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6
신의 탑/Exceptional
시상식 이후로는 짧은 휴식, 그리고 콘서트를 위한 콘셉트 회의와 광고 촬영이 정해져 있었다. 광고주가 쿤을 포함한 익셉셔널 전체의 출연을 원했기에 그 무렵 쯤의 복귀가 정해져 있는 것이니 마찬가지였지만 쿤의 고열로 재계약 일정을 한차례 연기했다는 소식에 밤의 표정은 굳어 버렸다.
"유한성 실장을 불러 주세요."
익셉셔널의 리더이자 다방면으로 활약중인 이 시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 쥬 비올레 그레이스는 부모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을 FUG Ent. 의 경영진이기도 한 바. 소속 연예인이 아닌 이사로서 한성을 찾는 그의 표정에서 위기감을 느낀 직원은 빠르게 유한성 실장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직 한성과 같은 베테랑이 아니니까 경영진과 직접 마주하는 일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룸 메이트를 찾아줬으면 하는데.
에드안이 직접 나설 정도로 쿤의 지병이 만만치 않다는 건 이제 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은 에드안이 쿤의 고집에 져 주는 선택을 했으니 그가 그룹을 나간다거나 갑자기 본국으로 떠나버릴 염려는 덜었다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밤이 바라는 만큼, 언제까지라도 그의 곁에 쿤을 잡아두기 위해서 밤도 뭔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절 찾으셨다고요, 이.사.님."
"네. 한성 씨."
"보고 드렸다시피 계약이 연기된 건 쿤 씨의 몸상태 때문입니다만."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 점에 대해서 닥달할 생각도 없고요."
"그럼 무슨 볼일이시죠. 저는 쿤 가문과 협업 건으로 쏟아지는 언론사 질문지 처리하는 것만해도 바쁜데요."
"저 이제 개인활동 중단할 겁니다."
"....네?"
"익셉셔널의 활동에만 매진하겠다고요. 제 스케쥴 관리 안 하셔도 되니까 유 실장님 업무도 좀 경감되지 않을까요."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그렇겠지만 당장은 쇄도하던 비올레 섭외 요청이 몽땅 질문지로 바뀔 테니 턱이 빠진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성은 입을 떡 벌렸다. 경영주랍시고 아버지고 아들이고 아랫사람의 노고를 너무 몰라주지 않는가!
"가, 갑자기 그런 선언을 하는 이유가 뭐죠?"
"FUG는 이제 작은 회사가 아니니까요. 제가 돈에 매달릴 이유도 이젠 없고 늦기 전에 후임도 양성해야겠죠."
"수작 부리지 마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회사를 생각하셨다고... 쿤 씨 때문이잖아요. 대체 에드안 그 노친네한테 무슨 소릴 들은 겁니까!"
".....에드안 씨한테 따로 들은 말은 없습니다. 믿든 믿지 않으시든 이건 제 선택이에요. 번복하지 않을 겁니다."
"후.. 뭐 좋아요. 핑계 대는 게 제 일이니 어떻게든 쳐 내면 그만이죠. 하지만 기껏 키워놓은 바탕을 적당히 내세울 후임이 없는 때에 버리면 어떻게 되는 지는 이사님께서도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자왕난이라는 분, 이사님 지인이죠?"
"왕난 씨요? 네.. 사실 저보다는 쿤 씨의 지인에 가깝긴 하지만요."
처음부터 연예인의 길만 바라보고 있던 밤과 달리 사실은 연예계와는 손을 끊고 싶었던 쿤은 밤의 초대로 한국에 온 직후에는 다른 사람들 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생활을 했었다. 왕난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로 자하드의 사생아라는 소문만 무성한 채로 쿤 처럼 연예인이 아닌 다른 꿈을 쫓아 공부하고 있다고 했었다. 어머니가 한국계라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고도 이야기 했고.
"저희가 손을 뿌리쳤으니 자하드 쪽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 분을 대표로 한국 법인을 설립한다고 하더라고요?"
"왕난 씨가 대표라고요? 하지만 왕난 씨는..."
"어차피 꼭두각시겠죠. 자하드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여하튼 중요한 건 자하드 가의 인물들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엔도르시 씨가 특별한 케이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 같군요."
"......."
"이왕 쉬신다면 쿤 씨라도 확실히 잡아주세요. 그 도련님이 에드안의 약점이라는 걸 이젠 천하가 다 알테니까요."
*
"그 예민한 애가 몸 상태가 나쁘다고 여태 잠들어 있다니.. 수면제라도 먹인 건가요?"
"걔가 잘도 먹어주겠다. 그냥 감기약이야. 독한 놈이긴 하지만. 너야말로 왠일로 네가 내 일을 도와주나 했더니 자하드 녀석의 사주였군."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그래도 부탁하신 일은 확실히 처리해 드렸으니."
쿤 가문의 일원으로서 한국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던 쿤 마스체니 자하드는 그녀가 소집한 기자회견에서 폭탄발언으로 한국 연예계의 지각변동을 알렸다. 자하드가 한류의 본산인 한국에서 별도 법인까지 설립해 에이전시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재능있는 신인들을 대상으로 인력 풀을 확보하는 한편 자하드의 공주라 불리는 그의 양녀들로 하여금 소속 연예인들과 멘토링을 맺게끔 주선한다는 말에 기자회견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가득 채운 질의가 쏟어졌다. 이어 바쁘게 찍어낸 기사는 당장에 한국을 뒤집어놓았다. 공격적인 투자에 기대감을 안고 연습생이 되고싶다는 지원자가 구름처럼 모이는가 하면 관련 주식도 요동쳤다. 자하드와 FUG Ent. 경영주 일가의 악연에 대해 짚어내는 기사도 함께 쏟아졌다. 마지막 건은 자하드에게 좋을 것이 없는 일이겠으나, 자하드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에드안이 보기에는 왕난이었다. 차가운 이미지 일색인 자하드 일가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인간미 있고 가슴아픈 사연까지 탑재한 왕난은 자하드의 연예인이 아닌데도 연일 재조명되고 있었다. 기대감에 동정론,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자하드의 공주들의 물밑지원까지. 한국의 언론을 자하드가 정복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예면을 넘어서 전반적으로 말이다.
"FUG를 위해 움직이실 건가요? A.A.가 그 곳에 있으니?"
"흥. 내가 나설 일이냐? V가 알아서 하겠지."
"제 입장에서는 아버지께서 본래의 뜻대로 그 애를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장녀의 소신 발언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잘 익은 포도알을 입에 넣은 에드안은 그 별 것 아닌 행동 조차도 화보로 만들 뿐이었다. 그리스의 신, 디오니오소스는 곧 그의 가장 알 알려진 별명. 무표정이 오히려 신성해 보이는 그의 마법은 그가 왜 나이 50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연예계의 절대강자인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자하드도 V도 소싯적에 한 가닥 했던 인물들이건만 그들 모두가 무시할 수 없는 패권을 쥐고 있는 건 아직까지도 에드안이었다. 순수하게 연예인으로서의 천부적인 재능만을 따진다면 아직까지도 그를 이길 자는 태어나지 않었으니까.
"난 케케묵은 치정극에는 관심 없다. 자하드 그 자식도 잘 알고 있을 거야."
"......."
"네가 심부름 하나를 해 줬으니 심부름 값을 주자면, 어차피 이 바닥은 나이 어린게 최고 아니겠니. 우리 같은 뒷방 늙은이들은 아들들 재롱이니 보면서 대리만족할 때지."
V는 비올레에게 자하드는 왕난에게 걸어볼 밖에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 중 유일하게 자식들보다 나은 아버지인 에드안 마저도 이리 말한다면 말이다.
"그럼 아버지께서 걸어볼 아들은 역시 A.A.인 겁니까?"
"한다고 해야 지원도 하는 거지. 정말이지 그 성질머리를 그냥... 생긴 것만 봐도 이미 내 아들인데 왜 더 닮아가지곤!"
"자업자득이십니다."
"알아!"
여하튼 에드안이 중립이라면 마스체니 역시도 마음 편히 2세들의 전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연예계는 언제나 별들의 전쟁이라지만 후임 양성으로 눈을 돌렸던 자하드와 V의 격전이 또다시 펼쳐진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의동생들의 재롱까지 기대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그녀가 자하드 측의 지휘관으로서 한국에 머물게 된다면 FUG의 하진성 이사를 공략하기도 쉬워질 테고.
'유일한 변수는 A.A.로군.'
자하드의 최측근인 마스체니지만 그의 수가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를 헤아리긴 어려웠다. 지금에 와서는 연예인보다 거대 에이전시를 거느린 사업가로 더 유명한 자하드는 끝을 알 수 없는 주도면밀함으로 매번 마스체니조차 놀라게 만들곤 했으니. 자하드의 사생아로 한국에서 생활하던 왕난이 자하드의 패라는 것도, 그가 동생의 지인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된 마스체니로서는 그저 탄복할 밖에.
쿤 가문이시면, 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 그, 그, 러니까... 익셉셔널의 쿤이요.
병원에 실려갔다는 기사를 보고 걱정했다며 동생의 행방을 묻는 왕난은 자하드의 핏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곳을 찾았다. 선물을 비롯해서 에드안이 함께 있다는 말에 손까지 떨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에서 자하드와 같은 위엄은 찾아볼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만 에드안의 말을 들어보면 자하드 역시 그 점을 노렸다고 볼 수 밖에.
"그나저나 A.A.는 정신이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자하드의 왕자님께서 꽤 오래 기다리고 계신데."
*
익셉셔널의 인기가 대단한 만큼 생방송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쿤에 대한 기사는 그가 의식을 되찾고 퇴원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항상 포털의 최 상단에 위치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기까지 마음을 졸였기 때문에 날짜가 지났음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일 터. 이제는 퇴원을 했다기에 한 시름 덜어냈던 왕난은 어렵게 어렵게 병문안을 오자마자 걱정을 놓기는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열보다는 약기운 때문이라지만 잠든 모습이 썩 편해 보이지가 않았다. 왕난이 오기 전부터 에드안이 공을 들이고 있었으니 확실히 열은 많이 떨어진 것 같다만.
"...쿤! 정신이 들어? 나 알아보겠어?"
"자.. 왕난? 여긴 어떻게 왔어?"
"다행이다. 계속 눈을 못 뜨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 옷은 뭐고. 너도 학교 때려치웠어?"
"하하.."
걱정하느라 다른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던 왕난과는 다르게, 눈을 뜨자마자 교복이 아닌 정장을 입고 나타난 왕난이 그가 알던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는 걸 보면 쿤은 괜히 쿤 가문이 아니다. 에드안의 보석. 왕난에게 명령을 전하러 왔던 왕난의 생물학적 아버지, 자하드는 그를 가리켜 그렇게 불렀다. 에드안이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건 사실이지만 사업 수완이랄 게 없어 본의 아니게 한 우물만 파던 쿤 가문이 자하드와 비슷한 명성을 누릴 정도로 다른 방면으로도 성장한 건 아게로의 판을 읽는 식견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니 왕난의 파트너로도 적격이라고.
"때려치우다니. 그런 건 아니야. 내 사정보다 당장은 네 사정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쿤? 몸은 괜찮아? 이제 일어날만 하겠어?"
"내 사정이 뭐가 남았어. 너나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쿤은 연예인으로서의 스스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성심 성의껏 활동하고 팬서비스까지 선사하는 밤처럼 행동하는 건 성격상 불가능하고, 익셉셔널의 다른 멤버들처럼 후천적 노력으로 매꾸기에도 열정이 충분치 않다고 했다. 애꿎게도 특출난 외모라는 이 바닥 최고의 천부적 재능이 쿤에게 있었지만 위안이 될 수는 없었다. 동료들에게는 그조차 미안하고 아버지와 닮은 외모라는 것때문에 칭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버겁다고. 쿤의 유일한 일반인 친구로서 왕난은 쿤이 벌이를 위해서 연예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그가 있을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쿤은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였고, 왕난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로 이유는 정 반대였지만 같은 편이라고 느낄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던 한국에서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의 유대는 각별하다 여겨졌으니까. 그래서 결정한 일이었다. 반쪽자리 성공이라 하더라도 한 번 자신의 버렸던 아버지, 자하드가 손을 내밀었을 때 과거를 상기시키며 뿌리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이런 선택을 알면 쿤은 분명 쓸데없는 일을 했다며 왕난을 다그칠 터였다. 하지만 멱살을 잡힌 상황에서도 쿤이 잊지않고 왕난을 친구로 여겨주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왕난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자왕난?"
"아무 일도 없었어, 쿤."
"....."
"너도 나도 여전히 각자의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중인 거잖아. 나도 선택한 거야. 네가 먼저 떠나버린 다음에 너무 힘들어서 도망친 게 아니라."
가까워진 거리를 더욱 좁혀서 쿤을 품에 안은 왕난은 친구답게 쿤이 가장 걱정했을 부분부터 지워나갔다. 학교에서도 이렇게 있어본 적은 없지만 뜨거운 체온이라던가 보기보다 훨씬 가는 체형에 되려 조금 놀라면서.
"그리고 난 엄청 건강하다고? 아버지에게 내 힘으로 인정 받을 때까지는 절대 어떻게 되지 않을 거야."
"뭘 어떻게 안 돼 멍청아. 내 손에 죽을텐데."
"억!"
"네 힘으로 인정 받으려면 자하드한테 뭐가 됐든 일절 받지 말았어야지."
"어떻게 아는 거야, 너는? 내내 아파서 누워 있었다고 에드안 씨가 그러던데."
"그 인간 말고 너한테 돈을 쥐어줄 인간이 또 누가 있냐? 보면 바로 견적 나오지."
물론 환자에 가녀린 몸의 아이돌이라고 해도 익셉셔널의 격한 안무와 한국 예능의 강행군을 버텨낸 쿤은 만만히 볼 인물이 아니라서 바로 명치에 주먹질을 박은 쿤으로 인해서 왕난은 꼴사납게 나동그라져 몸을 웅크렸다. 무연고인 왕난에게 큰 변화를 줄만한 인물은 확실히 자하드 밖에 없긴 했다. 왕난의 어머니는 왕난을 근근히 키워내는 게 고작인지라 아들의 성공을 한결같이 바랐을지는 몰라도 그녀 자신의 능력으로 아들의 소망을 이뤄주긴 힘든 상태였으니.
"지원을 받은 건 맡지만 아버지한테 내 모든 걸 맡기겠다는 건 아니야. 아버지는 네가 FUG와 다시 계약하기 전에 내 회사로 데려오라고 했지만 난 그럴 생각 없거든."
"회사?"
"응. 기획사. 그쪽에서는 에이젼시라고 부르더라고."
"네가 기획사를 운영한다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이유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FUG가 싫으신 것 같아."
이제야 바닥에 바로 앉으며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왕난을 쿤은 처음에는 놀란 눈으로 나중에는 뜯어보는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자하드가 한국에 회사를 세웠다. 동종 업종으로 FUG를 행해서 정면 도전을 예고한 셈인데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그 수장으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그의 사생아를 세웠다는 게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기업의 오너가 누구인지는 그의 역량으로 보아 중요치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긴 하지만 왕난의 사정을 알고 있는 밤이나 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전개가 될 게 분명했다. 왕난이 그의 입으로 계약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망정이지 의지할만한 사람이 둘 밖에 없던 교실에 왕난을 홀로 남겨둔 게 늘 마음에 걸렸던 쿤은 왕난의 첫 부탁을 쉽게 거절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할 수 없었으니.
".....네 계획은 뭔데?"
"무슨 계획?"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고 자력으로 인정받을 계획 말이야."
"아직 생각해 둔 건 없는데.."
"그럼 내가 하자는 대로 해 볼래? 날 믿을 수 있겠어?"
*
이제 개인 활동은 전부 그만 두겠다고 선언하긴 했지만 최고의 아이돌 그룹, 익셉셔널의 멤버로서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했기에 비올레의 귀가가 빠른 시간에 이루어 질 수는 없었다. 쿤과 소꿉친구이고 덕분에 에드안과도 특별한 허물이 없는 라크를 통해 왕난이 오늘 쿤의 병문안을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밤은 마음이 급했다. 속옶이 왕난과 함께 바나나를 나눠먹고 왔다는 라크가 오늘의 밤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밤이 아는 왕난은 그렇게 약삭빠른 인물이 아니라지만 한성의 경고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왕난이라면 쿤이 흔들릴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쿤은 확실히 사람 사귀는 게 서툰 면이 있었지만 대신 알고 지낸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라크가 그러했고 밤과 다른 익셉셔널의 멤버들, 그리고 왕난이 그랬다. 특히 왕난은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서 쿤과 빠르게 가까워 졌다는 게 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쿤이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왕난의 제의를 거절하기 어려울 테니까. 첫 만남 때 그렇게 에드안을 어려워 했었나 싶게 초인종부터 누르고 보는 밤을 에드안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봤다. 바로 맞은 편이 본가건만 에드안의 집 대문 앞에 주차를 시킨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마음이 급했나보지.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물론 에드안은 첫 사랑에게 대차게 차인 기억을 안고 아직까지도 연적에게 앙심을 품은 자하드의 순정에는 요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보란듯이 자신의 딸내미를 강탈한 자하드에게 아무 감정이 없을 수도 없었다. 자신이 주지 못한 부정을 자하드가 대신 주었다면 모를까, 연예계에서 성장할 밑거름은 마스체니가 천부적으로 가진 것 아니던가? 그걸 자신이 준 양 기만하다니. 자하드도 에드안의 심술 정도는 받아 줄 각오를 하는 게 맞다.
"들여보내라. 아게로의 병문안일테니 그 애한테 안내해 주도록."
FUG를 위해 움직이실 건가요? A.A.가 그 곳에 있으니?
"집을 오래 떠나 있어서 우리 큰 딸이 몰랐나본데, 지금 쿤을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라 아게로거든? 자하드."
이런 걸 쓰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