이었으면 진즉에 병원에 끌려 갔겠지.”

 

죽는다고 해도 그런 심각한 일이면 진단서 제출하고 쉬시는 낫지 않을까요?”

 

.. 됐어. 이미 색이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금방 끝날거고 졸음도 참을 정도는 아니니까.”

 

?”

 

혼인색. 우리 쪽에서는 그냥 통과의례 같은 거야.”

 

수인들은 그들의 반신이라고 있는 동물의 피에 기인하는 특성을 어느정도 함께 지닌다. 수인의 동면이나 혼인색은 그러니까, 뱀의 특성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으로 쿤의 말처럼 그게 병이라고는 없다. 보통은.

 

통과의례에 부작용이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데?”

 

드물게 각성이 같이 일어나면서 나처럼 탈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데.”

 

각성?”

 

속성이 여러 개가 되는건데 우리 집안은 아버지부터가 모양이라 말고도 몇명 있었다고 하더라고.”

 

분명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묶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능력있어 보이는 쪽으로 바뀐다는 신기한 일이다. 걱정이 가득한 친구들의 표정 때문인지 전에 없이 친절히 자신의 사정을 설명해주는 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던 밤은 걱정이 가시자마자 새로운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쿤씨. 혼인색이 뭐에요? 결혼이랑 관계가 있는 건가요?”

 

묻는 순서가 밤에게 밀렸을 같은 궁금했던 왕난도 눈을 빛냈다. 반짝이는 개의 금빛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천진함을 이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닫게 되는 쿤이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아버지를 두었다는 또한 둘의 통점인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가 쿤에게는 세상 최대의 의문이었다. 왕난의 경우야 유능한 형이 있으니 재능이 쪽에 치우쳐졌다 수라도 있겠는데 가업(?) 이어가야할 분명한 밤쪽은 확실히 신기했다. 분명 부모님으로부터도 별도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인이 됬다는 증거 같은 거야. 생식능력이 완전해 지면서 나처럼 색이 바뀌거나 특별한 문양 같은 나타나기도 . 우리 일족은 혼인색이 나타나야 진짜 어른으로 대우해주기 때문에 전엔 독립도 돼고 결혼도 금지야.”

 

잠깐만. 그럼 조금 전까진 완전 애기였다는 거네?”

 

뭐래. 어제 태어나서 바로 대학생이냐.”

 

우리 집에서는 스무살만 넘으면 어른이거든? 그러니까 작년부터 어른이었던 거지.”

 

지금 선배 대우 달라는 얘기냐?”

 

왕난이가 1 선배면 2 선배인 거니까 형님이라고 불러,

 

하아...”

 

2 정도면 사회에 나가서는 결코 많은 나이차도 아니건만, 기어코 대접을 받을 심산인지 당당하게 턱을 들고 버티고 사람의 뒤로 여전히 부담스러울만큼 천진한 눈빛의 밤이 이수와 왕난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마저도 선배 대우를 바란다면 곤란하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쿤의 눈앞에 당도한 밤이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당장 독립 하시고 결혼도 하셔도 상관 없는 건가요?”

 

기본 요건이 그렇다는 거지... 그렇게 일에는 준비라는 필요하지 않을까, ?”

 

제가 도와드릴게요.”

 

?”

 

방금 쿤을 의문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는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밤의 얼굴에서는 태양처럼 찬란한 미소 떠날 줄을 몰랐다. 너무도 순수한 기쁨이 엿보여서 차마 태클을 생각도 하고 있노라니 이번에는 손까지 마주 밤이 노래처럼 다음 질문을 쏟아냈다.

 

언제 혼인색으로 바뀌는 건가요?”

 

글쎄.... 확실히는 모르지만 보통 이내로는 끝난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시간이 없네요?”

 

무슨 시간? , 아니다. 그건 내가 나중에 따로 설명해 테니까 슬슬 출발하자. 정외과는 인문 1동이던가?”

 

. 226 강의실이에요. 수업이니까 교재 소개만 하고 끝나지 않을까요?”

 

그럼 좋을텐데. 첫강부터 풀강이었어서. 시간 대비 생산성이 어떻다던가 하면서 말이야.”

 

경경과는 역시 효율 위주인걸까요.”

 

쓸만한 강의여야 효율도 투자가치도 있는거지. 우리 다녀올게. 이따 보자.”

 

나도 수업이라. 여튼 공간 맞으면 보자.”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강의 끝나면 밤이랑 같이 . 점심 맛있는 먹으러 가자. 보신도 .”

 

아직 서로의 시간표를 파악하기 전인지라 2 정도 지나기 전까지는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 구하는 것도 헷갈리겠지만 쿤은 같은 과인 왕난이 있으니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을 찾아다니는 수고는 많이 덜어낸 셈이다. 복수전공을 하게 되면서 동아리 방에 들릴 시간이 줄어든 아쉬울 수는 있어도 동아리 자체도 왕난의 손에 려오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그가 복수전공을 하게 되면서 자신과 함께할 시간이 많아졌다는 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제 동아리 활동만이 아니라 강의시간이라던가 조별 과제의 회의시간 등에도 쿤을 만날 있게 것이다. 작년에 밤이 스스로와 싸우는 기분으로 전공 강의를 들은 것은 때를 위해서였나보다. 들을만한 의나 교수를 추천해 달라는 쿤의 부탁을 받던 순간, 밤의 지난 해는 전부 보상을 받았다. 점심 왕난과 쿤의 조합에 끼어들 근거도 생겼고. 인문관끼리는 붙어있어서 경영경제과인 쿤이 강의실의 위치를 모르는 같진 않았지만 밤을 따르는 듯한 기색에 왠지 밤은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강의를 들으면 좋을지를 물어봤던 것도, 밤에게 강의를 같이 듣자고 것도 쿤이 정치와교과의 수업을 들을 때만큼은 밤을 의지하고 있다는 확실히 느껴져서 그런 같았다. 비록 왕난의 성화에 이겨 사진 동아리에 들어왔지만 쿤은 의외로 카메라나 필름에 대해 박식했다. 사진을 찍는 취미는 없다면서도 렌즈나 카메라의 브랜드 특징 꿰고 있어서 오히려 원래부터 사진에 흥미를 가졌던 다른 친구들이 그의 도움을 받아야할 정도였다. 당연히 동아리 활동으로 사진을 처음 시작한 밤이 쿤을 도울 같은 아예 없었다. 기껏해야 무거운 도와주거나 졸고 있을 어깨를 빌려주는 정도? 걸음쯤 뒤에서 밤의 뒤를 따르던 쿤은 인문 1동에는 처음 발을 디딘 건지 중앙 정원의 조경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이제 움이 가지 곳곳에 연두색 점들이 찍혀있는 광경은 사실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으 자신이 워낙에 특출난 지라 곁에 밤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같은 색이었던 푸른 속에 잠시 꽃잎 같은 것이 비췄나 싶은 순간 집요한 시선 때문인지 눈이 마주쳐버리자 밤은 멋쩍게 웃을 밖에 없었다.

 

분위기는 2동이랑 거의 비슷하지 않나요?”

 

그건 그런데 돌아다니는 얼굴 들이 심상치 않아서. 조별과제 같은 하면 불꽃 튀겠는데?”

 

설마요. 다들 친절하시던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세계의 이면을 움직이는 시크릿 패밀리의 일원인 주제에 성선설의 독실한 신자인 밤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해서는 이미 해탈한 쿤이니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밤의 정체를 알아보고 알아서 설설 기어준 람들이나 곱상한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대해준 여학우들의 사심 가득한 호의를 선의로 보정하여 기억하는 것이리라. 대학 간판이 일류이니만큼 가닥 하는 집안의 자제들이 모인 곳에서 훗날을 염두에 기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어 보이건만.

 

같은 과에 정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아예 없진 않지?”

 

계시긴 하지만 크게 신경쓰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애초에 학교 자체가 너무 쟁쟁한 집안의 자제분들 밖에 계셔서요.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FUG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지도 모르죠. 여하튼 저는 그래서 마음이 편해요. 수업은 여전히 어렵지만요.”

 

“FUG 이미지와 네가 너무 달라서 정보를 믿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아닐까 싶은데.”

 

설마요. 저보다 쿤씨가 걱정인데요.”

 

? ?”

 

“.....쿤씨를 모르는 분들이 함부로 이야기하니까요.”

 

밤이 지상의 정보 조직이자 지하의 실권자인 FUG 유일한 후계라는 캠퍼스 내에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 조직의 특성상 지상의 법과는 별개로 사람 한둘을 지우는 것쯤은 일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마하면서도 밤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당장의 인간관계를 넓히고 싶은 생각이 없는 밤에게는 지금 정도가 지내기 좋았 말이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도 제약을 두지 않고 지내온 밤이지만, 가끔 욱하게 되는 일들은 보통 쿤과 관련된 소문을 듣게될 때였다. 어쩌면 작년의 입학생 중에 가장 화제가 인물은 밤이나 왕난이 아니라 쿤이었다고 있을 것이다. 뛰어난 원소술사인 동시에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는 일가는 당연하게도 대부분 예체능 계열로 진학했고, 캠퍼스에서 목격되는 일도 연례 행사급. 때문에 경영경제 전공의 가문 입학생이 있다는 말에 신입생들은 그가 기형에 가까운 정도로 못생긴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추측했었다. 헌데 예상과 달리 가문 연예인 누구 옆에 두어도 부족하지 않을 같은 미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긍정적이었다. 그와 친구가 되면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연결고리가 생길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붙어다니는 왕난과 밤이 그에게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자 질투에 눈이 누군가의 소행인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터놓고 말하자면 그건 쿤이꽃뱀이라는 골자였다. 수인이기까지 하니 딱이라고 킬킬대는 목소리에 친구인 밤이 먼저 울컥했지만 당시 튕겨져 나가는 밤의 어깨를 붙잡은 당사자인 쿤이었다.

 

들으라고 소리를 들은 것뿐이야.

 

사람들은 연예인에 대해서 쉽게 말하고 평가하니까. 그게 싫어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역시나 아직까진 똑같은 취급을 받아도 어쩔 없나보다 하고. 스스로 형제들의 명성을 이겨낼 때까진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말이다. 밤은 쿤에게 한번 반했지만 감내한다는 상처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니까 신경쓰였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누군가를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다가갈 틈을 주지 않아서, 소문 속의 모습처럼 차라리 놓고 유혹해 준다면 오히려 고마울 같았다. 실제로 밤은 지금보다 가까운 관계가 되길 원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 밤의 마음이 어지럽도록 혼인색까지 나타나기 시작한 쿤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읽을 없는 밤을 아직 피지않은 벚꽃색으로 흔들어 놓기까지 했다. 투명하게 푸른 햇빛 사이를 지날 때마다 엷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가 푸르게 다시 개이는 모습은 충분히 요사스럽건만 쿤의 시선은 밤에게는 닿지 않는다.

 

그런 옛날에 적응 했지. 너무 신경쓰지 , 그런 관종들한테.”

 

여전히 강경하시네요, 쿤씨는.”

 

요즘 세상에 정도는 욕도 아니야.”

 

하하…”

 

밤은 험한 말이라고는 입에 담지 않는 주의였지만 그렇다고 세태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쿤이 그런 험한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뿐. 쿤이 강한 언동을 보일 때마다 놀라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진실로 꽃이라 하더라도 온실 속에서 갖은 보호를 받으며 가녀리게 자라난 화초보다는 악천후와 싸우며 몸에 가시를 돋워낸 야생화에 가깝다는 것은 밤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지만 밤의 소망은 그가 스스로 날을 세울 없게 지켜내는 일이었으니.

 

이쪽에 앉으세요. 교수님께서는 강의는 명쾌하게 하시는데 괴짜라서요.”

 

괴짜?”

 

다른 전공의 수업이니 순순히 안내자인 밤의 말에 따라서 그가 의자를 주는 자리에 앉는 쿤이 사랑스럽기만 밤이지만 밤이 쿤과 함께 강의실에 들어오자 실내가 술렁이는 둔감한 편인 밤에게도 똑똑히 느껴졌다. 그런 반응이 익숙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밤이 주는 이야기가 정말 신기하기 때문인지 쿤은 밤의 이외에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명 드리긴 힘든데아무튼 보시면 알아요.”

 

전공필수 과목이라 밤과 쿤도 어쩔수 없이 선택한정치외교와 화술 과목의 담당 교수는 성자인 밤이 저렇게 말하게 정도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강의실의 중간 ,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아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잠시, 의외로 조그만 유한성 교수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밤에게 사심 가득한 안부를 묻던 목소리들마저 끊길만큼 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밤의 옆자리에 앉은 쿤도 부러 무시할만큼 콧대 높은 정치교과 학생들의 반응이 신기해서 커피잔을 들고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교단에 오르는 단신의 교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커피잔을 탁에 소리나게 내려 놓은 창가에 앉은 학생들에게 경고 먹였다.

 

수업 듣고 바깥 구경이나 하려는 거죠? 창가에 앉은 분들은 시험 성적에서 단계가 내려가게 될테니 렇게 알고 심히 하세요.”

 

단지 수업인데 선택한 자리만 가지고 학점 운운하는 교수의 만행에 아연해짐과 동시에 밤이 굳이 쿤을 창가가 아닌 안쪽 자리로 인도한 이유에 대해서 뒤늦게 깨달은 쿤을 뒤로 하고 천재로 이름 높은 어린 교수는 시간이니 출석부터 부르겠다고 했다. 성적을 단계 낮출 대상들의 이름을 분명히 알아두기 위한 같아서 출결조차 찜찜하던 차였으나 이미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아게로 아그니스?”

 

?”

 

복수 전공이라니 재수 없으니까 마이너스.”

 

교수님!”

 

그리고 적을 포섭해 왔으니 스물다섯번째 밤은 플러스.”

 

….”

 

교재따윈 강의계획서에 놨으니 알아서들 사서 보고.”

 

그러는 자기는 월반까지 천재 주제(?)! 보다도 사색이 덕분에 교수에게 따지고 타이밍은 놓쳤지만 보아하니 마이페이스인 교수가 항의를 한다고 해서 곧이 들어줄 같지도 않다. 성적이 높을 수록 좋은 당연하지만 복수전공이니 어차피 수석은 운명이다. 깨끗하게 수업은 죽여서 선방 하는 선에서 그치고 다른 과목을 공략하는 편이 좋을 같다. 생각을 정리하고 수업 내용에 집중해 보자면, 밤의 표현대로 강의 자체는 정연했다. 요점이 뭔지 쉽게 있었고 예시도 적절했다. 심하게 직설적인 표현과 시대상을 너무 반영한 탓에 교수의 사상이 그대로 주입되는 같은 느낌만 제외한다면. 90 강의에서마이너스경고를 받은 학생만 스무명에 달할만큼 예민한 성격도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다. 중에 모르고 창가에 앉았다가 봉변을 당한 수가 아홉이니까 학기가 끝날 쯤에 A+ 받은 학생이 남아있지 않을 같다. 아니, 유일하게플러스 받은 밤이 있었지. 수업 내내 안절부절 못하는 꼴을 보니 쪽도 쉽진 않겠다 싶긴 하지만 말이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밤이 맞은 강아지 같아서 쿤이 오히려 왕난이 말했던 맛있는 점심으로 밤을 달래야 했다. 사실 쿤은 교수의 태도에 그리 마음을 쓰고 있진 않았으니 말이다.

 

아게로!”

 

하지만 이건 달랐다. 쿤이 굳이 형제들과 다른 선택을 하게 이유. 캠퍼스 내에서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명확하지도 않건만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 세단은 쿤과 밤의 앞에서 드래프트를 하며 멈춰섰고, 짙게 썬팅된 창이 내려가자 목소리가 이미 정답을 알려준 대로 선글라스를 옆으로 집어던진 에드안이 있었다. 타이어가 노면을 긁는 소리가 워낙에 시끄러웠으니 전필 강의를 마치고 터져나온 정치외교과 학생들의 이목이 이쪽으로 쏠리는 당연한 현상.

 

몸이 좋으면 쉬어야지 굳이 나온 거냐?”

 

좋은 아니라 졸린 거였거든요. …”

 

강의 끝나면 당장 들어와라. 성인이 되고 했으면 일찍일찍 들어와야지! 동아리 같은 거에 신경쓰지 말고!”

 

반대 거든요, 에드안 교수님. 그리고 댁은 인문관이 아니라 예술관에 가야하잖아? 게다가 학생들 했잖아요, 지금. 대체 교수는 어떻게 거에요? 뇌물 먹이고?”

 

지금 그런 중요하냐! 저녁은 무조건 나랑 먹어야 하니까 그렇게 알고.”

 

제가 왜요!”

 

연예인이 쉽게 무시를 당하는 귀족들의 교정이라 해도 소위클라스 존재하는 . 몰상식한 운전에 , 에드안의 등장에 초토화가 되었던 인문 1동은 그가 떠나고 뒤에도 술렁임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여성편력이 거의 기록감이지만 사람들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장년이 이른 현재까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그는 당연하게도 자식들에 대한 애정은 눈곱만큼도 표현한 적이 없었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추파를 던질 기세인 그의 카사노바 기질이 지금까지 발휘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아들을 챙기다니 있을 없는 일이었다. 화가 제대로 같은 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왔던 것처럼 빠르게 차를 몰아 사라지는 아버지의 애마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쿤은 정신차린 밤의 위로가 아닌, 호탕하고 맑은 웃음 소리에 이성을 되찾았다. 돌아본 자리엔 수업 때까지만해도 굉장한 저기압이었던 교수가 박수까지 치면서 웃고 있었다. 진귀한 구경거리 였는지는 몰라도 그리 재미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같은데 눈가에 눈물이 때까지 웃던 유한성은 한참만에야 진정이 같았다.

 

팔불출 에드안이라니.. 좋은 구경 했으니 마이너스는 없는 걸로 치죠. 언제든 거슬리면 깎을 거지만요. , 점심 맛있게 드세요, 학생. 저는 선약이 있어서. 언제라도 교수님과 점심을 함께 하고 싶다면 얘기하시고요.”

 

밤의 표정을 보면 그럴 리가 없어보이지만 교수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이고 쿤의 학점도 당장은 원상복구 되었으니 해피엔딩인걸까? 시작부터 피곤한 이번 학기의 예감에 기쁜 소식에도 쿤은 잠시 마른 세수를 했다. 혼인색에 각성이 아니더라도 다음 강의가 시작하기 전에 어디서 쉬어야 겠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거 이름은 봄 꽃인데 여름에 연재하게 생겼네요.

이번 글은 소재부터 진행에 이르기까지 트친 분들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나올 때 짚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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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

신의 탑/봄 꽃

 

 

 

 

 

 

쿤씨, 일어나세요. 이제 도착했어요.”

 

기차가 종착역에 멈춰서자 밤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던 쿤을 깨웠다. 이제 봄이라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 탓에 추위를 많이 타는 쿤은 제법 두께가 있는 겉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은실 처럼 빛나는 청은발은 화사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같은 색깔의 속눈썹이 열리면 밤이 기억하는 그대로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나타날 테고.

 

어디 아프신 아니죠?”

 

.. 깨우지 그랬어. 내내 불편했을텐데.”

 

잠깐인데 뭘요. 게다가 동면기가 있는 분들은 많이 주무시는 건강에 좋데요.”

 

이제 봄이잖아. 보통 이맘때엔 괜찮아졌는데 이상하게 해는 계속 졸리네.”

 

종착역이니 역무원들의 성화도 없어서 여유있게 각자의 짐을 챙겨 나오며 쿤은 작은 푸념을 어냈다. 동아리 친구들끼리 고즈넉이 다녀온 MT자리에서도 잘만 놀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진 이상하다면서 말이다.

 

그럼 정말로 어디 좋으신건…”

 

전혀. 설마 춘곤증 같은 건가?”

 

그런 거면 좋겠네요. 쿤씨는 굉장히 조용하고 귀엽게 주무시던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좋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쿤은 잠든 자신의 모습을 없으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돌아오는 내내 눈호 제대로 밤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있을 터였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부터 쿤이 졸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서 원래 쿤의 옆자리에 앉기로 했던 라크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보람이 있었다. 라크는 옆자리에 누가 앉든 자신의 비위를 맞춰줄 때까지 귀찮게 구는 성격이라 혹시라도 쿤이 몸이 좋아서 잠을 청하려 한다해도 가만 두질 않을 테니까, 밤이 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서 눈치껏 라크와 자리를 바꾼 것이다. 덕분에 이수에게서 좋아하는 바나나 스낵을 잔뜩 얻어먹은 라크도 불만이 없고, 조용히 인형처럼 잠든 쿤을 지켜볼 있었던 밤도 만족스러웠다. 밤도 친절한 성격과 중성적인 외모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람이라는 아우라를 풍기는 쿤에게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수인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수인이라면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쿤을 보여준다면 생각을 고쳐 먹지 않을까? 만년설이 자신을 다져 만들어진 얼음처럼 온통 눈부시게 빛나는 청량한 색채 가득 사람이었으니.

 

여어. 잤어, ? 내내 자던데?”

 

몰라. 졸려. 집에 가서 잘거야.”

 

? 어디..”

 

아픈 아니고, 열도 없어. 아까 밤도 내내 물어보더라.”

 

이수의 걱정을 잘라 놓으면서까지 심신의 건강을 어필한 쿤은 역에서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친구들의 인사를 받아주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 싶었는지 이수와 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나도 이제 볼게. 이런 행사 기획하고 인솔 하느라 고생 많았다, 이수야.”

 

임원이 원래 그런거지.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고. 개강 보자.”

 

그래. 밤도 수고해. 오늘 고마웠어.”

 

그런 걸로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빨리 오냐, 파란 거북이!”

 

아오, 악어 자식. 거북이가 아니라 뱀이라고 번을 말하냐, ?”

 

라크의 호칭은 전부거북이 쿤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원래 어떤 수인인지가 그리 중요한 같아 보이진 않아 보이건만 그는 아직 라크의 개도를 포기하지 않았나보다. 사는 곳도 가깝고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니, 여기있는 다른 누구보다 라크의 거북이 소리를 많이 들어본 쿤일텐데도 잔소리를 쏟아놓는 보면 말이다.

 

..?’

 

라크 쫓아 몸을 돌리는 쿤의 머리카락 끝자락 쯤에서 그와 어울리지 않는, 아니 이렇게 보니까 의외로 그와 어울리는 꽃의 빛깔을 이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늘보다 맑은 푸른색 머리카락에 일찍 벚꽃잎이 내려앉기라도 했던 걸까? 워낙 찰나였으니 눈가에 햇빛이 어려 잘못 것이려나. 혹시나 싶었던 생각이 멋쩍어 괜히 뒷통수를 긁적인 이수는 여태 그의 곁을 지키던 밤을 내려보며 오늘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넸다.

 

너도 이만 들어가야지. 수고했어, .”

 

이수씨야말로 수고하셨어요. 어서 들어가셔서 쉬세요.”

 

그래. 개강 하고 보자.”

 

 

-

 

 

친구들과 개강 보자고 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결코 개강을 기다린 적은 없는데 약속의 날은 오고야 말았다. 5 터울의 동생보다 못하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일어난 쿤은 여전히 잠에 취해 멍한 상태로 바로 위의 누나에 의해 욕실로 밀어넣어졌다. 이럴 때는 씻는 최고라는 그녀의 지론에는 동의하는 바였지만 지금 씻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아니라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곱씹으면서.

 

, 동생님. 개강이라며? 이제 꿈나라 여행을 가서 어쩌냐?”

 

닥쳐. 백수 주제에.”

 

백수라니. 엄연히 평균 2 구독의 유튜버거든? 요즘 초딩들 장래희망 1순위의 유망 직종이라고.”

 

그럼 초딩들한테 가서 자랑해. 진짜 이렇게 잠이 깨지.”

 

“A.A. 아직도 옷도? 봐봐 아게로.”

 

당장 갈아 입을 거야. 뭐라고 하지 마.

 

아니, 머리카락. 염색 아니네?”

 

머리카락이 ?”

 

그간 자느라 미용실은 커녕 외출도 안했던 쿤이 염색을 했을 리가. 마리아의 말에 머리카락을 유심히 뜯어보던 하츨링도 뭔가 이상한 눈초리라 결국 쿤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눈앞까지 당겨 보았다. 그냥 때는 평소랑 같은 같은데 천천히 문지르자 각도에 따라 하늘색이 분홍빛으로 바뀌는 같기도 하고 아닌 같기도 하고.

 

어디 아픈 아냐? 영양실조라던가? 요새 졸리다고 밥도 먹고 그랬잖아.”

 

뭐래. 때마다 깨워서 억지로 밥숟가락 쑤셔 넣은 누군데.”

 

원인을 모르면 큰일이잖아! 형이 태워줄게. 어서 병원 가자!”

 

무면허가 누굴 태워.. 됐어. 그거 아냐. 혼인색. 일이라고.”

 

뭐라고?!! 네가 살이나 먹었다고 벌써 혼인색이야!”

 

이제 대학생이거든요, 망할 아버님. 성인 맞아요.”

 

밤은 가족이 많아서 좋겠다면서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정신없는 집안에 발자국이라도 들이고 보면 생각이 바뀔거다. 나이가 차면 나타나는 당연한 가지고 온갖 호들갑을 떨고 있는 식구들을 뒤로하고 쿤은 당장의 지각을 면하기 위해 고데기도 포기하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나중에 앞머리만 대충 어떻게 하고 오늘은 묶고 가는 상책일 같다. 이젠 신입생도 아니니까 깐깐하게 성적을 매기는 걸로 유명한 전공 교수의 수업에 지각했다가는 오로지 쿤의 손해다.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에 혼인색이 먹여 주는 것도 아닐텐데 그게 대수라고. 쿤의 형제가 몇인지를 생각하면 처음 있는 일도 아닐텐데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는 충격이라는 표정의 에드안을 지나쳐서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 쿤은 늦은 만큼 준비로 분주했다. 아센시오 처럼 완전히 색이 바뀌거나 다른 형제들처럼 문신 같은 점이 생길 알았는데, 이만하면 별로 눈에 띄지도 않고 괜찮은 같다가 자신의 혼인색에 대한 아게로 아그니스의 감상의 전부였다.

 

 

 

 

 

 

 

 

 

짜잔!

새겁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거죠...

트위터에서 트친분들로부터 소재를 얻은 수인+대학생 AU입니다.

Exceptional과 마찬가지로 내킬 때 그만큼씩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티스토리 에디터가 너무 바뀌어서 적응도 할 겸 일단 프롤로그 부분만 쓱쓱해서 올려봅니다.

나중에 조금 손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쓸 게 많아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분위기 캐치용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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