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글감 2020.10.26 - 11.5
신의 탑/하루 글감
10.26 - 핑계
"제대로 된 핑계를 대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사실은 아게로가 어떤 대답을 하든 들어줄 생각이 없었을 것일텐데 천연덕스럽게 그런 충고를 건네며 에드안은 어린 아들을 안아올렸다. 아직은 아버지의 반도 되지 않는 키의 꼬마는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가 영 고깝지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를 뿌리친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는 아게로가 수업을 몇 번 빼먹었다고 해서 직접 훈계할 만큼 자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갑자기 아게로에게 특혜를 베풀기 시작한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린 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인지라 꺼림찍한 기분 마저도 풀어놓지 못할 뿐이지.
"이 아버지가 싫으냐?"
"그럴 리가..."
"당연한 일이지. 그래, 그 감정을 잊지 말거라."
10.27 - 괜찮은 척
"쿤!"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수는 바쁜 걸음으로 쿤의 뒤를 쫓았다. 쿤은 괜찮은 척의 달인이라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 바로 손을 쓰지 않으면 그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었다. 밤의 동료들 중에서는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축인 쿤이게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수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로바로 그를 챙겨줘야 한다고 믿었다. 빠른 회복력이 다가설 기회를 묻어버리기 전에, 도움이 필요했던 순간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10.28 - 비상구
수위 비공개
10.29 - 소중하다
"가장 소중하다는 건 그 다음에 비해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일까."
무게가 무거운 질문이었다. 짙게 퍼져가는 불안감. 설상가상으로 지금 밤의 곁에는 위기를 헤쳐나갈 묘안을 제시해 주었던 쿤도 없었다. 내키지 않아하는 그의 등을 떠민게 밤이었다. 그는 밤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 그의 고민거리가 먼저 해결되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생긴 부재가 마음에 걸렸다. 왜 자신은 같이 가 주겠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쿤이 그러했듯 자신도 그의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는데.
"괜찮다는 말을 그리 쉽게 믿을 정도라면, 별 의미 없는 말이었나?"
"쿤씨를 어떻게 한 겁니까."
"......"
"돌려주세요, 탑의 왕!"
10.30 - 용감함
수위 비공개
10.31 - 함정
수위 비공개
11.1 - 좋은 점
Q. 비선별 인원과 함께 여행해서 좋은 점은?
A1. 드물기에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고집이 세서 피곤할 때도 있긴 하지만.
A2. 그 녀석은 좋은 부하이지 사냥감이다.
A3. 그냥 얼굴이 취향이야.
Q. 자하드의 공주와 함께 여행해서 좋은 점은?
A1. 글쎄. 별로 공주님처럼 굴질 않아서.
A2. 둘 중에 누굴 말하는 거야?
A3. 음................ 빠른 이동수단(=봉봉) 아닐까요?
(아름다운 공주님과 함께하는 일이면 뭐든 좋다고 해야지!!)
Q. 10가문의 일원과 함께 여행해서 좋은 점은? - 쿤의 경우
A1. 저는 정말 여러가지로 도움 받고 있어요. 다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로요.
A2. 바나나!
A3. 뭐니뭐니해도 풍족한 물자 아니겠어.
Q. 10가문의 일원과 함께 여행해서 좋은 점은? - 란의 경우
A1. 괜찮은 라이벌이 있다는 거?
A2. 든든한 친구라고 생각은 하는데......
A3. 월급!
11.2 - 무심하다
수위 비공개
11.3 - 실수
너무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인간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한다. 한성의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자신이 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표류하는 부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실수 한번에 이리 허망한 끝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아니 따지고 보면 한성의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탑의 변화를 위해 아예 탑을 무너뜨릴 괴물을 끌어들였고, 그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단체에 몸을 담았으며, 또 다시 마음이 쓰일 인연을 만들고 말았으니.
"한성아!!"
제게 오시면 안 됩니다, 에반켈님. 그 목소리는 의미를 전달할만한 힘 없이 흩어졌고,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닫혀갔다. 한성을 일컬어 늘 부하라 했지만 그녀의 유일한 부하이니만큼 에반켈의 심중에서 한성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 지는 한성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이미저도 실수일까나?
'아니면... 이기적인 제 본심일까요.'
그녀가 살아있어 다행이라는, 자신이 그녀의 끝을 보진 않아 된다는 안도로 삶을 마치게 되었으니.
11.4 - 중간
혹자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들 말했지만 이수의 팀에는 중간을 선택할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너넨 잠깐 빠져 있어."
엔도르시의 이야기를 듣고도 죄다 무기를 뽑아들었으니 말이다. 팀원들의 뜻이 그러할진데 팀 리더가 혼자 살겠다고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수가 그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수가 그들에게 의지했던 연고로.
"에고에고. 또 신해어 싸움에 등 터지겠군."
자하드의 공주들이란 선별인원들을 내탑에서는 그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건만, 수시로 싸워대니 소시민인 이수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만한 민폐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첫 걸음부터 그들은 탑에 몰아칠 폭풍에 올라탄 것을.
11.5 - 사실
사실 밤 스스로도 자신의 정의가 모순 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희생한다해서 모두를 지킬 수 없으며, 밤이 원하는 세상이 다른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미래라는 것도. 그렇기에 소중한 것들을 가능한 한 많이 지키는 것으로 기조를 바꾼 것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여러 법칙들은 밤에게 의문을 남겼다. 밤이 곁에 둔 자들이라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싸워왔는데 어째서 그는 폭군이라 불리는가? 어째서 반대편에 선 자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가? 자하드의 정의라 함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모든 것의 탑의 위에 있다기에 밤은 여전히 승탑 중이지만 깊어진 의문은 어떤 침전물을 남겼다. 과연 자신은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혹은 탑의 다음 폭군인가.
지금까지 하루 글감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저는 완성된 글이 아닌 기분이라 단문 연성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스스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어서 도전한 하루 글감이었습니다만, 자기복제가 더 심각해진 기분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숙제처럼 느끼다보니 연재물에 소홀해지는 경향도 있었고요.
처음에 장르를 파면서 잡아둔 연재물 구상이 세 개였는데 다행히 하나는 이미 마쳤고 두번째도 거의 끝나갑니다.
세번째도 공개할지는 아직 결정을 못했지만 앞으로는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게 기정 사실이라 가끔씩 단편이나 들고 오는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원작도 아직 휴재 중이고 한데 여기까지 부족한 글을 읽으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긴 글로 뵙겠습니다.
'신의 탑 > 하루 글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 글감 2020.10.16 - 25 (0) | 2020.11.05 |
---|---|
하루 글감 2020.10.6 - 15 (0) | 2020.11.05 |
하루 글감 2020.9.26 - 10.5 (0) | 2020.10.14 |
하루 글감 2020.9.16 - 25 (0) | 2020.09.25 |
하루 글감 -2020.9.6 - 15 (0) | 2020.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