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탑

하루 글감 2020.9.16 - 25

신의 탑/하루 글감






9.16 - 기념

축하해. 오늘만 해도 십 수번은 들은 인사다. 결혼 소식을 알린 이래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쑥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답하면 짖궂은 동료 몇몇은 총각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조만간에 약속이 집힐듯한 분위기였다. 조만간 보자는 인사에 애매한 웃음으로 일괄하던 밤은 혼자가 되자 가면을 벗듯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포켓에서 라크의 이름을 찾아두긴 했지만 밤은 그에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릴지 말지에 대해서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라헬이 밤을 떠난 바로 다음 날에 밤이 시험의 층 동료들과 리크, 그리고 쿤을 만났던 것처럼 라헬이 돌아온 바로 다음 날에 밤은 쿤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둘이 딱 재회 1년만에 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밤의 결혼식이자 앞으로 결혼기념일이 될 날짜는 쿤을 찾다 지침 그의 지인들이 기일 삼고 있는 날이기도 할 것이다. 거의 1년을 채워가지만 여전히 쿤의 행방을 쫓고 있는 라크가 밤을 축하해 줄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설령 라크가 괜찮다 해도 셋 중에 자신만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밤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마 이 기분도 밤의 기념일마다 찾아오겠지.








9.17 - 느긋함

이번엔 꼭 다른 일 말고 쉬라고 동료들의 부탁을 들은채도 하지 않았더니 등대를 압수당하는 극단적인 처지에 놓였던 쿤은 간신히 동료들의 잎에서 기능의 대부분을 한시적으로 잠근 후에야 등대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10가문의 육체는 튼튼해서 별 문제 없다고 몇번이나 해명했지만 같은 10가문, 그것도 랭커의 힘이 몸 속에서 충돌한 여파로 두어번 쓰러지고 나니 쿤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하튼 억지로 맞이하게 된 여유지만 정말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걱정 없이 푹 쉬는 게 차선이라 실로 오랜만에 쿤은 자신의 개인 벙커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것을 찾았다. 간접조명밖에 없어 실내는 아두운 편이었지만 농도 짙은 신수의 수조가 곳곳에 자리해 있어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자주 관리할 수가 없으니 고가의 신해어는 쿤의 궁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지만 무리지어 유영하는 신해어의 무리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쿤을 반겨주었다. 물빛이 아롱지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은 쿤은 느긋하게 이 시간을 즐겼다. 몸의 피로를 풀고, 이어 향긋한 차로 마음을 달래야지.






9.18 - 옳은 일

"왕은 탑 전체를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존을 택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입으로 자기 자랑을 한다는 게 흠결이다만 글자 그대로 왕인 그에게 반박할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게로 또한 그의 배려 덕에 태어나고 자란 것이 되는 걸까. 하지만 곧 소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배려라니. 그의 인생은 그리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축복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왕을 위해서 싸우는 자들을 옳지 못하다 할 수는 없을테지."
"........"
"항변해 보거라."







9.19 -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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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 감동

스물다섯번째 밤은 먼 곳을 보고 있는 푸른 동공을 그의 옆에서 비껴보았다. 언제 보아도 빨려들 것 같은 색채라고 생각하면서. 쿤은 라헬이라는 길잡이 별을 잃은 자신에게 기꺼이 새로운 안내자가 되어 탑을 올랐다. 자신에게 수없는 감동을 선사한 그에게 밤은 왜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줄 수 없는걸까. 그 눈이 온전히 자신만을 향해있지 않다는 걸 느낄 때마다 불온한 감정들이 요동쳤다. 부족한 자신이 그를 가지려면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9.21 - 줍다

"버리긴 쉬운데 다시 주우려니 간단치 않군."

맹렬한 투기로 자신을 쏘아보는 같은 색의 눈동자에쿤의 기주는 호탕하게 웃었다. 예사것이었다면 그간의 삶이 개차반이었을지라도 가주가 손을 내미는 순간을 놓칠 리가 없을 터였다. 가주를 탓하는 것조차 잊었을테지. 그 손을 잡자 마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하지만 가주가 주지 않은 삶을 개척하는 것이야 말로 에드안이 찾는 옥석. 얼마만의 성공인지 세기도 어려울만한 세월 끝에 드디어 가려낸 하나에 그는 실제로도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을 뿐이지."







9.22 - 주장

하지만. 그 단어를 듣자마자 쿤은 데자뷰를 느꼈다. 순해보여도 밤은 자기 주장을 굽히는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모양이다. 시시각각으로 위협이 다가오는 마당에 자신의 동료 중 누구라도 그의 눈 밖에 있으면 불안한지 팀을 난 자는 말에 밤이 가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예상했던 일에 준비가 없다는 건 용납되지 않는 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체념한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 일은 분명 도박이 될 것이다. 쿤은 이미 밤에게 배팅한 상태이므로 자신에게는 무엇도 걸지 않았다. 그렇기에 쿤이 질 일은 없었다. 아마도.








9.23 -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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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 내버려두다

사실 하츠는 꿈에도 몰랐다. 검술을 배워보겠냐는 질문에 그 쿤 아게로 아그니스가 흔쾌히 하겠다고 할 줄은. 그는 단지 싸울 수단을 하나 늘리는 의미였겠지만 이를 빌미로 쿤이 비는 시간마다 딱 붙어있는 화이트가 더 문제였다. 게다가 꼭 쿤의 동료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세를 잡아준다느니 급습을 하고 일으켜 준다느니하면서 쿤의 몸에 손을 댔다. 동료들 중에서는 장신인 편인 쿤이지만 알벨다를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조각을 되찾은 화이트는 단련된 전사이기까지 해서인지 슬레이어에게는 댈 게 아니었다. 남이 보면 분명 검술 교습을 가장한 성희롱이건만 동료들의 상태는 칼같이 재는 쿤이 왜 그걸 모르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주제에 의외로 끈기있게 배워나가는게, 검사의 길을 걷고 있는 하츠로서는 더더욱 내버려두기 어려운 그림을 만들었다. 하츠라고 수련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따라잡힐 것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적이었던 자에게 거리낌없이 검술을 사사받는 게 아니꼬와서였을까? 여하튼 하츠는 행동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9.25 - 주목

모두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는 걸 꿈꾸는 사람은 종종 있지만 자연스레 이목을 끄는 일을 달갑지않게 여기는 축도 있었다. 유라가 그런 케이스였다. 선별인원들 사이의 아이돌로 살아왔지만 그녀는 생존을 위해서 그 길을 걸었을 뿐 그녀 자신이 그 길을 원했던 적은 없었다. 라헬은 그런 그녀가 밤이라는 자와 닮았다고 했다.

"라헬 씨는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요?"

유라의 질문에 라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싫어한다는 것과 다른 의미로 느껴져서 유라로서는 안심되기도 하는 반응이었다. 유라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줄 별은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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