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탑

Track 01

신의 탑/Exceptional










“오늘은 진짜 고마웠어.”

 점심도 얻어먹고 선물이라며 차량용 방향제까지 받았는데 황송하게도 숙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밤은 추가로 감사 인사를 한번 더 받았다. 밤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차를 태워 준 것에 대한 보답이겠지만 쿤의 성격상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을 할 때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데, 콩깍지가 씌인 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귀엽게 보여서 문제다. 다른 사람들은 인사가 성의 없다며 오히려 잔소리를 하던데.

“뭘요. 선물도 받았고 점심에 저녁까지 얻어먹게 생겼는데. 게다가 쿤씨는 아직 면허도 없잖아요? 제가 태워주는 게 당연하죠. 같이 쇼핑했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건 쿤씨가 매니저 형을 불러서 따로 간다고 해 봐요. 금방 불화설 터질걸요?”

“그건 그렇지만.. 나도 어서 면허라도 따야 하는데.”

“올 해부터 딸 수 있잖아요? 어려운 건 아니니까 쿤씨라면 금방 할 거에요.”

 밤을 제외하면 평소에 서로 반말을 쓰기 때문에 오랜 팬이 아니라면 익셉셔널 멤버들의 나이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예상과는 달리 팀에서 막내는 밤이 아니라 쿤이다. 비율이 좋아서 원래 신장보다 커 보이는 데다가 못 하는 게 없는 이미지라 쿤이 면허가 없어서 운전을 못한다고 하면 동료 연예인들조차도 깜짝 놀라곤 한다. 데뷔하고 2년 여가 흘렀으니 그도 곧 운전면허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겠지만 의외의 귀여움을 주던 요소가 사라진다니 밤도 쿤의 팬들만큼이나 그 사실이 못내 아쉽다. 이렇게 가끔 오는 행운이 더 드물어 진다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면허야 그렇겠지만... 어? 내가 이것도 샀던가?”

“끼워주신 거 아닐까요? 다 같이 먹을 거라고 잔뜩 주워담았으니까요. 오늘 포식하겠는데요?”

 돌아오는 길에 숙소에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과도 나눠먹으려 간식을 잔뜩 샀는데, 분식집 주인분께서 뭔가 서비스를 주셨나보다. 종이봉투들을 들춰보던 쿤이 이제야 덤을 발견한 모양이고. 신호에 걸렸을 때 밤도 그 쪽을 흘깃 보니 김밥 두 줄이 따로 포장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떡볶이와 각종튀김, 이수를 위해 특별히 순대까지도 샀지만 김밥은 그냥 지나쳤었는데 이렇게 본의 아니게 골고루 먹어볼 기회가 생겨서 기분이 좋다.

“그러게.. 이수 녀석은 컴백 전에 급조 다이어트 한다고 했는데 이런 거 사 왔다고 뭐라고 하는 거 아니겠지.”

“이수씨라면 말은 그렇게 해도 맛있게 드셔주실 것 같은데요.”

“그게 문제 아닌가? 난 두 배로 억울하다고.”

“하하...”

 분명 밤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억울했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먹고 싶어서 사 온 거니까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나보다. 뭔가에 빠지면 무섭게 집중하는 밤과 달리 쿤은 늘 주변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쓰니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겠지. 흔히 아이돌이 아닌 본래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쿤의 성격에 대해서는 재수가 없다거나 오만하다면 식으로 박한 평가를 내리곤 하는데 정말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 같으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을테니까, 밤은 그 사람들이 외려 쿤을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대신 변명을 해주면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밤의 진심까지도 매도당하기 십상이라 오래지 않아 그만 두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많이 먹어야죠. 컴백하면 이수씨 다이어트도 금방일걸요? 쿤씨도 좀 잘 드시면 좋을텐데요. 쓰러졌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알아요?”

“뭐 별일이라고. 며칠 밤 새면 다 그렇게 되.”

“밤을 새요? 왜요?”

“이번에 좀 귀찮은 일을 맡게 됬는데 그렇다고 대충 하기엔 자존심 상하는 종류라서 말이야.”

“네?”

“요컨데 너무 열심히 해 버렸다는 거지. 아무튼 그 다음에 병원에도 다녀왔고 지금은 멀쩡해.”

 밤의 아버지이자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미남 배우라는 V가 쿤의 아버지인 에드안과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에 아들들의 인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지만 솔직히 밤은 쿤의 집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에드안의 화려한 여성편력 덕분에 쿤의 형제가 상당히 많다는 건 꼭 밤이 쿤의 친구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관심이 있는 누구나가 알 법한 이야기였다. 그 중 몇몇은 쿤과 사이가 나쁜데, 쿤은 그게 에드안이 그들을 부추긴 영향이라고 했다. 쿤이 에드안의 뜻을 저버리고 한국에 머무는 게 아니꼬와서 별 시답잖은 사주를 한 것이라고. 여하튼 그들과 엮이면 피곤한 일이 생기기 십상이니 쿤은 그간 계속해서 독립을 노려왔는데 에드안의 허락을 받기가 어려운지 성공하진 못했다. 그 쪽의 법으로 미성년자는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독립이 어렵다는 것 같았다. 때문에 이번에 집을 구한다는 것도 곧 성년이니까 드디어 성공한 것인지 쿤의 독단인지 아직 확신이 없는 밤이지만 그가 한국에 계속 머물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럼 에드안이 어느 날 갑자기 그를 데려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좀 덜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밤이 그런 걱정을 하는 지도 모를 쿤은 숙소로 쓰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 밤이 주차를 마치자 아까 챙겨두었던 순서대로 짐을 들고 그를 따라 내렸다. 먹을 걸 빼면 무거운 게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양 손 가득인 동행인을 두고 혼자 빈 손으로 걷는 건 민망한 일인지라 밤은 짐을 나눠달라고 했다. 굉장히 소소한 일상이지만 이런 일을 단 둘이 처음 한다는 건 의미가 남달랐다. 혼자서는 못한다는 이야기를 절대 입에 담지 않는 그와 함께하려면 이렇게 틈이 보일 때 잽싸게 끼어들어야 한다. 그걸 잘 해냈다는 점에서 밤은 오늘의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따뜻하게 입는다고 두꺼운 코트에 목도리까지 꽁꽁 싸맨 쿤이 귀여웠으니까.

“아, 맞다. 들어가기 전에 줄 거 있어요, 쿤씨.”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밤은 야상의 주머니를 뒤적여 손바닥만한 병을 하나 건넸다. 정전기를 없애는 물건인데, 둘이 다녀온 곳에서 파는 물건 답게 유기농 성분이며 향이 고급스럽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계통의 향을 써 본 적이 없는 쿤이지만 부드러운 느낌의 비누향은 정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물건이었달까?

“애용하시잖아요. 외국에 계셔서 생일 선물도 따로 못 드렸고 해서 하나 샀어요.”

 객관적으로 이건 고맙다고 해야하는 상황이다. 쿤도 당연히 그리 판단하고 있었지만 작은 유리병, 이어 다정하게 웃고있는 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많은 생각이 덮쳐와 순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생일 같은 걸 누가 챙겨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겨울 즈음엔 늘 한국을 떠나 있었던데다가 자신의 수많은 형제들은 각별한 몇을 제외하면 생일 같은 걸 기억할 리가 만무했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에드안 마저도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철창같은 본가에 자신을 가두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지 진짜 쿤의 마음을 헤아려주진 못했다. 항상 그랬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크기만 큰 집에서 쿤이 마음을 기댈만한 구석은 쌍둥이 누나밖에 없었다. 생일 선물이란 걸 받아본 것도 그녀가 있었던 때가 마지막. 그랬던 누나마저 사라지고 난 후엔 그 집에서 정을 붙일만한 게 쉬이 생기지 않았다. 가족과도 그런 관계인 마당에 타인과는 더 벽을 느꼈다. 그나마 먼저 물어왔기에, 생일을 이야기 해 준 것도 밤이 처음이었고 선물을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연예인으로 살게 되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수한 선물을 받긴 했지만 이렇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서라는 느낌이 나는 물건을 받아본 일은 없었으니까.

“고마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음에 정신을 차린 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밤의 등에 대고야 겨우 감사를 전할 수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어차피 얼굴을 마주 대한 상황에서는 쿤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밤이지만 목소리에 실려있는 감정이 밤의 기대와는 사뭇 달라서 뒤를 돌아본 밤은 그가 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보다 손이 빨라 빈 왼손이 쿤의 얼굴을 감싸자, 촉감에 놀랐는지 쿤이 크게 뜬 눈을 들었다.

“왜 그러세요? 제가 있는 걸 또 드렸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똑같은 게 있어도 네가 준 게 더 소중하지.”

“하지만 표정이 어두우셨어요.”

“아.. 잠깐 누나 생각이 나서.”

“.......”

“어서 들어가자. 음식은 식으면 맛 없잖아.”

 가족들에게 정이 없는 쿤이 형제를 가리켜 형이나 누나, 여동생 등과 같은 가족적인 호칭을 써 주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쿤이 누나라 지칭할만한 여성은 단 한사람.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의 쌍둥이 누나다. 그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녀를 떠올리는 일이 유쾌할 수는 없겠지만 쿤이 그녀와의 추억을 그릴 때, 차가운 분위기가 누그러진다는 것만은 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밤의 선물은 합격이었다는 뜻일까나?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밤은 쿤의 새하얀 뒷 모습을 따랐다. 밤의 선물의 어떤 부분이 누나를 떠올리게 만든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환하게 웃어보일만큼 멋진 선물을 하겠다는 도전정신도 불태우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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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쿤의 예상대로 이수가 좀 툴툴거리긴 했어도 간식은 대 성공이었다. 컴백 직전까지 연습으로 몰아치다가 딱 하루 주어진 휴식시간이지만 밖으로 돌진 않는 성격들인지라 다들 숙소에 틀어박혀 있던 마당에 얻은 뜻밖의 선물은 격렬한 환영을 받았다. 한번의 외출이 녹록치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처지라 얼마만에 먹어보는지 모를 분식이 기꺼운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츠조차도 검도를 배우기 위해 여러 도장을 전전하던 시절에 가격이 저렴해서 즐겨 먹었다니 끝난 이야기 아닌가? 멤버들이 분식 파티를 벌이는 동안 새 모이만큼 주워 먹고 먼저 씻겠다며 방으로 들어간 쿤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떡볶이 국물 한 방울까지 먹어치운 밤이 방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잠들어 있었다. 데뷔 이래로 밤은 늘 쿤과 같은 방을 사용했지만 쿤이 밤보다 먼저 잠드는 일은 손에 꼽는지라 눈 앞의 일이 낯선 밤은 이미 꿈나라에 가 있는 쿤에게 진짜 자느냐고 묻기까지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언젠가의 조공이었던 연회색 이불에 휘감긴 채로 잠든 쿤의 고른 숨소리가 바로 그 대답이었을 테니까.

“아, 밤. 너 내일 뒷풀이 가면 나 엔도르시 사인 한 장만. 얼라? 쿤은 벌써 자? 별 일이네. 피곤했나?”

“그렇게 여기저기 끌고 다니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요.”

“에?”

“코스는 제가 짰거든요.”

“무슨 쇼핑하는 데 그런 거창한 준비를 해...”

“아프셨다니까 더 짧게 가야 했을까요?”

“아... 실장님이 내일 좀 보자더니 그것 때문인가?”

“유 실장님이요?”

“쿤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나한테 전화 왔었거든. 너희 없을 때.”

 유한성 실장이라면 학을 떼는 쿤이 아무 반응이 없는 걸 보면 그는 잠든 게 확실하다. 내일 실장의 호출 사실을 알게 되면 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걱정된다만 드라마 종영 뒤풀이가 있는 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한성도 그걸 알고 호출을 내일로 미룬 것이겠지. 그는 밤이나 다른 멤버들에게는 공평한 편이었지만 쿤에게는 유독 냉정하게 구는 면이 있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유명한 쿤 에드안의 안티라 아들인 쿤도 고깝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보다. 회사에는 한성만 있는 게 아니고 이수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냐마는 항상 밤이 없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밤에게는 좀 불만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쿤이 한성에게 유독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의 편애를 받고 있는 밤이 나서는 편이 제일 문제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텐데 말이다.

“유 실장님이 너무 쿤씨를 괴롭혀서 쿤씨가 팀을 나간다거나 하면 어쩌죠?”

“글쎄. 우리가 열심히 말리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한성이 쿤을 괴롭히는 이유는 밤이지만 다른 사람의 시꺼먼 속내를 들여다 보는 일에 유독 약한 밤이 스스로 그 사실을 깨우치려면 한참 멀었다. 밤이 깨닫느니 쿤이 성불하는 게 먼저일 거다. 정말로.

“그나저나 녀석답지 않게 우리가 이렇게 떠드는데도 잘 자네. 시차 적응이 덜 됐나?“

 익셉셔널에 외국인 멤버는 쿤만 있는 게 아니지만 바로 옆인 일본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페인의 시차는 차이가 심하니까. 당장은 옆에서 누가 떠들던 잘 자고 있는 쿤이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어찌 될 지 모르니 밤과 이수는 곧 방을 나와 문을 닫아주었다. 아직까지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익셉셔널의 숙소는 회사에서 임대한 평범한 아파트로 제일 큰 방에 스텝들과 라우뢰가 함께 지내고, 하츠와 이수, 그리고 밤과 쿤이 각각 하나의 방에 함께 지내고 있다. 독방인 줄 알고 좋아했던 라우뢰는 가장 번잡한 방에서 지내게 된 것을 알고 뒤늦게 자비를 들여 수면캡슐을 하나 들여 놓았는데 다행히 이후로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숙소는 잠만 자는 곳인지라 회사에서 넣어준 기본적인 가구 이외에 멤버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될만한 틈은 거의 없지만, 팬들이 준 선물 중 선별된 것이라던가 생활 필수품이라는 이유로 소품 중에서는 간혹 개성이 뚜렷한 물건들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도 멤버 의 이름이 적힌 선물과 팬레터 보따리가 도착해 있는 거실은 그 개성의 집합소로 이미 자러 들어간 지 오래인 라우뢰와 쿤을 제외하더라도 입고 있는 의상만으로도 존재감은 뚜렷한 세 사람이 모여 있었다. 비교적 평범한 후드티와 면 바지 차림의 밤과는 달리 하츠는 팬이 선물로 준 초록색 공룡 잠옷을 걸치고 있었고 이수는 오늘도 당당한 보랏빛 츄리닝 차림이었는데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재질이 벨벳이라 상당히 눈에 띄었다.

“쿤씨가 일찍 잠들어서 그런데 저 바깥 욕실에서 씻어도 될까요?”

“어어. 난 상관 없어.”

“괜찮다. 나도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넌 또 어디서 그런 옷을 주워 입었냐?”

“팬 분께서 주신 감사한 선물이다. 겉모습만 보고 모욕하지 마라.”

“모욕이라고 보다는 뭐랄까... 네 팬분들은 좀 대단한 분들인 것 같아.”

“그렇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

 뭔가 대화가 잘 풀리고 있지 않은 기분이지만 밤이라고 통역을 잘 해낼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욕실 사용 허락을 얻어낸 것으로 만족하기로 할까? 이수가 고집하는 츄리닝을 제외하면 다른 데에는 까다롭지 않은 두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욕실에는 딱히 밤의 시선을 끄는 물건이 없었다. 아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면 그건 하츠의 잠옷처럼 어느 팬의 선물일 것이다. 자신의 팬을 자처하며 보내온 선물을 하나도 허투로 대하지 않는 하츠는 그것이 아무리 괴상한 것일지라도 꼭 끝까지 사용을 하니까 말이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그의 팬들이 점점 기이함의 레벨이 높은 선물을 보내온다는 게 익셉셔널의 최근 고민거리지만 사람의 성격이란 그리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수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심하다 싶은 것은 거르는 기준이 있어서 하츠의 경우처럼 팬의 성향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오히려 그가 직접 고른 것들에 컬쳐쇼크를 느낄 일이 종종 있어서 문제지. 개인 사물도 없거니와 팬들의 선물을 바로 본가로 보내버리는 라우뢰는 남는 시간을 모조리 잠에 투자하는 지라 숙소에서는 마주칠 일조차 거의 없다.

“밤, 네 선물은 너무 많아서 팬레터만 빼고 바로 본가로 붙일까 물어보는데?”

“네. 제가 나가서 대충 나눠 놓을게요. 죄송해요, 이수씨.”

“네 인기가 우리 인기인데 뭘. 그래도 이번엔 좀 나아.”

 아마 스캔들의 영향이겠지. 밤의 선물은 항상 독보적인 양을 자랑했는데 최근에 터진 염문설의 영향으로 잠시 밤의 인기가 주춤한 게 선물의 양으로도 드러난 것 같았다. 해도 회사측에서 금방 해명을 했고, 한성이 재빨리 컴백 소식의 엠바고를 풀면서 진화가 잘 되었으니 조만간 원래대로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컨셉이 정해질 때까지 길렀던 머리를 다시 단정하게 다듬고 나니 씻는 게 확실히 수월하고 가뿐해진 것을 느끼며 샤워가운을 걸친 밤은 파자마로 갈아입고 나와 스텝들과 함께 거실의 선물 분리를 시작했다. 밤도 본가가 가까워 대부분의 선물은 그 곳에 보내 놓는 편이고, 이수와 라우뢰도 비슷하다. 본가에 보내는 게 녹록히 않은 쿤과 하츠가 숙소의 공간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 차원인데 이게 숙소의 정리에도 훨씬 편하다. 다만 팬들이 준 선물만으로 한국 생활을 영위하는 하츠와는 다르게 쿤은 선물 확인은 해도 사용하는 일은 드물다. 타인이 쿤의 취향에 맞는 선물을 하는 일이 그만큼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도 사용하기 보다는 모셔두는 성격이라 쿤의 팬들은 하츠와 같은 선물 인증을 바랄 수가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선물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다들 궁금해 하지만 글쎄. 그건 밤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흠.. 이거 식탁에 올려둘까요? 다 같이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뭔데? 초콜릿 같은 거야?”

“누가 크래커랑 머랭 쿠키라는데요?”

“뭔진 모르지만 맛있을 것 같은데? 너한테는 먹을 게 유독 많이 들어온다? 선물 자체가 많아서 그렇게 느끼는 건가?”

“제가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해서가 아닐까요...”

“그래도 살 안찌는 걸 보면 역시 축복받은 유전자구나. 왁! 그거 엄청 비싼 거 아냐? 명품이잖아?”

 곧 이어 자신은 옷걸이가 안 되어 그런 선물은 못 받는다며 한탄한 이수지만 줄을 잇는 고가의 디제잉 장비들에 부러움은 순간이다. 팀에서 유일하게 셀프 프로듀싱 실력을 인정받는 멤버인데다가 도구를 쥐어주면 반드시 그 이상을 보여주는 멤버이니 이런 기술지원을 받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절대적인 수는 적다고 해도, 군것질 거리만 잔뜩인 밤의 선물이나 별천지인 하츠의 선물들에 비하면 확실히 부러운 구성이다. 물론 하츠는 밤과 같은 생각을 할 위인은 아니라서 문제 없다.

“라우뢰 녀석이야 어차피 죄다 본가로 보낼 거니까 상관 없지만 쿤도 대충 정리 좀 해 주면 좋을텐데 오늘따라 일찍 잠들었네? 애가 어디 아픈가? 걘 항상 얼굴이 창백해서 구분이 안 간단 말야?”

“아까 시내에 데려다주면서 물어봤는데 아프단 소리는 안 하던데. 피곤하겠지. 얘네 연습 빡세잖아.”

“걔 말만 믿지 말고 신경 좀 써. 스페인에서 입원해 있다가 온 거라며.”

“입원이요?!”

“난 그렇게 들었는데. 너한테도 별 말 없었어?”

“네... 과로 같은 거였다고만....”

“과로? 희한하네. 스페인에서 부업 같은 거 돌리나? 별 활동도 안하는데 왠 과로야.”

“그거 계약 위반이라 유 실장님이 아시면 길길이 날뛸걸? 아, 그래서 호출인가?”

“설마. 이 바닥 소식이 얼마나 빠른데. 그런 일이었으며 우리도 벌써 눈치 깠지.”

 분류작업을 도와주던 스텝들에게서 뜻 밖의 소식을 접한 밤은 표정을 굳혔다. 쿤이 회사와의 계약을 무시하고 따로 연예인 활동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밤도 생각하는 바였지만 입원은 간단히 ’병원을 다녀온’ 것과는 다른 문제였으니까. 내일 연습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캐물어 봐야겠다. 그리고 한성에게도 이야기해 두어야겠다. 부디 쿤을 곤란하게는 만들지 말아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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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쿤올레 #데이트

 어젯밤의 결심이 민망하게도 쿤보다 앞서 밤이 곤란해 지고 말았으니, 최근 각 소셜 네트워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해시테그에 민망하게도 당사자인 밤의 스마트폰에서 추천 글이라며 관련 메시지와 사진이 좌르르 줄을 이었다. 엔도르시와의 열애설처럼 컴백에 금방 묻힐 줄 알았는데,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이 당시의 일이 확대 재생산이 되고 있는 꼴을 보자면 밤이 직접 뭔가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회사에서는 밤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내 놓았다. 어차피 팬들의 뇌 내 망상을 근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진행되는 축이 수입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니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또 다른 당사자인 쿤이 조용한 것도 회사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물론 멤버들이 보기에는 쿤의 이 상황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앞서 두 번 정도 그가 본가에 다녀오고 난 뒤에 어떤 행동패턴을 보이는지 겪어 볼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은 전과 느낌이 많이 달랐다. 어차피 컴백 때까지는 다른 스케쥴이 없어서인지 충전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쿤의 스마트폰은 아직도 그의 캐리어에 처박혀 있으니 SNS 속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그가 무슨 상관이랴. 여태 들여다 보지도 않았을 텐데. 밤도 밤이지만 그 일로 이수나 같이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스텝들도 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많이들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영 석연찮은 일은 여즉 캐 묻기도 곤란하여 지켜보는 중이다. 어차피 집안 사정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했고, 성격이 불 같기도 유명한 에드안이 당장 들이닥치지 않은 걸 보면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기묘한 믿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컴백 기념 사전 방송이 다음 주 수요일이고 바로 다음 날이 첫방이야. 얼마 안 남았으니까 화이팅하고, 저 잠만보한테도 이따가 알려주고.”

“네, 제가 알려줄게요.”

“그래. 수고가 많다, 이수야. 올레는 드라마 종영 회식 가서 실수하지 말고. 열애설 또 터지면 곤란하니까 처신 잘 해.”

“네... 죄송합니다.”

“이미 또 터졌더만. 둘이 신사까지 가서 뭐 했냐? 스느스가 난리던데.”

“....나? 쇼핑하고 밥 먹었는데? 왜?”

“왜라니.. 너 폰 아직도 안 꺼냈냐? 보면 바로 알 텐데?”

“아... 새까맣게 잊고 있었네.”

“뭐?”

 없는 게 또 없는 대로 편하더란 말이지.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쿤은 스마트폰 중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붙잡고 있을 수 있는 때는 거의 늘 붙잡고 있어서 없으면 못 살 줄 알았는데 말이다.

“흠.. 쿤올레면 내가 위인가?”

“야, 쿤. 넌 지금 그런 게 중요하냐..”

 게다가 이 그룹은 이수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도 맞아서 쿤의 의식이 더 멀어지기 전에 현실로 데리고 돌아오는 것도 이수의 몫이다. 분명 공범(?)인데 이상하게 폐를 끼치는 기분이었던 밤은 쿤의 태도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이유모를 서운함과 ‘위’에 대한 궁금증이 뒤섞여 고민이 멈추지는 않았다. 밤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매니저는 스케쥴에 대한 안내를 이어갔다. 신문사와 잡지사의 인터뷰도 잡혀있고, 광고 제의가 벌써부터 시작되어서 조만간 한 두 건은 계약이 체결될 것 같다고도 했다. 중간에 하츠는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발탁 되었기 때문에 새 공익광고 포스터 촬영이 있을 예정이며, 이번 활동에서 첫 예능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토크쇼라서 개인기로 선보일 짤막한 춤을 미리 연습해 둬야 한다던가? 설명을 마저 듣기도 전에 엔도르시의 사인을 받아오라는 성화들에 못 이겨 밤은 뒷풀이 장소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어야 했기에 쿤과의 대화는 한참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유 실장님이 너 이따 내려왔다 가라던데?“

“와서 하면 되지 왜 또.. 내가 연예인이지 자기가 연예인인 줄 아나 그 커피중독자.”

“조심 좀 해라. 걸리면 잔소리 두 배로 들을 텐데.”

“제 명에 못 죽으면 아버지랑 유 실장이랑 염라대왕한테 고소할 거야.”

 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위안이라는 생각이 든다만 아직 그는 살아있으니 염라대왕 얼굴을 볼 수 있을 리가. 밤이 아니고서야 한성을 만나러 가는 길에 상큼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연습으로 엉망이 된 머리를 다시 정돈해서 묶으며 연습실을 나서는 걸 보니 쿤은 피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건 한성이 무슨 이야기를 할 지 그가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쿤. 성질 죽여. 그냥 들어야 빨리 끝나.”

“알아. 다녀올게.”

 정말 알고 있는지는 기다려보면 알 일이다. 한성은 훈계를 좋아하는 성격이니 쿤이 잘 한다고 쳐도 30분은 넘길테고 욱하면 1시간도 금방이다. 물론 전쟁터같은 현장에 같이 서 있는 것보다는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지만. 빈 시간에 춤 연습에 바로 이어 검도를 연마하는 하츠의 체력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이수는 책상다리에 턱을 괴고 앉아 미뤄뒀던 걱정을 슬몃 꺼내 보았다.

‘입원까지 했다니까 원인에 대해서 회사가 알아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녀석의 본가가 조용한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단 말야?’

 에드안이 수많은 자식들 중에서도 쿤에게 유별나게 군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은 이야기다. 반작용인지 쿤은 아버지를 매우 싫어해서 에드안의 말은 일단 반대로 하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솔직히 먼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에드안이 청개구리 같은 아들을 여즉 내버려둔 것 부터가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생방송 무대에 쳐들어와서 끌고가도 이상하지 않을 성격이라고들 이야기했으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여하튼 쿤에게는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할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 된다. 매번 활동의 말미에 소환장을 받아도 꼬박꼬박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 보면 확실한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팀 메이트로서 에드안의 사람을 몇번 마주쳐 본 입장에서 이수 또한 에드안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건 이미 파악하고도 남았다. 그런 사람이 아무리 성질이 더럽기로서니 아들을 통제하지 못할까? 절대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그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무언가가 쿤에게 있는 것이다. 아마 이번 일도 쿤과 에드안의 갈등 중에 터진 것일터다. 다른 일이 있었던 걸 과로로 덮은 건지 어떤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연결고리의 어딘가에 병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수에게는 찜찜하게 느껴졌다.

‘진짜 탈퇴하는 건 아니겠지? 쿤..’
















후기....로 말할 것 같으면..
0. 너 이따 두고보자 망할 아이폰
1. 이거 원래 연작입니다.
2. 제목 짓기가 너무 귀찮아서 연재처럼 보일 뿐입니다.
3. 오타수정 나중에....
정도입니다.
폰으로 업로드하는 건 태블릿보다 난이도가 높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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